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단편 중 4번째 단편 <웨이크필드>...한 남자(웨이크필드라고 부르자)가 아내와 오랫동안 별거한 이야기...남편이 여행을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자기 집 바로 옆길에 숙소를 정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20년이 넘는 긴 세월을 혼자 산다. 그 기간동안 그는 자기 집을 매일 보았고 부인의 모습도 자주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마치 집을 비운지 하루 만에 돌아온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문에 들어서서 죽을 때까지 다정한 남편으로 살아간다...이 사건을 가끔 떠올리며 이야기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라고 느끼면서 그 주인공의 성격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의 정에 틈새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오. 그 틈새가 길고 넓게 벌어져서가 아니라 그 틈새가 곧 다시 닫혀버리기 때문이라오...여전히 인간의 관심사에 매여 있으면서도 그런 것들에 대한 상호 호환적인 영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웨이크필드의 희안한 운명이었다...혼란스러워 보이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개개인은 어떤 체계에 아주 잘 적응하고 또 각각의 체계들은 서로서로 그리고 전체의 체계에 아주 잘 적응을 해서, 한순간이라도 거기서 벗어나면 인간은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잃는 끔찍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1부 모래의 책, 2부 세익스피어의 기억. 그 안에 단편이 13개, 4개씩 들어있다.

1부 모래의 책에 들어있는 <모래의 책>...인도에서 찾아낸 이 책의 전 주인은 이 책을 '모래의 책'이라고 불렀단다. 책도 모래도 처음과 끝이 없기 때문이라면서...첫 페이지도 마지막 페이지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실제로 그러한 걸 어떡합니까. 이 책의 페이지 수는 정확히 무한합니다. 그 어떤 페이지도 첫 페이지가 될 수 없고, 그 어떤 페이지도 마지막 페이지가 될 수 없습니다...아마 무한의 수는 그 어떤 수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죠...주인공은 이 보물(모래의 책)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을 소유하게 된 행운에는 그것을 도둑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리고 이어 그것이 정말로 무한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뒤를 이었다...마침내 그것이 악몽의 물체, 현실을 손상시키고 썩게 만드는 물건이라는 느낌에 이르게 되었다...나뭇잎을 숨기기 위한 가장 적합한 장소는 숲...사서들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이용해 도서관의 책장에 '모래의 책'을 잃어버렸다...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이 책에는 고(故)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이 들었다는 5편의 이야기와, 스페이드 여왕이 실려있다.

<스페이드 여왕>은... 스페이드 여왕은 감추어져 있는 앙심을 의미한다.-신 예언집... 으로 시작한다. 게르만이라는 청년이 나오는데,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으레 빠져드는 경솔한 행동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마음속으로는 도박꾼이면서 한번도 카드를 손에 쥔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잉여적인 것을 얻으려는 바람에 필수적인 것을 희생할 처지가 아니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게르만은 확실하게 보장되는 3장의 카드를 지정할 수 있다는 늙은 백작 부인의 소문을 듣는다... 만약 늙은 백작 부인이 내게 자기 비밀을 알려준다면, 또는 내게 3장의 확실한 카드를 지정해 준다면!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 보기를 마다할 필요가 있을까?...

무언가에 너무 빠져드는 것, 무언가에 매몰되는 것... 무서운 일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