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 출처 본문 중 '윤교수의 마지막 메시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키려는 정윤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때문에 힘들어 하는 단이
언니의 죽음에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루
바꾸고 싶은 마음과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에 고민하는 명서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이들이 겪은 이야기도 실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들이 힘들고 지치면 내 마음속에서도 '어쩌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그들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글을 읽고 있는 내 기분도 좋아지는 듯하다. 정윤이 슬픈 감정을 어쩌지 못해 몇 시간이고 도시를 걷고, 걷고 또 걷는 걸 보면서는 그녀의 지친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가도 명서를 만나 사랑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는 걸 보면서는 내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단이의 석연찮은 군대에서의 죽음과 작가도 쓰기 힘들었다는 미루의 언니 미래가 발레를 그만둘 수 밖에 없던 외할머니댁에서의 사고와 미래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종으로 인한 슬픔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이고 그걸 말리는 미루를 보면서는 그 뜨거운 불길이 느껴지는 듯 내 손마디가 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이 책은 연애소설 같기도 하고 성장소설 같기도 하고 청춘소설 같기도 한, 하나의 말로 규정하기 힘든 글인 거 같다. 부조리한 시대에 대항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명서를 보면 청춘소설 같고, 미루, 명서와 함께 걷는 과정을 통해서 엄마의 죽음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정윤을 보면 성장소설 같고, 서로에게 끌리는 명서와 정윤과 정윤에게 전달되지 않는 사랑에 가슴아파하는 단이를 보면 연애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네사람 말고 중요한 인물이 바로 윤교수인데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시기를 건너를 정윤, 단이, 미루, 명서를 자신만의 조용한 방법으로 이끌어 주는 윤교수는 이들의 중요한 정신적인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읽고 나서는 작가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쓰고, 책 관련 사이트의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어도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것이 있듯이 나하고는 맞지 않는 작가가 몇몇 있는데 신경숙 작가의 책이라면 이제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선택해도 될 것 같다.
글이 도무지 읽히지 않아서 요즘 한동안 책 읽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읽을 만한 걸 찾으며 괜찮은 것을 골라야 다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다시 재미있게 다가올텐데, 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나로서는 좀 신중하게 고른 책인데 누군가의 말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네 젊은이들의 과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해 내는 책이었다. 아직 넘기지 못한 페이지에는 어떤 글이 씌여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책이야 말로 독자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책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정윤이 명서의 갈색노트에 '내.가.그.쪽.으.로.갈.게'라는 메시지를 쓰며 책은 끝이 났지만 상상속에서라도 슬프게 떠난 미루와 단이의 몫까지 더해서 둘이 행복한 결말을 맺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