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케르]라는 책 제목 옆에 작은 글씨로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적혀있다.

...저자는 이 작업의 궁국적인 지향은 결국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임을 책 속에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이 책 전체의 핵심 주제는 바로 정치의 근본 범주를(저 유명한 '동지/적'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주권/벌거벗은 생명'의 관계로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다.

...주권을 둘러싼 논의는...거슬러 올라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시기인 고대 그리스에서의 핀타로스/헤시오도스의 논쟁으로 독자들을 이끌고 간다. 핀타로스에게 '주권'이란 '폭력의 정당화'인 반면, 헤시오도스에게는 '폭력과 정의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주권의 본질이다...주권의 이해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과연 주권자가 법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법의 외부에 위치할 수 있느냐의 여부인데, 아감벤은 이것을 정치 체제의 가장 내적인 핵심으로 위치짓는다...이러한 주권 개념의 재검토는 궁극적으로 주권 개념에 기반한 근대 정치 철학의 근본 패러다임의 해체를 겨냥한 것이다.

...저자는 주권자와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 혹은 생명정치적 신체)간의 관계에서 정치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주권과 벌거벗은 생명을 체계적으로 결합시키는 근대의 정치 범주를 푸코가 말한 '통치'의 관점으로 파악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생명정치의 문제에 대한 천착으로 나아간다...

너무 어렵군요...

...근대와 근대적 인간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기호를 달고 탄생한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이 인간과 지구로 옮겨졌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인간중심주의는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작위성의 이데올로기를 동반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서술할 수 없는 신을 배제하면, 모든 관심이 우리가 알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집중됨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이 지극히 간단한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 가능한 것은 만들고, 가능하지 않은 것은 가능하게 만들어라.

...아렌트가 말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의 조건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지구다...지구는 한편으로 인간이 인위적 수단의 도움없이 살 수 있는 거주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놓은 인공세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인공세계를 건설하면 할수록 인간이 자연환경과 멀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연적 생명세계와 인위적 인공세계는 대립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은 인간실존의 자연적 조건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인공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은 가능한한 인간을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인간에 의해 완전히 통제될 수 있는 인공세계를 구축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아렌트는 이를 기술시대에 내재하고 있는 전체주의적 경향이라고 말한다. 만약 생명체로서의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적 필연성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자 하는 과학과 기술의 시도는 바로 기술시대의 근본악이라고 할 수 있다...우리는 과연 인간의 삶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인간의 조건을 파괴하는 기술의 근본악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를 처벌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가?

...어렵구나~

책도 조그마하고 틈틈히 쉬어가며 읽어야지 했는데... 음 조금 울적해서 힘들게 읽었다. 3-4장짜리 단편들과 몇 편의 시가 들어있다. 뒤의 역자 해설에 보니

...스물여섯 살에 죽은 보르헤르트...

...10대에 전쟁에 끌려가서 죽음이 오락가락하는 상황 속에서 메모 형식의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천재.

...그 역시 사형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떨어져 있던 스무살 안팎의 청년 아니었던가. 나치의 히틀러는 그렇게 그를 가두고 죽이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켤코 그렇게는 죽지 않았다...그는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부드러운 미소년이었으며, 아름다운 언어의 생산자, 아,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을 초월하는 저 유머의 명인이었다!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자쯤은 젊은 그의 웃음과 언어 속에서 한 뼘의 크기로 작아져 있었고 마침내 지워지고 있었다.

유머? 모든 단어가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