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어디로 가는 길입니다...

해설에 이런 글이 있다.

...논개 이외에 이순신, 이광수 또 조봉암 등을 만나는데 그들과의 대화, 즉 역사적 과거라는 형식적인 사실에 의거해서 우리에게 있어 본질적인 모순이 무엇이었는가를 아주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조선 사회에 있어서는 유교적 명분론이 지식인에게 있어서는 목숨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였다. 이념화된 명분을 배신한다는 것은 곧 그 자체가 사회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그 사회는 필연적인 개혁마저 거부하는 폐쇄적인 질서 유지에 성공했고, 그러나 반면 500년간에 걸친 봉건사회는 조용한 왕국을 남의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부연하자면 이러한 논리는 현대 지식인에게도 은연중 정신적인 유산으로 상속되어 있음을 작가는 이미 <회색인>의 김학을 통하여 개진한바 있다. 이러한 역사성 혹은 민족성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자기 보호라는 구차한 본능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1970년대의 마지막 해의 마지막 무렵이다. 마침 나의 전집의 완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계제에 나 자신의 문학적 자화상을 그려보라는 편집자의 부탁으로 이 글을 쓴다. 전체는 부분의 산술적 합계가 아니다. 그런 뜻에서 나의 작품이 전집의 형태로 묶인 것이 행복하다. 내가 더듬으면서 새겨놓은 글에서 부분적으로 미흡한 것들을, 그리고 단절된 것들을 나의 독자들이 전체를 제공받음으로써 그들의 상상력과 능력으로 나의 암중모색이 밝아지고 풍부하게 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비록 그 자리에 내 자신의 육신은 없더라도 나는 위대한 독자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될 터인즉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일은? 내일의 나의 일은? 그것은 내일 또 생각하겠다. 내일의 햇빛 아래서, 내일도 아마 십중팔구 해는 뜰 것이므로...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 중에서...

해설에 이런 글이 있다.

...주인공 독고준의 어린 시절의 경험 가운데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그를 따라다니는 사건은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이라는 것이다. 6.25전란에 있어서 폭격의 장면을 이야기하는 이 묘사는, 어린 시절의 '공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행복'의 순간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은 다른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에 체험된 것이라는 이유때문에 주인공에게는 무언가 모순된 느낌으로 받아들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에게는 무언가 포기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특이한 감수성은 얼핏 보기에 혹은 도덕적으로 보면 패덕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어린 시절을 수많은 '이야기'책 속에서 자신을 길러온 주인공의 독백 속에서 그 비밀의 정당함을 발견하게 된다. '죄의 기쁨 속에서도 이야기의 세계는 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거꾸로 선 세계, 물구나무선 정신의 풍토였다'는 고백에서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이야기'라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금지된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