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 햄릿.

비극 세편...여하튼 배우들이 말하는 연극대사로 쓰여진 것이니 소리내여 읽어보았다. <셰익스피어 전집의 운문 번역을 시작하며>에...우리말 운문 대사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내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해당 부분을 소리내어 읽어 보면 그 리듬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글도 읽은 판이니 말이다.

...셰익스피어가 그의 극작품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형식상 크게 운문과 산문으로 나뉜다. 산문은 주로 희극적인 분위기나 신분이 낮은 인물들(꼭 그렇지는 않지만), 저급한 내용, 편지나 포고령, 또는 정신 이상 상태 등을 드러낼 때 쓰이고, 운문은 주로 격식을 갖추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때 쓰인다... 시 형식으로 쓰인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가 가지는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이 현저히 줄어들고, 수많은 비유로 파생되는 상상력의 자극이 둔화되며, 이 모든 시어의 의미와 특성을 보다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인 음악성이 거의 사라지지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선택은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운문 대사를 시적 효과와 음악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확성도 확보하는 우리말 번역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말 운문 대사가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내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해당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면 그 리듬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15-18세기 전산업화시기의 유럽의 발전이란 인류 역사를 둘로 갈라놓는 산업혁명이 도래하기 전까지의, 점진적으로 시장, 기업, 자본주의적 투자라는 합리성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19세기 이전에 관찰 가능한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물론 우리는 그 진화과정을 추적해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진화과정이란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대립되고 어깨를 겨루며 심지어 서로 상반되기까지 하는 여래 개의 진화과정들을 말한다.

...그중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소위 시장경제이다. 그것은 농업활동, 노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 거래소, 은행, 정기시장, 그리고 물론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의 매커니즘들을 뜻한다.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 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잡고 있는 이 폭넓은 영역을 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물질생활' 혹은 '물질문명'이라고 명명했다...경제활동이 덜 형식적이며, 자급자족적이거나 아주 좁은 범위내에서 재화와 용역을 물물교환하는 이 또 다른 절반을 가리키는 데 더 적절한 명칭을 발견하게 되리라.

...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동적인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위계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과정을 왜곡시키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다. 원하든, 아니면 의식적으로 원하지 않든 간에, 그것은 비정상과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그리하여 이 특권적인 주인공 집단은 일반인이 모르는 유통과 계산을 수행했다...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서 일종의 상방한계를 이루는 이 불투명한 영역은 나에게는 특히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시장경제 없이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잡고 그곳에서 번영한다.

<옮기고 나서>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대개의 경우 인류학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의 의미를 지닌다... 뒤랑은 인류학이 참다운 인류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 관한 것이면 그 어느 것도 낯설지 않다는 관점을 택해야만 보편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문화들에서 드러나는 차이만이 아니라 그 차이를 낳게 한 공통의 토대이다...시와 제의와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고 말한다... 뒤랑은 그 공통 토대에 상상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인류학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이름으로 포유동물로서 인간이 지닌 생물학적 특징을 지워버리는 인류학이 아니다... 그의 인류학은 객관과 주관, 역동성과 정태성, 불변적인 것과 가변적인 것을 두루 포함하고 종합하는 인류학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상상력과 신화를 위치시킨다.

...그 구조들은 유한하고 하찮은 존재인 인간의 하찮음과 위대함을 동시에 포섭하는 구조이다...그러한 종합 정신에 의해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상징적 동물이 된다. 인간을 합리적인 동물로 본다면, 인간의 문화는 인간이 지닌 이성 혹은 의지의 힘에 의해 인간이 지닌 동물적 천성을 극복하고 정복해서 이룩한 것이 된다. 하지만, 상징적 동물로 본다면, 인간이 지닌 동물적 천성 혹은 본능은 극복되거나 정복되지 않는다. 단지 변형되어 표현될 뿐이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게 해주는 것은, 인간에게서 동물적 본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본능이 동물과는 달리 간접적으로 표현된다는 데 있다.

...뒤랑의 상상계의 구조에 의하면 상상계는 합리성과 대립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상상계가 각기 다른 논리를 낳고 다른 제도를 낳고 다른 문화를 낳는 것이기에 상상계/논리의 이원적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 정신의 원형, 즉 상상력과 유기적으로 맺어져 있는 이른바 합리성이라는 것은 그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다원적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