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역사를 기반으로 역사를 살짝 비틀어 보여주는 영화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만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실 그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그 원인과 결과, 그리고 진행은 하나의 '사
실'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단지 '사실'일 뿐 역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이름이 붙는 것은 결국 그 '사실'에 '평가'라고 불리우는 후대의 이야기가 더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임진왜란의 직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제나
혼란기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세상도
혼란하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자리 보존에 온 힘을 다하고, 그러한 세상을 바꿔
보려 했던 이들은 그들의 칼날 아래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결국 언제나 우리
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지배자들은 변화하지 말고 시키는 것만을 하면서 숨죽이고
그렇게 없는듯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
았기에 발전이라는 것이 있었듯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등장인물들도 나름대
로의 변화를 위해서 달려간다. 물론 그것이 그들 각자의 숫자만큼 존재하는 정의라
는 차이점은 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역사'는 그리고 그 '역사를 살았던 사
람'들은 다시 평가를 받게 되고, 그 평가 속에서 그들은 다시 '역사'가 된다. 한때
는 단지 기회주의자적인 야심가로 평가받던 '정여립'은 지금에 와서는 평등사상을
이야기했던 혁신적인 인물로 이야기된다. 어쩌면 그러한 '평가'의 변화가 바로 '역
사'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재평가된 '정여립 반란 사건'과
'임진왜란'이라는 두가지 큰 사건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정여립'보다 훨씬 큰 야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꾸기를 원했던 '이몽학',
그러한 '이몽학'에게 아버지를 잃은 '견자', '이몽학'의 야심을 멈추려고 하는 '황
정학', 그리고 '이몽학'의 꿈을 쫓는 '백지'...
어쩌면 역사에서는 단지 한 줄로 쓰여지거나, 아예 언급조차도 되지 않을 인물들
인 그들은 그럼에도 구름을 벗어나 밝은 햇살이 비추는 세상을 기대하고 움직인다.
모두가 서얼이거나 혹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이들이기에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그
자체로 혁명이 되지만, 단순한 복수심에서 시작한 추격이 결국은 단순한 추격이 아
닌 또 다른 꿈으로 귀결되는 '견자'의 모습에서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결코 우리가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구름'이 없어져 밝은 태양이 내리쬐는 세상이 아닌, 은은한 '달
빛'이 상처를 위로해주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한 줄도 '역사책'에서
만날 수 없는 그들의 삶과 꿈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