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은 동물의 이름 중 가장 유명한 이름일 것이다. 흰고래 모비딕을 처음 만난 건 십여 년 전 뮤지컬 〈모비딕〉을 통해서였다. 배우들이 연기와 노래, 연주까지 하는 액터 뮤지션으로 내용도 형식도 생소한 작품인데다 신화를 연상시키는 모험담을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강력한 인상을 줬고 원작이 궁금해졌다.

 

소설은 흰 고래 모비딕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 에이해브가 복수하기 위해 고래를 찾아 나서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죽고 마는 모험담이자 비극적인 복수극이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모비딕을 만나기까지. 선원들의 벌이는 고군분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를 이슈메일이라고 불러 달라."

 

소설의 화자는 이슈메일. 권태와 우울에 찌들어 있던 그는 배를 놓치게 되고 우연히 작살잡이 퀴케그를 만난다. 이교도인 퀴케그와 주말을 함께 보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어 함께 에이해브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하고 이슈메일은 이들의 모험을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술한다.

 

사실 이들의 모험은 선장을 포함해 선원들의 모습은 목적성을 상실한 광기에 가까운 무모함이었다. 당시는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팽창하던 때로 향유고래기름은 도시를 밝히고 움직이는 에너지가 되었고 선원들에게는 막대한 수입을 보장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고래 포획에 도전했고 불법 포획까지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망망대해에서 거대한 고래를 포획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피쿼드호도 다르지 않았다.

 

소설은 모비딕에 대한 에이해브의 집착을 부에 대한 욕망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대결로 바라봤다. 거스를 수 없는 대 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 충분히 예측되는 결과지만 탐욕과 집착에 사로잡혔던 피쿼드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깊고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이들의 모습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때 인간이 어떤 말로를 맞을지를 상징한다.

상징과 종교, 신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지식이 녹아들어 고래의 종류와 생태, 포경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만날 수 있다. 레이먼드 비숍의 일러스트까지 더해져 투박하지만 더 강렬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뮤지컬이 쉽지 않아 원작도 난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야기다. 소설 속 상징과 신화를 찾아가는 재미와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선원들의 사투와 다양한 인간 군상들까지 함께 만나보는 시간이 되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알면 인물들의 면면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 인간들의 최후는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주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표지 속 작가의 표정이 의미심장하다. 카메라를 들고 눈을 들어 작가가 응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화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저 프레임 안에는 어떤 피사체가 담겼을까. 궁금증이 든다.

 

2009년에 사망한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미국 뉴욕 출신 사진가로 2007년 경매에 참여한 한 남자가 우연히 그녀의 필름을 발견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려 15만 장에 달하는 필름을 남겼고 생전 그녀가 찍은 사진들은 지인들 외에는 거의 공개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평생 사진을 찍어온 비비안 마이어.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비비안 마이어』 이 책은 그녀의 전기이자 도록으로 그녀의 생과 작품세계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과 삶에 대해서 아는 것도 중요하기에 저자는 마이어의 사진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게 된 동기부터 마이어 가문의 뿌리를 찾아 그녀가 카메라를 처음 들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비안의 어린 시절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무책임했고, 하나뿐인 오빠는 마약에 빠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비비안은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고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할머니의 유산 덕에 작가로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이후 그녀는 입주 보모로 일을 하며 남는 시간에 사진을 찍었다. 자연스럽게 그녀가 돌보던 아이들과 집안 풍경이 피사체가 되었고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진들이 탄생했다.

 

그녀는 거리사진작가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 카메라 작가를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구분하기엔 그녀의 작품이 워낙 다양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경계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피사체를 담았다고 생각하니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

 



공식적으로 비비안은 정식 사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평생에 십오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으며 기술을 배웠다. 그녀가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들의 순간적인 일상을 포착했다는 것도 놀랍다. 저자 역시 순간적인 집중력이 뛰어났음을 칭찬하는데, 사진 한 장 한 장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멋지고 아름답다.

책에 실린 사진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순간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녀는 거리예술가로 큰 명성을 얻었지만 그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 카메라 작가를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구분하기엔 그녀의 작품이 워낙 다양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경계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피사체를 담기 위해 수많은 습작들을 통해 기술을 향상시킨 결과라고 하면 그 열정과 노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사실 아무리 장비가 좋고 기술이 좋을 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비비안은 복잡한 카메라를 작동시키기 위해 집중력을 키우고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서 비범함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평생 카메라를 놓지 않고 사진을 찍은 열정과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녀의 바람처럼 좀 더 일찍 인정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 한 번도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을 피사체에 담았고 디지털 기기의 대중화로 누구든지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도 그녀의 사진이 여전히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여전히 유효한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담고 있는 사진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사진 그 이상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놀랍고 아름답지만 조금은 쓸쓸한 비비안 마이어를 만날 수 있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지만 전쟁은 남의 일이었고 과거의 일이었다. 그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전쟁이 결코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는 요즘이라 더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소설은 세계 1차 대전, 아프리카를 두고 독일과 프랑스 간 전쟁에 참여한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 청년의 고백을 담고 있다. 식민지가 된 조국을 위해 참전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어온 우리의 역사를 통해 보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조국을 위한 참전이지만 독립을 위한 참전이 아니어서다. 그럼에도 참전할 수밖에 없던 청년의 심정이 어떨까. 소설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진 않지만 남다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화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멀리 떠나보내고 친구 마뎀바의 집에서 자란 니아이다. 아버지의 다른 부인들과 이복 형제들은 니아이를 잘 대했지만 떠난 아버지는 아내를 닮은 아들을 보는 것이 괴로웠고 어머니의 부재를 견딜 수 없던 소년은 친구의 집에서 안락함을 찾았고 둘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구로 성장했다. 

 

전쟁에도 마뎀바와 함께 참전했다. 총알을 맞는다면 마뎀바가 아닌 자신이 맞기를 바라며 그를 지켰지만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고통에 괴로워하며 자신을 죽여달라는 친구의 애원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그가 고통 속에 숨을 거두고나서야 "왜 친구의 고통을 줄여주지 않았나".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다.  

 

니아이의 고백은 되돌이표처럼 비슷한 장면을 계속해서 소환한다. 그가 느끼는 좌절과 고통. 오직 신에게 고백하듯 진실을 담아... 어떻게 자신이 전쟁에 참여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읊조린다.

전쟁은 영혼을 파괴한다. 군인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명문이라도 전쟁에 참여하고 총을 든 순간. 삶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워지고. 자신도 모르던 자신 안의 광기를 발견하게 된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고 해도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니아이의 고백을 외면할 수 없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고백이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