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책만 읽는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종일 책과 함께 뒹구는 것도 재미있고 책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아가는 것도 좋다. 책속에 나온 간서치(看書癡)라는 말을 마음속에 담았다. 제목처럼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인데 그런 바보라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많이 읽고 적게 읽고의 문제를 떠나서 책과 함께 평생을 지낼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사람일것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독서가 나에게도 필요한 첫번째 과제이다.
조선시대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서자출신으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삶은 고달팠고 자신과의 고뇌는 계속되었는데 그런 그에게 친구가 되어준것이 책이었다. 햇살 환한 방안에서 책을 들여다 봤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누가 일러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책을 읽었기에 막히는 구절이 오면 답답한 마음에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올정도였다. 하지만 뜻을 깨칠때면 크게 고함을 지르거나 웃으면서 좋아했다. 이덕무는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고 둘째, 날씨가 추울때 책을 읽으면 추위를 잊을수 있으며 셋째, 근심걱정으고 마음이 괴로울때 책을 읽으면 천만가지 근심이 사라지고 넷째, 기침병을 앓을때 책을 읽으면 괴로운 기침이 사라진다라고 책읽기의 이로움을 정의했다. 굶주림과 추위, 근심과 기침병에 시달리던 이덕무에게 책은 위로가 되고 위안을 주었기에 가난한 젊은 날이 서럽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이덕무는 아들을 낳은후에도 서자의 처지를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현실은 바꿀수 없었다. 이덕무와 그의 아들은 같은 서자의 처지라는 공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이 존재했다. 그후 유덕무는 백탑이 있는 대사동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평생을 함께할 지기인 박제가, 유득공, 백동구, 이서구와를 만나게 된다. 백탑 아래에서 그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어울리며 《백탑청연집》이라는 시문을 펴내기도 하였다. 백탑 아랫동네로 이사온후에 어느날 그의 벗들은 이덕무의 집에 서재를 지어주게 되고 이덕무의 호를 따서 '청장서옥'이라는 붙이게 된다. 그의 벗인 박제가는 본가의 적자가 아니라 서자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이덕무는 서자의 핏줄이었지만 본가에서 떨어져 나온지 오래된 윗대의 일이었다. 하지만 박제가는 어머니가 다른 서자로 태어났기에 가슴속에 깊은 슬픔과 분노를 담고 있었다. 본디 마음은 여리고 고운사람이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입바른 소리를 잘하고 불같은 성미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기 일수였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며 벗의 관계를 유지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돠 구별되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P75
이덕무에게 백탑아래에서 맺은 인연은 벗들 뿐만 아니라 담헌 홍대용 선생과 연암 박지원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두분은 기가 꺾이거나 흔들리기 쉬운 마음을 바로 잡아주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고 이덕무에게도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와 있었다. 지나온 세월은 덧없었고 여전히 세상 어디에도 쓰일곳을 얻지 못하였다. 이 구절을 읽고 보니 문득 이백의 《장진주》가 생각난다.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하늘이 내게 주신 재능은 반드시 쓰일 곳이 있으니, 천금을 쓰고 나면 다시 돌아올걸세)
그렇게 때를 기다리던 그들에게도 대궐의 부름을 받아 벼슬길에 오르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중국에서 그들은 드 넓은 세상에 대해 배웠고 조선이 더욱 풍요롭고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절실한 심정을 마음에 담고 돌아왔다. 모두가 대궐생활을 하며 규장각의 검서일과 녹봉을 관리하는 일들도 정확하게 해내려고 노력했다. 어느날 대궐을 떠난 이덕무의 발걸음은 떠나온지 이미 10년이 넘은 대사동 백탑으로 향한다. 그곳에 변함없이 서있는 탑에 대한 반가움이 이덕무의 가슴에 일렁였다. 탑 아래에서 담헌 선생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나아갈수 없었다. 담헌 선생이 돌아가신지도 십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아마도 꿈이 였을것이다. 그렇게 쓰러진 그는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책과 함께 세월을 보냈고 책과 벗들에게서 삶의 의미와 재미를 찾아간 이덕무였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극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재능이 쓰일곳을 기다렸고 꾸준한 노력을 한 사람이였다. 수많은 세월을 책과 함께 보냈을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쉬움도 남는다. 죽는 순간까지도 책과 함께 보낼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는 비록 서자 출신이었고 가난했지만 행복한 사람이었을것이다. 변하지 않는 우정을 간직한 벗들이 곁에 있어주었고 언제나 위로가 되고 기쁨을 주는 책이 함께 한 삶이었다.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택한 이덕무가 부러워졌다. 소중한 책들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나 역시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