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음미해 보면 빵 한 조각에도 온 세상의 이치랄까, 순리랄까, 그런 것이 담겨있는 듯 하다.

따로따로인 여러 재료가 하나로 섞여 숙성의 시간을 거친 다음 열이 가해지는 고통을 당하고 식혀진 후에야 우리에게 맛있는 빵이 되어 나타나 소비되어 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즉 우리의 삶도 그런 과정의 되풀이가 아닐까 한다.

박 민규의 소설집 속 인물들은 열이 가해지는 오븐 속에 들어간 빵 반죽 들이었다.

오븐은 그들을 새롭게 익도록 만드는 세상, 다만 우리는 그 빵 맛의 결과를 모를 뿐이다.

다만 작가는 일관성이 느껴지는 레시피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빵을 만들고 있었을 뿐.

아직 삶의 방향이 잡히지 않은 젊은 청년들 혹은 중년의 남성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약간의 유머와 시니컬함, 그리고 환상문학이라고 하는 효모를 첨가해 그들을 반죽하여 오븐에 넣어 열을 가할 뿐인 것이다. 그 후 빵 모양이나 맛은 어떤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을 상상함에 있어 이상하게도 달콤하다든지 담백하다든지 하는 특정한 맛들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저 무덤덤하거나 담담함 만이 남는다. 혹시 그들의 빵 맛이 비슷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저 주인공들의 인생반죽과 빵 만들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 상상력은 주인공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 상상력에 의해 그들과 나는 이렇게 구분되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들에는 어쩌면 결과가 없다 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작가는 주인공들의 삶의 여정 속 한 부분만을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주인공들의 상상은 그들의 안식처가 된다하는 점이다. SF 소설식의 우주여행을 하거나 사물, 혹은 동물들과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입장에서 상상이지만 그들에게는 실제의 세상이다. 공통점이라면 우리의 입장에서든 그들의 입장에서든 모두가 한 순간, 한 때라는 것이다.

처음 읽어 본 이 작가의 소설들에서 그 스타일이라든지 하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좋다, 나쁘다, 라는 가치기준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소설집이 나에게 전해준 것은 우리들의 삶은 주인공들의 것처럼 오븐이 아니라 상상력에 의해 익어간다, 하는 점이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1년, 365일…, 생각해 보면 그 시간 속에서 매 순간 무언가 하나씩은 꼭 변한다. 초(秒)를 알리는 숫자처럼. 하지만 그것은 변화이되 반복이기도 하다. 시계의 1초가 60초가 지나면 다시 되돌아와 1초가 되는 것처럼. 또 계절이라는 것, 날씨라는 것도 그렇듯 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관찰하다 보면 모든 것이 참 단순하지 싶어진다. 세상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그냥 이런 거구나 하고 말이다. 긍정, 부정 모두가 따로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돌다, 돌다 한 곳을 보여주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저런 삶 속에서 생활은, 아니 우리는 숨쉬고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새삼 생활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4가지로 분류되어 진다. 요약하자면 일정한 환경에서 어떤 구성원으로서 행위 및 활동을 하여 생계나 가계를 꾸려 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늘 변화는 하되 변하지 않는 틀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변화 된 호흡을 할 수는 있되 호흡을 하고 있는 우리란 주체는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말이다.

1년, 365일…,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 크리슈나무르티가 전했던 생활의 기술들을 요약하여 365일에 나눠 담아 보여준다. 그런데 읽어 나가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내용 하나가 한 페이지 내지 혹은 남짓한 내용임에도 그랬다. 제대로 된 책으론 처음 만나본 그의 언어들은 의외로 차가웠다. 마치 그가 말한 ‘차가운 긍정으로 사랑하라’는 문장처럼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알 듯 말듯, 때로는 뭔 소리야! 할 정도로 답답해하면서도 내용의 주제와 상관없이 몇 페이지라도 읽고는 책을 덮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는 점이었다. 뭔가 정확한 답을 말해주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은 오히려 그런 점에서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편이다. 그러나 내 느낌에 내가  말했던 편안함은 거기에 녹아있지 싶다. 답을 모르겠어서 답답한 것이 아니라 단순해진다,  랄까.

내가 억지로 해결하기 위해 뭘 하지 않아도 그저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 문제들 스스로가 알아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처럼. 그렇게 스스로 그 질문에 생각도 해 보다 보면 스스로가 많이 깎이는 듯한 느껴진다. 사상, 감정, 뭐 그런 것들이 말이다. 물론 그것들을 달리 말하자면 에고란 단어가 될 것이다.

1년, 365일…, 그 시간을 살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기술이 필요할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걸 언제 다 배워! 하는 생각에 미리 두렵고 지쳐 마음공부 하기가 힘들고 귀찮게 여겨지는 것 아닐까 한다. 먹고 살기에도 힘든데.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차라리 먹고 사는 게 즐거워 마음공부 할 시간이 없다며 느끼는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한다. 마음이 가진 힘 중에 하나가 저렇게 자기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묻지 말라.(…)우리 내면의 혼란을 말끔하게 제거하면, 저절로 삶의 목적을 알게 된다. 삶의 목적을 묻거나 이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 하면 된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유는 없다. 우리의 마음이 결코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순수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새롭고 순수한 마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자유를 얻는 핵심은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습관의 총체적인 작용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다.』

『어제의 기억들, 과거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매일 털어버릴 줄 아는 마음, 이런 마음이 순수하고 신선하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라.』

마지막 인용문에서 ‘지금 여기’라는 단어들을 보니 또 다른 영성가인 에크하르트 톨레가 떠오른다. 그가 쓴 책을 오래 전에 한 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 최고의 예술은 과거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한 부분이다. 물론 크리슈나무르티와 에크하르트 톨레 모두 억지로, 강박적으로 과거를 떨쳐버리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거가 마음에 작용하는 것을 먼저 직시하고 관찰하여 받아들인 다음 점차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것도 ‘지금 여기’의 내 모습이니까.

더불어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온 에크하르트 톨레의 동영상을 얼마 전 우연히 보면서 접하게 된 그의 말 한마디 또한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만약 지금 이 순간과 친해질 수 없다면, 당신의 삶과도 친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과 친하지 않다면, 인생도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생활의 기술이란 우리 자신의 삶과 친해지기 위한 기술이란 느낌이 든다.

크리슈나무르티가 그의 언어로 전하는 진리의 한 면도 저것과 상통하는 것을 보니 그렇다.

『진리는 나를 제한하는 과거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매순간 모든 것을 새로운 맞이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 그래서 과거로부터 축적된 영향들이 나와 실체 사이에서 장애물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저요, 오르가즘에 도달했을 때, 본능적으로 아, 아이가 생겼으면, 하고 생각한답니다.”

이 무방비할 정도의 솔직함, 세상사람 눈치 보지 않는 말투, 구김살 없는 정신과 자신감이여, 더불어 여자의 몸과 마음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장하다!”

‘아아, 역시 선생님도 나처럼 A씨의 대담함과 솔직함, 여자의 신비한 에너지에 감탄하셨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은근히 기뻤다. 그런데 도쿠나가 선생은 “그 얼굴을 상대로 오르가즘에 이를 때까지 용을 쓰다니, 어떤 남자인지 진짜 장하다!” 하고 말을 이었다.

취기가 확 달아날 것 같은 충격. 이런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라 하지 않을까. 같은 말에 대해 이리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니. 천동설과 지동설만큼이나 다르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가까우면서도 다른 문화요, 다른 우주다.』

한 마디로 저자가 지구촌 곳곳에서 보고 들었던 문화와 생각의 차이에 따른 이질감을 유머와 객관적인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의 요네하라 마리의 저서들 중 처음으로 뽑아 읽어 본 책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서로 다르며, 또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라는 이야기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풀어 낸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 맛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저자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서로 유쾌하게 웃으며 맞이할 수 있는 이해의 배려가 더 중요하다 전하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한편으론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생각이나 사상이 얼마나 세상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도 함께 알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또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나라 내 민족 내 종교라는 이름의 교육으로 세뇌되어져 그 집단의 마음에 칼과 방패를 잡아 쥐게 한다. 가끔은 폭력으로 치장 되어진 이런 것 또한 너무나 자연 발생적인 것이어서 정말로 하늘의 섭리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종교를 떠나 영적인 진화를 부르짖는 많은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진다.

영적인 진화라 하니 조금은 신비주의적인 흐름으로 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느껴지지만 글쎄, 마녀들의 다스는 12가 아닌 13이라고 해서 요즘 세상에 그런 마녀들을 잡아 화형식에 처하지는 않으니까 그 정도만으로도 세상의 영적인 진화는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이뤄진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가벼운 웃음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고 보니, baker's dozen도 13이기는 하다. 그럼 혹시 dozen은 원래 13의 에누리?!)

아무튼 이 책은 나로 하여금 큰 것을 통해 작은 것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세계, 아니 통 크게 우주 전체가 아닌 이 날짜, 이 시각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주변을 인색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인색하다는 것은 꼭 물질적인 것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적인 이해와 공감에도 인색이라는 단어는 흔히 존재한다. 자기 마음만 관찰해도 이렇게 느끼고 배울 것이 이렇게 많은데, 거기에 타인의 것까지 더해 본다면 오죽이나 많을까. 그런 과정을 거쳐 어줍지 않은 시시비비의 순간만 걸러내도 우리들의 시간은 꽤나 풍성해지고 쓸모 있게 사용되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