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후의 기부, 혹은 나눔의 형태이지 싶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기부 형태와는 달리 때때로 게임을 하는 듯한 두뇌싸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유산은 하나의 미끼가 되어 어떤 상처를 입던 말든, 혹은 죽더라도 덤벼들고 마는 물고기 떼들 간의 피비린내를 사방에 퍼지도록 한다. 아마도 그래서 탐정소설의 소제로 유산이 자주 쓰이는 것일지도. 뭐, 사실 우리네 실제 생활에서도 보면 그와 관련 된 강력범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도 있고.

이 소설은 일본의 어느 재벌 가문인 이누가미 가에서 막대한 유산의 향방이 담긴 유언장을 발표하면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을 ‘소년탐정 김전일’(난 한 번도 만화로든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이 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 안 봤으면 얘길 하질 말아?!)의 할아버지라고 하는 탐정이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글쎄, 1950년대에 쓰여 진 작품이라고 본다면 이 소설은 분명 그 게임을 흥미롭게 풀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통속적인 재미 면에서 지금 봤을 때,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선 너무 늦게 발표되어 좀 손해를 본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사실 드라마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웬만한 사람들에겐 소설 속 가족 관계 간에 얽힌 그 이야기가 불륜을 주제로 쓴 한 편의 멜로드라마를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하는 실소 머금은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내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이 소설은 그러나 인물묘사라던가 분위기 묘사와 배경 묘사라던가 하는 부분에선 꽤나 선명한 잔상을 남긴다. 그러한 묘사의 탁월함이 주는 묘한 기운 때문에 이 저자의 작품이 똑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영화, 혹은 드라마로 몇 번씩 제작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러한 묘사적 분위기는 표지에 표현 된 가면의 느낌에서부터 시작된다.
읽기 전부터도, 읽고 있는 중에도, 그리고 읽고 난 후에도 그런 연유에서인지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줄곧 맴돌았다. 오직 한 명의 등장인물만이 실제로 가면을 쓰고 나오지만 주요 등장인물들이 보여 지고 있는 그 성격과 모습들은 그들의 실제일까, 아니면 그들 또한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줄곧 갖게 했으므로. 그 만큼 저자는 등장인물들에 대해 뻔한 듯 우리가 상상하는 방향을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도 독자로부터 그 긴장감을 느슨하게 놓치지 않게끔 하는 저력을 발휘한다.

거기에 은근하게 작품 주변에 깔아 보이는 일본 문화에 대한 은유적 비판 표현(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은 책을 읽는 도중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약간의 실소를 머금게 하기는 했지만 책이 전해주는 진중한 무게감에 실질적인 힘을 가중했다는 생각을 머금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 그 누구의 할아버지라고 하는 긴다이치 고스케와 관련 된 다른 책들 또한 나로 하여금 관심 갖도록 만들고 있었다.

흐름과 방향........
우리들 인생 속에서 줄곧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떤 화음 잘 맞는 듯한 듀엣의 한 원형을 이루는 저 단어들. 우린 때론 그들의 손짓 따윈 모른 척 거스르기도, 때론 그들이 하는  몸짓 그대로를 따라 가며 산다.
그런데 트렌드라는 것도 그렇다.
과거에 트렌드라는 말은 ‘방향을 틀다’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방향과 흐름을 따라 갈 것인가, 아니면 틀 것인가라는 말은 트렌드 리더가 될 것인가, 아니면 추종자가 될 것인가라는 경계선에 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나침반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듯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 가끔은 반대 방향으로 가야할 때도 있고, 그것이 가리키는 그 방향 그대로 전진 해 가야 할 때도 있으니까.

사실 이 책은 원제목 그대로 트렌드라는 것을 해부하고 있는 책이다. 즉, 원칙 그대로의 트렌드가 가지고 있는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알려줌으로서 어떤 것이 그 세계에서 단명하고 어떤 것이 장수하는지를 알려 주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로 어떤 이들이 어떤 장소에서 그 트렌드들을 잉태시키고 키워 나아가는지 또한 알려준다.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이아몬드 형으로 구성 된 6개의 트렌드 집단(소비자의 비중 중 1% 정도에 해당하는 트렌드 창조자와 반 혁신적 소비 집단을 빼고) 중에서도 특히 트렌드 결정자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사실 트렌드 창조자와 결정자에 대한 분간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트렌드의 확산이라는 것이 바로 위에 있는 집단에서 아래의 집단으로 옮겨가는 수직적 움직임, 그러나 그것이 어떤 사회적 지위나 서열이 아니라는 그러한 상황에서 그것은 어쩌면 미적 감각이라는 개념 하나가 보여주는 근소한 차이일 뿐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물론 거기엔 유명인사(예를 들어 연예인과 같은)의 힘이 더 큰 파급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100% 받아들일 수 있는 명제가 되지는 못한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존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개성(비즈니스를 위해선 상품성 또한 고려해야하겠지만)을 볼 줄 알고, 만들 줄 아는 능력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 않은가.

그리고 책에서도 설명하듯 심리학자 매슬로의 언급대로 ‘사람들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자신의 개성을 발산하기 위해 스타일과 취향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는 말처럼 우리가 만약 평소 자신의 개성에 필요한 창의성과 다양성, 그리고 독립성을 추구하지 못하는 존재라면, 그것은 우리가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생활이 즐거울까.

그러한 면을 생각해 보건데 트렌드도 소비자 입장에서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이 책은 갖게 해 준다. 물론 그것을 위해 소비자 모두가 High-End 제품을 써야한다거나, 혹은 Early-Adopter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요즘 '신상녀’(솔직히 트렌드 결정자들의 신상품 구매율이 다른 소비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하더라도)라 해서 뜨고 있는 모 여가수가 트렌드 리더, 혹은 미국 여가수 마돈나만큼의 패션 아이콘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말하는 즐거운 놀이란 어떤 변화가 주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모두가 트렌드 리더가 되라는 뜻도 아니오, 무리하게 파격의 물살(원더걸스의 노래를 성악가 조수미씨가 불러 앨범에 수록한다 한 번 생각해 보시라.)에 빠져 허우적 대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세상에 널리고도 널린 식상의 대상이 꼭 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이다. 트렌드를 따라가더라도 스스로 업그레이드 시켜보는 재미와 즐거움은 그래서 생활 속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혹시나 가끔 그럴 때, 평소보다 돈이 좀 들어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나는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을 주저 없이 떨쳐 버렸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명 즐겁고도 명분 있는 자기 가치투자라 나는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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