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속 액자에는 모두 얼굴이 있는데 얼굴 없는 기념사진이라니?
요즘 아들이 찍어대는 사진처럼 몸통의 일부, 손가락의 일부만 찍은 사진일까?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골집의 풍경과 설빔을 사 올 큰 형님을 기다리는
동생들의 설렘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가운데
앗! 이 무슨 낯선 단어들의 등장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이 책은 해방 직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총선이 열린
1948년 5월 10일 즈음이 배경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그 시절의 이야기,
뒷부분에서 국회의원을 뽑고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부분에서 아하!했던^^
이 책은 주인공 훈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작성되어있다.
덕분에 훈아네 집 안 뿐 아니라 사진 속 주인공인 길건 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
두루두루 속속들이 전달하고 있는 느낌.
설빔을 기다리던 훈아와 작은 형님이 큰 형님을 찾아나섰다가 발견한 건
눈구덩이에 빠진 길건 영감님.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니며 성냥을 팔면서도 흥정하지않고
해금을 연주하고 재미난 꾼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지만 언제나 본인을 낮추는 할아버지인, 길건 영감님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진 봇짐의 주인공이 바로 훈아였으니 사연은 이랬다.
우연히 발견한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즉 손자를 위해
해마다 설빔을 준비하고 집에 가져다 준 영감님.
그러나 어느 해 자신이 준 설빔은 환영받지못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손자 또래인 훈아를 볼 때마다 손자생각이 나서
이번엔 훈아를 위한 설빔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이 이야기는 오직 훈아의 아버지와 이를 엿들은 훈아만 알고있는 비밀!
그러다 읍내 큰 형님이 선생님으로 계시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훈아.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길건 영감님, 아니 이젠 할아버지^^
그러면서 훈아는 어렴풋이 자기 반 병관이가
바로 그 손자가 아닌가하는 추측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점점 재밌어진다.
읍에서도 소문난 부잣집 아들, 병관이가 과연 떠돌이 할아버지의 손자일까?
훈아의 학교생활, 국회의원 선거, 훈아 어머니의 죽음 등
여러 에피소드를 거쳐 다시 할아버지의 이야기.
아기를 낳은 아내가 죽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게 힘들었던 할아버지는
아기를 강에 버리게 되고
자기도 죽고자했으나 알고보니 둘 다 죽지못하고 살아있었다는.
자신과 너무나 닮은 아들이었기에 몇 십년이 지나
우연히 만난 부자는 서로를 알아보게되었으나
아버지는 미안함에 아들은 원망으로 서로를 모른 채했던 시간들.
그리고 가족 사진 한 장.
아버지의 사진 속에는 본인의 얼굴이 바늘로 뚫어져서 이미 없어진 상태이고
아들의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으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손자 병관이를 통해 이 부자는 다시 부자의 연을 맺을 수 있을까요?
전지전능한 작가님의 마지막은 이렇게
독자에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네요.
예전에 '가족을 찾습니다'같은 프로에서나 볼 법한 길건 할아버지의 이야기.
헤어진 사유를 들으면 '아유~ 저 아빠 너무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힘들고 살아야지...'했는데
나중에 가족이 만나고 그 사연을 들으면 다른 이유로 공감이 가고 눈물이 나는,
그런 이야기.
천진난만한 듯한 훈아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선거를 앞두고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하나가 되는 가족의 모습이
훈훈하게 다가오는 이야기.
처음에 낯설었던 옛단어들이 어느새 친숙해져서 익숙해질만큼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
단숨에 읽어나간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