일상 속에 익숙해져버린 헐리우드 영화와 더불어 헐리우드 소설들 속에서,
프랑스 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개인적으로 ^^) 프랑스 샹송이 떠오르는 듯 신선함이 먼저 느껴졌었다.
순수 문학과 추리 문학의 절묘한 조화라는 소개 뒤에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의 책인데.. 과연 어떠한 '추리' 문학적인 이야기가 펼쳐질까? 라는 묘한 기대도 한 몫 했었다.
소설은 허구다.
그리고 때로는 읽고 난 후의 감상도 딱 '허구' 그만큼 일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잘 다듬어진 한편의 영화, 한편의 책을 만날때는 그 장르에 상관없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충족감이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래도 '재미'와 '흥미'를 쫓는 이야기가 주요한 추리 소설에서는
솔직히, 그런 느낌을 가져 본적이 드물었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붉은 애무... 이 소설은 허구 같으면서도 결코 허구 같지가 않다.
상실에 대한 상처받은 인간과 그 영혼이 드러내보이는 삶에서의 가엾은 상흔들은
어쩌면 문화가 전혀 다른 동,서양의 실상인데도 참 가까이서 '뼈저리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남자 주인공 펠릭스, 유능한 보험사 직원인 그는 어느날 급작스러운 고객의 건물 화재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 화재 도중에 실종된 엄마와 아들... 전혀 낯모르는 타인으로의 관계임에도,
알게 모르게 매우 가느다란 실타래로 연결되어진 그 상관 관계는 차츰..차츰..
펠릭스의 일상을 통해서 점차 드러나게 된다.
상처받은 동물이 취하는 두려운 눈빛, 그리고 공격성, 그리고 깊은 좌절과 절망.
그것들을 지나오는 한 인간의 과정을 깊은 밀도로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
한 남자이기 이전에, 엄마의 아들, 그리고 어린시절 부재되었던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펠릭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아들에게 어떻게 홀로선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혼돈에 들어선 펠릭스.
아무리 깊은 사랑을 느끼지 못했었던 엄마의 자리였다 하여도, 그가 성장하며 함께 해온 것은 그 '엄마'의 역할과 함께 였기에
어쩌면 그는 아들 콜랭에게 부재된 '엄마'를 선사하는 것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철저히 부재되었던 '아빠'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훨씬 더 심적으로도, 본능적으로도 수월했을까?
싫든 좋든 그의 성장에, 그의 삶에 알알이 녹아들어 영향을 주었던,
지금의 성인 펠릭스를 있게 해주었던 모델은 '엄마'뿐 이었기에?
'가족'이라는 동그랗고 보드라운 공 같은 구조는.
어느 한 쪽이 튕겨져 나가버리면 절대로 다시는 '공' 같은 동그란 모양을 갖추기 쉽지 않은것 같다.
이미 우리의 사회에서도 그와 같은 부분들이 여실히 보여지고, 가족의 구조가 유지되어지기
참으로 힘든 부분을 보아오고 있기에 말이다.
나는 동양인이기에, 알게 모르게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겠지만,
어느 순간 아이를 두고 떠날 것이라는 '계획'을 한다는 것이라던가, 또다시 아이에게로 돌아오는 상황...
소설 속에서의 이 모든것이 많이 낯설고, 그저 허구로만 여기고 싶어졌을 뿐이다.
가볍게 손에 쥐었다가, 점차 충격과 두려움으로 치닫게 만드는 이 소설은...
느슨하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듯한 긴장과 공포를 선사한다.
더불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각', 본능에 뿌리를 둔 생각을 하게 한다.
엄마가 없다면, 아빠가 없다면.
한 부모 가정으로 어느 한쪽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 양쪽의 역할을 적절히 균형을 이뤄주어야 한다면.
그것이 한 인간으로 버겁고 힘들다면,
제 2의 부모로 '사회'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사회의 약자, 저편에 놓아두지 않고, 진정한 내 이웃으로 나의 역할을 조금씩 나누어 주면서 말이다.
한 권의 짧은 추리 소설을 읽었다기에는 너무도 많은 생각과 '내 가족' '나' 만을 생각해오던 삶에
다시 한번 가슴 저릿한 반성을 하게 해준, 강한 영향력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