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않고 무심코 벽에 걸린 책속에 수많은 언어들이 문득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심정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나와는 상관 없을것 같은 그림들의 수다가 내귀에 들어온다.

글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성격이나 인품이 느껴진다면 그림속의 수다에도
작가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더구나 그림속의 정경들이 마치 현실의 나를 비춘것 같다면
그림은 더이상 벽에 걸린 죽은 이야기가 될수 없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외에도 글솜씨또한 대단한 작가의 절절한
이야기들이 나와 무관치 않게 전해져 온다.

꽃을 사랑했던 엄마의 치매때문에 꽃을 보면 울컥 눈물을 솟는다는
딸로서의 이야기며 길거리표 오뎅장사의 노하우를 보면서 김홍도의
타작하는 농부의 모습을 떠올리는 작가의 눈매에..
어느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프로로서의 시각과 감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제 이책을 읽고 나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사람들의
일상이 예사롭게 보아지지 않을것만 같은 감성을 지니게 될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걸린 그림에게 달려가 수다를 떨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얼마전 '아버지의 편지'를 내신 정민 교수님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김홍도의 '주막'그림에서 손님이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돈이 아닌 담배라는것과
'서당'에서 아이가 우는 이유를 '공부를 바치지 못해서'라고 알려주셨다니..
그저 이분들의 안목과 섬세한 시각이 부러울 뿐이다.

세계를 제패한 몽골제국의 딸들이 완성한 고려말 파란의 역사!
충렬왕부터 공민왕까지, 100여년간 고려의 왕은 몽골여인들과 혼인하였다.
이들은 황실을 배경으로 왕을 뛰어넘는 권력을 행사하거나, 왕위에 오른
아들을 대신해 나라를 지배했다. 세계를 정복한 몽골이 유독 고려에만 공주들을
시집보낸 것은 항몽전쟁에서보여준 고려인의 투지와 저력 때문이었다.
이들의 인생을 통해 세계제국 원과 고려의 역학관계, 그당시 격동의 역사를
한눈에 읽는다!

아직도 우리 풍습중에는 몽골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만큼 몽골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많이 미쳤음을 짐작하는데,
대제국 몽골이 유일하게 멸망시키지 못한 나라 고려!
공주를 시집보내면서 고려와 화친정책을 쓰는데..
고려의 왕족에는 몽골인의 피가 흐르고 몽골의 풍습이 전해진다.
그러니..단일민족이라는 우리에게 그나마 같은 인종인 몽골리안의 피가
섞이니 다행이라 하겠다.

원나라의 눈치를 보며 몽고공주(왕후)들에게 굽신거리고 살아야 했던
왕들의 서글픔이 안타깝지만 공민왕을 제외한 원제국의 사위왕들은
인품이 그리 좋지를 못했던것 같다.
어느나라든 왕위를 놓고 피비린내가 안나는 민족이 있겠느냐만
아버지가 아들을,형제를 죽이고 견제하는 이야기는 고려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나마 공민왕이 원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시도를 하지만
결국은 빼앗긴 고려의 땅 일부를 되찾아오는것으로 마음을 접게되고
유일하게 원제국의 공주(노국공주)와 깊은 사랑을 나누는 왕으로
노국공주의 사후에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으로 성격마저 포악해지고
결국은 고려의 멸망을 재촉하는 비운의 고려마지막 왕으로 기록되게 된다.

만인지상 왕의 자리보다 사랑이란 항상 더 위대한가 보다.
다행히 원이 멸망하고 고려는 이성계에 의해 조선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우리 역사에 미친 몽골의 영향이 실로 지대했음을 이책을 통해 더 깊히
알수 있었다.
혹시 알겠는가..지금 내몸속에도 몽골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

아프리카는 태양의 대륙이다. 인류의 기원이 시작 되었다고도 하고 인류의 원시를
가장 많이 간직한 대륙이기도 하다. 태양의 빛만큼 그림자도 깊은것일까..
가난과 가뭄과 전쟁으로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유럽과 맞먹는 면적을 자랑하는 수단! 북부수단의 이스람과 남부수단의 기독교가 충돌하면서
비롯된 내전으로 가뜩이나 다양한 부족으로 구성된 수단국민들은 이리저리 삶을 구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여성과 어린아이들이다.

삶의 아름다운 가치와 사랑을 배우기 전에 살육과 전쟁과 배고픔을 배워버린 아이들!
연필을 쥐어야 할 손에 총을 들고 신나는 음악을 들어야 할 나이에 포탄소리와 죽음의
아우성을 들으며 죽음에 쫒기는 가여운 아이들의 이야기!

이른바 잃어버린 아이들(lost boys)이 되어버린 남부수단의 존 불 다우가 열세살이 되던 어느날
총소리에 놀라 잠이 깨면서..생존을 향한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실제로 존은 머리가 영민하고 본능이 예민한 사람이었던듯 하다.
수단에는 정규학교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당카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예의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할 규범에 대해 엄격히 가르쳐 왔다.

지식보다는 지혜를, 자유보다는 복종을, 어른을 공경하며 살아가는 대가족제도를 지향하는
당카족의 아이로서 존은 모범적이고 지혜로운 소년이었다.
생존을 위해 헤쳐나가는 그의 본능적인 행동에는 당카인으로서의 뿌리깊은 자존감과
가르침이 그대로 발휘가 되었다.

무지와 가난과 단순함속에는 우리가 알지못하는 그들만의 지혜로움과 전통이 있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에디오피아로 케냐로 난민이 되어 떠돌면서도 존은 항상 지도자의 역할을 한다.
남을 돕고 이끄는 그의 품성은 훗날 미국에 정착하여 고향인 수단을 위해 일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모든 인간은 절대 혼자 성장할 수 없다.

존의 뛰어난 품성과 인내와 노력의 뒤에는 그를 죽음의 늪에서 건져내어 손을 내밀어준
같은종족의 아브라함도 있었고 유엔의 지원도 있었고 미국에서의 정착을 도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지금도 아프리카는 깊은 시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가는길'의 시아라리온의 소년처럼 에디오피아와 우간다...콩고..태양의 대륙
아프리카는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르며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삶의 수준이 다르더라도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더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보지도 못한채 어이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유난히 눈망울이 깊고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더이상 고통받지 않는 그런 세상이 와주길 기도한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아니고 신이 찾은 아이들로 거듭난 존 불 다우의 용기에 깊은 존경을
보내며 그의 소망처럼 아프리카에 깊은 어둠의 그림자가 걷히고 평화와 풍요가 가득하길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