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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 대해> 인문학으로서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철학이라면, 인류학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라 인지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와서는 그러한 내 인류학의 의미를 어느 정도 수정해야겠다. 왜냐하면 민족지학자들의 연구성과에는 연구대상으로서의 원주민에 대한 단순한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술적인, 또한 일상 생활에서의 정신세계에 대한 고찰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행위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위의 본질을 이루는 정신적 근간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인류학은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것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학문으로, 전형적인 서구학문으로서의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다. 이점을 상기해보며 짧게나마 사견(私見)을 제시해본다.
통과의례 : 살면서 통과의례라는 말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통과의례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거나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접어두고서라도 '관혼상제'로서 의미를 연상시키는 것부터가 모호한 해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보통 '개인의 일생과 관련된 시기에 따른 의례' 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반 겐넵이 말하는 '통과의례'에 비춰 보면 상당히 부족한 의미인 것 같다.
기왕에 '통과의례' 라는 책을 읽었으니 저자, 반 겐넵이 말하는 통과의례의 개념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차원에서 정의하고 넘어가야겠다.
통과의례는 쉽게 얘기해서 문자 그대로 '통과(通過)'에 대한 '의례(儀禮)'이다. 통과는 시간적 개념일 수도 있겠고, 공간적일 수도 있겠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낮은 신분에서 높은 신분으로, 또는 속(俗)에서 성(聖)으로 '통과' 할 때 갖는 '의례'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통과의례는 우리 주위에 아주 흔한 형태로 나타난다.
관혼(冠婚)으로서의 성인식, 결혼식은 말할 것도 없고, 졸업식이나 입학식 같은 식(式)도 통과의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헤어질 때의 인사도 일종의 매우 단순한 통과의례(분리의례)라 할 수 있으며, 친척집에 갔을 때의 반기는 서로의 인사(통합의례)도 마찬가지이다. 계절의 변화도 시간적인 통과임을 이해한다면 춘분, 하지, 추분, 동지 때의 우리 내 풍습도 역시 기본적인 통과의례인 것이다.
반 겐넵은 기능주의자답게, 이러한 통과의례의 기능은 기존의 생활(공간) 속에서 다른 낯선 곳으로의 '통과'에 따른 혼란함과 이질감을 완충(緩衝)해주는 데에 있다고 한다. 사실 그가 말한 통과의례의 기능은 그것을 우리의 생활 속에 적용시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새로운 영역(그 곳이 학교나 회사가 됐든, 남의 집이나 무엇이든 간에)으로 들어갈 때 입식(入式)이나 인사말 따위의 환영하는 식(式)을 받는데 이런 의례의 목적은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함으로 반 겐넵이 말한 '완충' 작용과 상통한다. 한 예로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통과하는데서 오는 이질감과 혼란함을 완충시키기 위한 일종의 의례인 것이다.
분리(分離)의례, 전이(轉移)의례, 통합(統合)의례 : 저자가 원주민들의 통과의례를 설명하는데 줄곧 사용하는 도식(圖式)은 분리의례, 전이의례, 통합의례 라는 틀이다. 어떤 부족의 원주민이 기존에 있던 지역에서 다른 낯선 곳으로의 문지방(경계)을 넘을 때 그는 먼저 기존에 있던 곳에서 분리 의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 낮선 지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방인으로서의 전이의례를 하고, 새로운 구성원으로서의 통합을 의미하는 통합 의례를 치름으로써 그 새로운 곳과 융합되는데 이러한 저자의 도식은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 면에 적용시키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쉬운 예를 하나 들겠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분리의례이고, 대학 입학식 앞의 오리엔테이션은 전이의례이며, 대학 입학식은 통합의례이다. 여기에 반 겐넵이 말하는 의례의 기능을 씌우면, 고등학교 생활이 분리되는 것에 대한 완충으로서의 졸업식(분리의례), 새로운 영역, 즉 대학으로 통과하는 과정에서의 완충(전이의례)인 오리엔테이션, 그리고 새로운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통합에 대한 완충(통합의례)인 입학식이 되는 것이다.
통과로 인한 혼란스러움이나 이질적인 것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통과의례는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늘 함께 한다. 우리 생활은 통과의례의 연속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친구와 헤어질 때의 "잘가" 라는 인사는 단순한 분리의례이고, 만났을 때의 반가운 인사는 통합의례라 볼 수 있다.
반 겐넵과 그의 방법론 : 반 겐넵은 여러 원주민들의 통과(通過)에 따른 다양한 의례를 연구하며 그것들의 공통분모를 밝혀냈다. 분리의례, 전이의례, 통합의례라는 도식을 갖춘 통과의례의 개념이 그것인데, 이는 원주민들의 여러 의례들의 특성을 일반화 한 것이다. 즉 반 겐넵은 여러 경험적 증거로부터 일반 법칙을 추출해 낸 것이고, 이러한 그의 방법론은 다분히 실증적인 것이다.
그는 통과의례의 기술(記述)목적이 원주민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어떻게 일어나며, 왜 일어나는 지에 있다고 했다. 이런 의도를 여러 경험적인 특성으로 밝혀낸 것으로 인정되지만, 어쩐지 자신의 도식 속에 원주민들의 모든 행위를 끼워 맞추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귀납적이기보다는 연역적 같다는 뜻이다. 원주민들의 모든 문화적 특성을 통과의례라는 틀 속에 가두는 듯하며, 계속해서 이런 구조로 설명하다보니 마치 원주민들의 행동은 거꾸로 통과의례를 향하는 것 같다. 마치 원주민들의 모든 생활이 꼭 통과의례만을 염두해 둔 것 같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활 속의 통과에 대한 나의 모든 의지가 하나의 의례를 위하는 것처럼 느껴져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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