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가 옥수수킬러인 나를 위해 특별히 심어놓은 옥수수 맛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아니 그 사랑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 밭에서 별자리를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사과를 팔면서 1년 넘게 전국을 여행하고 이때 얻은 영감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26년 동안 프라모델을 제작하며 수입판매업을 한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는 스스로를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라 여기며 주변 사람들과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며 조화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32살 먹은 영복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 하늘에 정령으로 계실 거라고 믿는다. ‘나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어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게 가장 안타까운 모습이 있다면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나의 현재 모습과 내 곁을 너무도 일찍 떠나버린 부모님의 모습이다. ’

서울에 사는 영복이 친구 아버지 소유의 별장을 보수하러 시골 작은 마을을 찾게 된다. 이곳은 영복이 친구와 자주 왔던 곳이며 북 삼리에서 밤하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영복은 간단한 캠핑 준비로 마을에서 걸어서 50여분 거리의 들판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우연과 함께 찾아온 사랑이 시작된다. 여주인공 요정은 22살의 여대생인데 영복과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사귀게 되지만 요정이 백혈병에 걸려 먼저 죽게 된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북 삼리의 얕은 여울에서 요정의 뼛가루를 바람에 흩어 보내며 절규하는 영복의 모습은 슬픈 장면이다.

 

북 삼리 별장에서의 옥수수 알맹이처럼 쌓여가는 그리움과 사랑이야기. 공감보다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너무 나이가 많이 들었나 싶기도 하고 순수하게 사랑을 하기 엔 너무 때가 탔나 싶기도 하다. 첫사랑은 그랬던 것 같다. 계산하지 않고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 것처럼 여겼던 첫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세상을 향해 외친 사람은 스물세살의 자폐청년 히가시다 나오키이다. 자폐를 이해한다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자폐를 가진 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는 ‘건망증’이 계속되는 상태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 책을 쓰고 강의를 다닌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고 아무도 자신의 기분을 몰라 주어도 물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받아들여지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단다. 지난 주말 성주에 새로 생긴 아라월드에 아이들과 함께 갔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위에 누웠더니 구름과 하늘, 산의 모습은 나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었다. 저자도 아마 이런 평안함을 느꼈으리라.

 

사람들과의 관계와 배려의 중요성과 자신의 행복을 깨닫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불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불안에 떨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나쁘며 어떤 모습의 나도 나 자신이라고 하는 말은 정말 멋진 표현이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들이다.

 

저자는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고 수용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용기를 주고 있다.‘어떤 곤경에 처했어도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다고 믿으세요. ’‘필연이든 우연이든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를 달래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고 위로하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는 말은 위로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실수하는 것이 사람의 습성이라고 하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든다. 저자는 헤어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인생을 바로 살아가고 싶다는 저자에게 박수와 함께 응원을 보내고 싶다. 위로와 평안,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을 좀 더 이해하는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다.

책을 읽고 거실에 두었다. 지나가듯 아들에게 책 봤냐고 물으니 안 봤다고 한다. 만화책이라고 하자 화색을 띠며 금방 들고 가서 후다닥 읽는다. 모든 책이 만화로만 되어있다면 아이들이 책과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만화책을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어릴 적 나를 떠올려 보면 만화에서 무협지, 소설로 책 읽는 단계가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암튼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의 일대기를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헬렌 켈러와 앤 셜리번이 제목이지만 책의 주요 내용은 헬렌이 아닌 앤 설리번이다. 헬렌켈러는 뒷부분 아주 조금 나온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위대한 업적을 이룬 헬렌 켈러. 그 뒤에는 스승인 앤 설리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만 보지 그 뒤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있기까지 곁에서 도와준 사람은 크게 보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색다른 포인트를 갖고 볼 수 있게 한 것이 장점이다. 앤 셜리번이 없었다면 헬렌 켈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알코올 중독아버지, 결핵을 앓는 어머니가 8살에 죽고 남동생 역시 결핵으로 사망. 앤 설리번도 트라코마 바이러스 감염으로 시력이 나빠졌다. 두 번 수술을 했으나 그녀의 시력은 사물을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이상으론 회복되지 못했다. 맹아학교에 다니며 그녀는 다시 한 번 수술을 받아 시력을 회복하고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동생을 모두 잃은 앤 설리번은 시각조차 잃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헬렌켈러를 가르치는 걸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한 사람의 삶을 바꾼 큰 스승이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는데 아이와 함께 읽고 사람과 인생,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책을 보고 난 토요일 오후 EBS 다큐프라임에서 감각의 제국 봄(Seeing)의 기적에서 한국판 헬레켈러 라고 해야 하나? 아들과 함께 읽은 헬렌켈러를 떠올리며 TV를 봤다. 그녀는 귀가 큰 토끼‘베니’(소리를 대신 들어달라는 바람에서 나온 캐릭터)를 그리는 청각장애인 일러스트레이터로 차츰 시력까지 잃어가는 중이란다. 아이들과 함께 보며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구경선 작가는 그것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기적이란 앞을 볼 수 있는 오늘이다. 그녀는 절망과 좌절대신 실명하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버킷 리스트’를 써내려가고 하나씩 그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프리 허그로 지나가는 사람을 안아주고 책을 써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는 그녀는 안타까움을 넘어 존경스러웠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나도 더 많이 보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