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시(詩)중에서도 죽은 자를 위한 산자의
애가(哀歌)! 인간사에서 죽음이란 필연적인 것이기에...그토록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린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눈물과 아픔을 담은 만시(挽詩)속에 근엄하기만 할것같은 그들의
인간적인 사무침이 가슴절절하게 다가온다.

선조때 공조참판을 지낸 송천 양응정(1519~1581)의 소합이라는 여종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시에서는 비록 주종의 관계이지만 여종의 뛰어난 재능을 아까워하며 추도하는 인정스러움
이 그대로 느껴진다.

늘 하서공의 '칠석부'를 외우더니 칠원칠석날에 돌아가고 말았구나
맑은 마음에 재주 있는 너를 어디 간들 생각나지 않으랴

이제 겨우 8살인 손녀를 잃고 지었다는 남씨부인의 시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에미로서
그헤아림이 남다르다.

팔 년간을 일곱 해로 앓았으니 돌아가 누운 넌 응당 편하리라
다만 다여운 건,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인데도 어미와 헤여져 추운줄도 모른다는 것

조선시대는 당쟁의 풍파로 인해 수많은 인재들이 억울한 목숨을 잃고
아까운 재능이 묻혀갔던 고단한 시대였다. 먼저간 친구를 그리워 하면 지은
만시가 특히 많았던건..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정치적으로 부침이 심했다는것을 알수있다.

이사람은 꼭 천상에 있어야만 했는데 속세에 한번 귀양 오자 세상이 변했네
통곡하노라, 광릉 곡조 이미 끊어졌으니 이생에선 다시 그 노래 들을 수 없겠지

연산군의 폭정으로 사망한 박은을 그리며 이행이 유배지에서 쓴시이다.

또한 제주도 유배지에서 먼저간 아내를 그리워 하며 쓴 추사 김정희의 시에서는
내세에서는 바꿔 태어나 지금의 자기 심정을 알았으면 한다고 그슬픔을 적고 있다.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

이렇듯 먼저간 아내를 자식을 친구를 그리워 하며 구구절절 애끓는 심정을
적어내려간 그들역시도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데 이렇게 글로서 그들의
삶을 되짚어 볼수 있으니 글의 힘이란 어찌 대단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나또한 누가 추억해 글을 남겨줄 것이며 이승에 소풍왔다간 흔적을 기억이나
해주겠는가..
이담에 내사랑도 나를 위해 이런시를 지어줄 것인가..

곱던 모습 희마하게 보일듯 사라지고 깨어보니 등불만이 외롭게 타고 있어라
가을비가 내잠을 깨울 줄 알았더라면 창 앞에다 오동나무 심지도 않았을텐데..
-이서우가 꿈속에서 죽은 아내를 만나고 적은 시-

꿈속에서 나마 고왔던 아내의 얼굴을 보아서 행복했으나 오동나무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깨고 말았으니..애꿎은 오동나무를 탓하는 남편의 절절한 사무침이
그대로 느껴지는데..이런 시한수 지어 바쳐줄 사랑하는 이가 있을지..
세월은 흐르고 사람도 갔지만 사랑은 이렇게 글로 남아 그 흔적을 사무치게 느끼니
글로도 남기지 못하는 무능함이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사진이 없던 과거를 유추하자면 남겨진 글과 그림이 요긴하다.
'바람의 화원'이나 '정조이산'의 드라마에서 보듯이
조선왕실의 '도화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듯하다.
김홍도와 신윤복, 김득신 조선의 3대화공으로서 뒷날 후손들에게 많은 이야기꺼리를
제공해준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특히 이 3대화공들의 그림은 정교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해학이 번뜩거린다.

농공상인의 지위가 낮은만큼 도화서의 화공또한 지위가 낮았다고 하고
살림도 넉넉치 않은 모양이다. 곳곳에 양반을 향한 실랄함과 옆구리를 꼬집는
위트로서 그 고단함을 이겨냈던걸 보면 말이다.

왕의 행사나 연회...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그려낸 그림속에서 눈여겨 보지 못했던
조선의 음식들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풀어낸 작가의 심미안은 그가 사학을 전공하고
민속학과 음식사를 연구한 재원이어서 더 특별한것 같다.

논에서 김을 매고 강가에서 고기를 잡고 아이가 이제 첫돌이 되고..시집온 새댁이 첫상을 받고
눈매 고운 주모의 탁배기가 그려진 그림속에 무심코 차려진 음식속에서도 향기를 느낄수 있으니
과연 우리 조상의 식탁에는 어떠한 음식들이 놓여졌는지 점점 호기심이 생기게 한다.

움직이지 않고 무심코 벽에 걸린 책속에 수많은 언어들이 문득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심정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나와는 상관 없을것 같은 그림들의 수다가 내귀에 들어온다.

글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성격이나 인품이 느껴진다면 그림속의 수다에도
작가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더구나 그림속의 정경들이 마치 현실의 나를 비춘것 같다면
그림은 더이상 벽에 걸린 죽은 이야기가 될수 없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외에도 글솜씨또한 대단한 작가의 절절한
이야기들이 나와 무관치 않게 전해져 온다.

꽃을 사랑했던 엄마의 치매때문에 꽃을 보면 울컥 눈물을 솟는다는
딸로서의 이야기며 길거리표 오뎅장사의 노하우를 보면서 김홍도의
타작하는 농부의 모습을 떠올리는 작가의 눈매에..
어느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프로로서의 시각과 감성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제 이책을 읽고 나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사람들의
일상이 예사롭게 보아지지 않을것만 같은 감성을 지니게 될것이다.
그래서 미술관에 걸린 그림에게 달려가 수다를 떨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얼마전 '아버지의 편지'를 내신 정민 교수님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김홍도의 '주막'그림에서 손님이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이 돈이 아닌 담배라는것과
'서당'에서 아이가 우는 이유를 '공부를 바치지 못해서'라고 알려주셨다니..
그저 이분들의 안목과 섬세한 시각이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