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에 이런 글이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을 가로지는 광대한 초원과 그 아래로 넓게 펼쳐진 사막과 반사막. 이미 고대 중국의 한 역사가가 말했듯이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울 수밖에 없었던 유목민들은 지난 2천년 이상의 세월 동안 자신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또 인내하며 역사의 부침에 동참했고 인류 문명사에 굵고 분명한 자국을 남겨 놓았다. 알 수도 없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 고대 서아시아의 제국을 무너뜨린 뒤 갑자기 북방으로 돌아간 스키타이, '신의 채찍'으로 불리며 게르만족을 밀어내면서 '영원한 수도' 로마를 위협했던 훈족, 멀리 북방 바이칼 호 근처에서 일어나 한 세대도 채 지나기 전에 문명사회의 꽃이었던 북경과 바그다드와 키예프를 함락시켜버린 몽골, 이들은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몇몇 예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유목민족들의 출현과 정복과 소멸이 인류사에서 단지 스쳐 지나가는 에피소드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작품 해제에 이런 글이 있다.

...타소가 <해방된 예루살렘>을 쓰게 된 동기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경험을 들 수 있다. 그 무렵 소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시킨 오스만 제국의 마호메트 2세는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몰락시킨 다음 유럽 전역에 위협을 가하면서 공포감을 확산시켰다. 그러니까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고, 그것은 과거 십자군 전쟁의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였다...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대립과 전쟁이라는 주제는 프랑스 소재 기사도 문학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들의 끊임없는 원천이었다...십자군 전쟁이 시작될 무렵 300년 전에 있었던 전설적인 오를란도의 무훈담이 노래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16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의 위협은 십자군 전쟁의 위업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 해제에 이런 글이 있다.

...사건의 흐름은 주로 단순한 이분법에 따라 선과 악,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에 의해 좌우된다. 이 두 초월적 세력은 핵심 줄거리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사건의 흐름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또한 거기에다 마법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마법사와 마녀는 양쪽 진영 모두에서 온갖 계략과 술책으로 갖가지 사건을 벌이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주요 사건에서 마법이나 초월적인 힘이 개입함으로써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그리고 마법은 사랑과 밀접하게 연결되기도 한다...이러한 세속적 사랑 이야기와 마법적 요소들이 가미됨으로써 성스러운 전쟁의 이미지가 흐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타소의 정신병에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거기에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도 심리적 압박을 가하였다. 그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종교 재판과 검열이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종교 개혁의 물결을 막기 위해 열렸던 트렌토 공의회(1545~1563)가 마무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1559년 소위 '금서 목록'이 발표되면서 공포 분위기는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