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로브그리예는 이른바 씨네로망의 대표적인 작가다.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같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이 영화로 옮겨졌다.(영화 시나리오에서 소설로 옮겨온 것도 있다고 한다)

소설은, 계속 반복되는 장면들로 채워져있다. 그러다가, 이게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던 것이, 나중에 제 꼴을 갖추고 나타났을 때 어찌나 서늘한 전율이 이는지. 그러나 이것마저도 확실치 않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서술자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고 다시 풀어헤쳐지기 때문에.
A...와 프랑크, 둘은 정말 부정을 저지른 것일까? 누가 알겠는가.

더 무서운 것은 끝까지 두 남녀를 지켜보는 서술자의 존재이다.
'나'라는 단어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지만 끊임없이, 집요하게, 아내와 그의 부정의 상대인 듯한 남자를 관찰하는 시선.

정작 일어나는 사건은 별 것 없지만, 이 미치광이의 머리 안에서는 그 사건들이 다른 사건들과 겹치고, 변화하고, 가지를 친다. over wrap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맞는 소설 구절을 읽어본 적 있는가? 로브그리예의 것이 꼭 그렇다.

항상 바보같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우둔한 독자로서의 질문,
"왜 직접 증거를 찾거나 물어보는 등의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집요하게' 관찰하기만 하시는건가요?"
무서웠을까? 

두껍지 않은 책이라 집중하면 하루에 읽을수 있다. 
사실, 시점과 말하려는 요지, 세부적인 정황 등이 하나도 이해가 안된다. 
묘사가 너무 치밀하다. 오싹하고 기분 나쁠 정도로 치밀하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은데 그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이야기는 처음의 묘사와 아주 비슷해 처음으로 돌아간 것도 같다.

번역하신 박희원씨의 설명으로 나의 답답함은 모두 해결되고 이 로브그리예라는 양반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았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무려 1957년 작품이다.   

박희원씨가 요약해 놓은 문장이 이 소설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 같아 적어본다.

1) 눈-세계와 의식 사이의 교전지
2) 시간-항구적으로 지속되는 현재
3) 공간-모든 의미를 향해 열려 있는 텅 빈 공간

세부적인 내용을 말하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므로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튼 강추하는 작품이다~!!!

 

질투, 알랭, 로브그리예, 누보, 로망

키에슬롭스키는 흔히, 작품의 내용을(사회적, 종교적, 정신분석적) 해석의 용어들로 번역하는 순간 작품이 왜곡되어 버리는 감독이라는 식으로 (잘못) 인식된다. 

단순히 그 안에 스스로 침잠하여 직관적으로 즐길 것, 그에 대한 어떠한 말도 하지 말 것, 그리고 그것의 진정한 내용을 돌이킬 수 없이 물화시키는 용어를 거기에 적용하지 말 것 등등... 이론을 향한 이러한 저항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통해 오해받거나 상처 받았다고 느끼는, 또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과 그것을 기술하는 것,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술가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불안이나 쾌락에 대한 비평가나 이론가의 담론은 단지 그 작품들에 관해 말할 뿐, 그것들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작품 자체와 철저히 무관하다. 그러나 공평하게 말하자면 동일한 구분이 이론 자체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철학의 경우, 주체 개념의 역사에 대해 말하거나 제대로 된 각주를 충실히 달아가면서 기록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비판에 의한 비판적 언급으로 보충해 주는 것과,  이론 속에서 작업하며 "주체" 개념 자체를 정교화하는 일은 서로 별개의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키에슬롭스키를 대상으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즉 그의 작품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작업을 성취하기 위해 그의 작품을 참조하는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 외관을 가차없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심오한 자율성에 대한 어떠한 피상적인 존중보다도, 해석된 작품에 훨씬 더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론은 그의 작품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실천하는 것이다."
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번역 상태도 좋고 원서의 내용이 충실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도서이다.

진짜, 눈물, 공포, 지젝, 키에슬롭스키

이방인을 소재로 한 영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살인에 관한 짧은필름"을 보고 원작이 너무 궁금해졌다. 그만큼 "영화적 아우라가 강하다면 소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존경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버금가는 문장력과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한 인간의 충동적 살인과 그에 따른 내면의 고통!  이는 마치, 무의식에 의한 카타르시스 충족처럼 보인다. 다시말해, 살인으로 인해 내적 평온함을 얻는 것 말이다. 어쩌면 자아와 이드의 싸움이 격렬하게 진행되는 주인공의 내면이 이야기를 끌고간다.   

자주 거론되는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역시 최고의 도입부라 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으로 소설 전반에 대한 분위기가 암시된다. 카프카의 소설이 연상되는 것도 이 한 문장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이 문장의 여파는 소설이 끝 날때 까지 이어지며 책을 덮는 순간 그 살아있는 이미지들이 머리속을 어지럽인다.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이야기 축은 흔들림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인간 내면(ego)과 사회(super ego)가 충돌하는 아이러니(또는 부조리)를 발산한다. 이는 도스토엡스키와 카프카 소설과의 공통점일 것이다. 이런류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기에 이방인은 나에게 보물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당분간 이 책 속의 이미지조각과 사유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내 무의식에 이방인이란 존재가 자리하고 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번역도 역시 깔끔하게 잘 됐고 전집 시리즈라 소장하는 가치도 충분 할 것 같다.                               

이방, 카뮈, 알베르, 까뮈,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