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어떤 이유에서건 위로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나이가 먹으면서 느낀 것이 삶은 남에게서보다는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위로의 방식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해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위로도 그것과 마찬가지란 느낌이랄까. 가끔 남을 향해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실은 평소 자신을 향한 위로에 인색했다는 뜻일 게다. 흔히 말하듯 자신에게 없는 것을 타인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 면우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마주하면서 느낀 점도 바로 저런 것이었다.

그것은 멋들어지고 낭만적인 시의 세계가 아닌, 나와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이 함께 나누는 위로로서의 시의 세계였다.

사실 처음에는 ‘교신’이라는 짧은 시에서처럼 이 시인은 다분히 순간을 잘 포착하는 사진가처럼 느껴졌다.

『동짓날 저녁 십오층 북쪽 베란다 캄캄한 데서 담뱃불 반짝

같은 동 삼층 북창 드르륵 열리고 조금 있다가 또 반짝

군청색 하늘 속 별들 한꺼번에 반짝반짝』

하지만 그 순간포착의 겹겹은 출퇴근길과 버스 정류장, 그리고 대중교통 안, 보일러 기계공으로서의 자신의 삶과 가족, 자연과 고향이 모두 함께 어울리는 시간 속 장면들이었으며, 거기에 함께 겹겹이 얹혀진 시인의 속내는 자신과 자신이 거쳐 가는 세상을 위로하는 감정이었다.

『…… 바람 불던 밤, 꽃잎들 한꺼번에 곤두박질치던 길

다투는 기척 중에 여자 목소리 날카롭게

그래 니가 내 인생에 뭐 하나 해준 거 있어, 하고 울린다

순간 휘청하고 벚꽃 흰빛 쓸쓸해지며 가지에

간절히 매달아둔 쉰살 봄 일시에 다 떨어져내려버렸다

나는 산 너머 집 쪽에 밤하늘에 대고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보일러 스위치 넣고 삼십분 뒤 책 겉장 갈아댄 박용래시전집을 펼쳤다.』

ㅡ ‘쓸쓸한 길’ 중에서.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이 없듯 아무도 아무렇지 않은 밤이란 없다. 고로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 밤도 있을 수 없다.

세상 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기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이 얼마나 될까. 이 순간 문득 그의 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눈물 핑 도는 순간조차 참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주인 것처럼 느껴진다. 경배 올리듯 모든 삶을 위한 시어로 빚은 위로의 술로서.

『보일러 새벽 가동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 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은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ㅡ ‘화엄경배’

『이번 주에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나를 아주 놀라게 만든 말이 있었어요. 바로 ‘자기혐오’라는 말이었지요.……난 이렇게 생각했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어떻게 자신을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미워한다는 생각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지요. 내가 그 개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을 하는 불교도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이기적인 생각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고 난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 심지어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책에서 달라이 라마가 ‘자기혐오’라는 단어에 대해 처음 들어본다는 듯 낯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저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런 각도에서 보자면 정말이지 ‘자기혐오’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도 언급하듯 잘못된 소망이기는 하지만 저런 이유에서 벌어지는 자살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일말이라도 자신을 고통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곧 자기사랑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단어 하나도 보고 듣고 하는 각도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마냥 각도에 따라 변하는 어떤 감정을 쫓아 논하기 전에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그것에 대한 알아차림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어느 날 불교방송에서 달라이 라마가 나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잠시 시청한 적이 있었다. 처음 듣는 생소한 용어였던지라 금방 잊어버렸지만 방송에서 그는 서로 상반되는 두 단어를 일컬으며 마음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너무 들떠있다면 내려 앉히고, 너무 가라 앉아 있으면 끌어 올림으로써 일정 수준의 평화로운 마음에 늘 머물라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저런 조작은 우리들 마음에 유연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유연성의 중요함에 관해 언급하는데 그것은 유연성이 삶의 적응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당연한 권리로서의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것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곳에 머무르는 방법을 아는 것이 급선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삶의 적응력이 아닌 행복에 관한 적응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로 행복은 찾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기 위해 있는 것 아닐까. 어느 곳이든 적응하지 못하면 머무르며 살 수 없듯 행복도 그러한 것이지 싶었다.

요즘 카드론, 스피드론, 전세론 등 여러 가지 대출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책 표지를 바라보다 장난스럽게 떠오른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행복론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자신에게 돈이 있다면 돈을 구할 필요가 없듯 행복도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행복을 구한다는 말이 참 처량하게 들리기도 한다. 과연 자신을 스스로 처량하게 만들 이유가 있을까.

 『〈여러분은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익숙해지세요!〉』

안다, 누구나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익숙해지기는 힘들다. 수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매일을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듯. 예를 들면 멀쩡한 소방관이 사고현장에서 여느 때처럼 열심히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다 죽으면 칭찬과 박수와 환호성을 받던가. 아니다. 살았다면 칭찬과 박수를 받겠지만 죽으면 애도와 눈물과 안타까움이 깔린 원망만이 오갈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죽음은 그렇게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승사자의 검은 옷처럼. 오죽하면 산 사람도 장례식 때는 검은 옷을 입고 갈까. 그러나 사람들은 평소에도 검은색 옷을 즐겨 입는다. 죽음에 익숙하다는 듯. 결국 그 의미는 우리가 남의 죽음에만 너무 익숙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하다. 내 탄생과 죽음은 정작 본인에게는 어떤 기억도 남기지 않는 경험으로 끝나니까. 내 탄생의 순간을 다른 사람들만이 기억하듯 죽음도 그러한 것이다.

이 소설도 그런 시각으로 볼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은 사건 중심으로서의 죽음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연현상으로서의 생체 죽음에 대하여도 다룬다는 점이다. 

어느 날, 동물학 교수로 일하던 한 쌍의 중년 부부가 자신들의 옛 추억을 즐기기 위해 갑작스런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강도 살인범에게 살해를 당한다. 그것도 야외에서 섹스를 하다가.

며칠 동안 그들의 시체는 그들이 있던 그 자리, 바로 해안가에 방치된다. 하지만 소설가는 그들의 시신이 방치된 것처럼 그들의 시간까지 방치해두지 않는다.

죽음이 현재가 된 그들의 시체를 자연이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발견되는지 동시에 과거가 된 부부의 삶을 시체에서 시작해 죽음의 순간, 그리고 여행 과정 등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모레시계를 뒤엎듯.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무신론자 부모 밑에서 자란 작가가 전달하는 시체로서의 삶을 표현함에 있다. 심지어 그 표현들에 내 잠은 뒤척이기까지 했다. 그 차갑고도 사실적인 문장 표현과 냉정한 은유에 내 잠도 얼었던 것이다.

『청각은 우리의 감각 가운데 맨 나중에 죽는다고 한다. 이미 죽은 시체도 침대보가 제 얼굴을 덮을 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흐느끼는 소리, 창문이 닫히는 소리, 의사의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우리 세대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있는 방에서 그렇게 조용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지프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자신의 고함소리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꺼칠하고 흐리멍덩했다. 아직도 땀을 흘리고 있었고, 성기가 곧추섰다. 혈액과 열정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 아니라 근육의 경련으로 뻣뻣해졌기 때문이다. 잔인한 운명.』

『이 나흘째 되는 날 늪파리 구더기들이 꼬투리 알주머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늪파리가 조지프와 셀리스의 내장 속에 낀 알들이 창자가 부패할 때 생기는 열기로 부화한 것이다. 죽은 지 오래인데도 아직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니!…… 구더기들은 죽음의 잔치에 참석한 음유 시인이다.』

이렇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시체가 되면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아지는지, 과거와 추억이 얼마나 허무한지, 죽음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들의 모양새는 어떠한지, 그럼에도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그러한 이미지를 곳곳에서 세심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표현력이 아주 탁월하다.

작가는 이 소설의 결말로 사건 해결 보다는 부부의 시체가 머물렀던 그 자리가 어떻게 자연에 의해 회복되고 복구되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허함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묘한 희망을 맛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 묘한 희망이란 바로 생명력이며 그것은 시작과 끝의 공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아무래도 무신론자조차 무시해가며 피해가기에는 자연이라는 종교가 가진 힘은 상당히 큰 듯하다.

나름의 독창성과 매력을 잘 갖춘 훌륭한 소설, 책에 매달려온 그 많은 찬사들에 나 역시 동감을 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