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이제 몇 해 남겨놓지 않은 이 시점에서도 20세기의 두 얼굴은 마치 우리를 유혹하는 악마의 얼굴처럼, 천사의 얼굴처럼 우리를 착란과 희망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듯싶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대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살다 보니 나에게 가장 손에 익은 방법은 '문학'이라는 돛대에 자기 몸을 묶는 일이 이 소용돌이를 벗어나는-적어도 직시하는-길이었다. <화두>는 그러한 항해자의 기록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소용돌이의 여러 깊이에 주의하려고 하였다. 그 표면, 그 중간쯤, 그 저류, 그리고 물론 바다 밑의 지형 말이다. 20세기라고 하지마는, 20세기라는 바다는 어느 수역에 있는가에 따라서 항해자의 주의사항과 항로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화두>에서 나는 이 점-내가 위치한 해역의 좌표-에 가장 민감하려고 노력하였다. 생각건데 결국 배는 바다에 있는 것이지 선실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두>가 이산문학상을 받게 된 자리의 '수상 소감'에서...

20세기의 개인(1994)...올해 8월이면 우리 민족이 반세기에 걸친 일본군 점령에서 벗어난 지 만 49년이 된다. 그리고 이 시간은 우리 민족의 국토가 분단된 시간이기도 하다. 20세기는 이제 5년을 남겨놓고 저물어가려고 한다. 우리 민족이 분단된 원인을 제공한 세계적 정치 세력의 자체 붕괴가 있은 지도 이제 3년째 되어간다. 우리 국토의 북쪽에 실재하는 정치 체제를 그 출발에서부터 지배한 한 인물이 얼마 전 사망하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 태양계의 가장 큰 혹성인 목성에 혜성의 파편들이 충돌하는 우주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오늘 우리가 생활하는 시대의 '거대 지표'들이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보통 생활자의 직접적인 생활 감각이나 지배 범위에 들어오는 상황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보통 생활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거대장에서의 거대 사건들이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보통 생활자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해버릴 수 없는 세기-그것이 20세기다. 적어도 나의 감각으로는 그렇다...

해설에 이런 글이 있다.

...<폴란드 기병>은 주인공 마누엘과 나디아의 개인사를 바탕으로 '1898년 스페인의 대재앙'부터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 내전 발발과 이후 프랑코 독재 기간, 프랑코 사후 민주화 이행기와 같은 집단적인 역사를 덧입힘으로써 스페인 현대사 전체를 조명하고 있다...대부분의 내용이 과거의 회상이라는 커다란 서사틀 속에 전개되며, 산발적으로 출몰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과거 기억을 통해 스페인 내전이 스페인 사회에 의미하는 집단적 기억과 그 이후 전환기 사회를 통한 개인적 기억을 얘기한다...이 작품은 한 사건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의 반복과 부연, 열거 등을 통해 퍼즐처럼 짜 맞춰 가는 집단적 기억인 '역사'와 개인적 기억인 '서사'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유년 시절 여러 목소리들의 집단적 기억을 얘기하는 제1부 [목소리들의 왕국]과 마누엘과 나디아의 기억을 통한 개인적 기억인 제2부 [폭우 속의 기병], 역사와 개인사가 만나 정체성을 회복하는 제3부 [폴란드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