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구입 시, 읽을까 말까 고민을 좀 했었다.
내가 그의 첫 번째 책을 읽을 땐 그가 한 때 패션계의 마이너리티였다는 점이 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책을 내는 것을 보니, 순간 그는 이제 그런 자신의 과거를 어떤 신화로 치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염려가 되어서였다.
그러나 Idea라는 책 제목을 단 만큼 이 사람의 작업 방식이 조금은 궁금해 한 번 읽어 보기로 결정했다.

일단 나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컬렉션(디자인)을 풀어 나가는 방식 등이나 영감을 받는 원천과 방법 등에 관해서는 말이다.

그러나 내 개인적 시각에서 보자면 이 책에서 그는 그의 idea보다는 여전히 그의 life를 더 욱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책 제목을 보면서 77년생인 저자가 벌써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idea를 내 세울 수 있는 경지에 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그는 다른 한국 디자이너로는 보기 드물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 책을 통해 그러한 모습을 여전히 볼 수는 있다.
그의 다음 무대를 파리가 아닌 뉴욕으로 잡은 것만 봐도 충분히 그렇고 그가 뉴욕시장을 뚫기 위해 벌이고 있는 지금의 방식을 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역시 그의 디자인 세계를 느끼게 해 주기엔 역시나 공허함이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가 진정한 의미로서 책 제목으로 아이디어를 표방한다면, 그 아이디어가 그의 상품에 어떻게 용해되어지고 있는가를 더욱 성실히 보여 줘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랄까. 예를 들어서 팝아트, 그리고 그와 관련 된 아티스트들, 또한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갤러리들의 방문을 통해 받은 영감이 어떻게 그의 옷으로 표현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줬으면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솔직히 말해서 뉴욕 컬렉션 구경(물론 그것이 뉴욕 진출 과정에 있어 필요한 방문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내용은 잡지 에디터들이 매 시즌마다 자사 잡지에 실컷 다루지 않던가!)이 과연 저러한 것들 보다 이 책에 담을 만한 더욱 귀중한 내용이었을까. 오직 자신의 옷 색깔에 자주 묻어 나오는 빈티지에 대한 이야기만이 나올 때, 그는 구체적으로 신나서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책에서 말하듯 보편적인 의미가 아닌 인간 최범석의 디자인이 어디에서 오고, 디자이너 최범석은 세상과 어떻게 만나는가! 만을 형식적으로 본다면 뭐, 충분할지도.
그가 왜 세계 어느 도시의 어느 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쓰길 좋아 하고, 어떤 예술가들을 숭배하며, 어떤 식으로 쇼핑과 자신의 휴가를 즐기는지가 궁금하다면 말이다.

나는 그가 쿨한 사람이고, 성실하고도 열정적인 사람이며, 늘 도전을 꿈꾸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리고 그가 현재까지 이룬 것들에 대해 그는 모든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아도 전혀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말은 그가 더 이상 최소한 한국에서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을 더 이상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그럴 수준도 아니고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빈티지를 찾기 위해 청계천을 돌아다니던 시절은 그에겐 이미 전작에서조차 옛날이 되었고, 이젠 외국 벼룩시장과 박물관 및 갤러리와 아티스트들에 대한 예찬론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그가 이런 식으로 책을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것은 최소한 10년 후쯤으로 미뤘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이 그가 세계로 진출하는, 특히나 홍보와 마케팅을 중시하는 뉴욕으로의 진출에 큰 도움이 된다면 할 말은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젊은 나이에 2권의 책이나 낸 성공한 빅 디자이너라는 소개 명칭을 달기 위해서라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잘 한 짓이다 말 해 주고 싶다.

고로 내 말은 앞으로의 좀 더 진지한 책은 32살의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디자이너로서 확고히 세계 시장에서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더욱 더 들어 내 보인 다음에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전해 주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건 어떨 런지.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
뉴욕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스스로 마이너리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로 그 벽을 다시 한 번 넘어 그 곳에서의 성공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 생각 해 보건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존재 하지만 의미를 찾지 못 해 괴로워한다는 것.
그래서 존재의 유, 무에 대한 상황까지 의심스러워 내 뱉는 저 질문.
역시 슬프다.
내 일이든 남의 일이든.
아니, 이건 나누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같은 인간의 일이지.
그렇게 똑같은 인간.
그러나 우리는 늘 부정한다. 우리는 다르다고.
심지어 세상은 개성이라는 말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해가며 목 놓아 부르짖다 못 해, 마케팅은 물론이오, 이젠 출세 지향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라는 문장, 참으로 이기적이다.
망할 것, 너 혼자 사니, 이 세상?

자, 그럼 이제 살펴보자.
저 위 짧은 서두에 나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슬픔이 어쩌고 하다가 인간이라는 동물에 나를 동일화 시키더니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리다! 못 해 별안간 다른 인간들의 행동에서 열 받았다는 듯 그 격한 감정을 드러내 놓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결국 ‘나’ 자신을 ‘너’라는 단어를 통해 그들로 하여금 분화 시킨다.(엄밀히 말하자면 여전히 동화시키고 있기는 하다.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바로 이 책 ‘NOW'는 저러한 것들이 우리의 에고, 혹은 무의식이 하는 짓들 중에 하나라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다가간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나는 없다면서.
우리가 말하는 나란 결국 우리의 에고일 뿐 우리 자신, 즉 ‘나’가 아니라면서.
그냥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하나의 소우주로서.
그러기 위해선 에고가 주는 불안정하고 불균형한 상태를 깨우치기 위한 영적 자각이 필요하며, 그 자각의 순간이 순수한 ‘지금’이고 거기 있는 순순한 ‘있음’의 상태를 느끼고 살다가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이쯤 되면 우리는 다 알 것이다. 이 책이 영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그렇기에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니, 고로 측정이 불가능하니, 말 그대로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빠질 수 있는 그 이야기들.

이 책을 보면 융이 떠오를 수도 있고, 메가톤 급 베스트셀러 ‘시크릿’류의 서적들과 ‘에너지 버스’ 및 ‘연금술사’와 숭산 스님의‘오직 모를 뿐’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혹시 나만 그런 건가?)
그런 차원으로 이 책의 장점을 내 개인적으로 말해보라 하면, 저 책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이 책이 채워주고 있다 말하고 싶다. 즉, 학술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도 어렵지 않으며,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뀔 듯 그렇게 말초신경만 건드리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단점은 무엇일까? 저 책의 장점들을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느껴지는 신선도의 떨어짐이랄까.
그러나 이 책은 장점이 더욱 돋보이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옆에 두고 여러 번 읽을 만한 가치가 분명 있다고 생각 될 만큼 말이다.
만약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한 번 쯤 통찰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다른 차원의 시각으로서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글쎄, 저자는 이 책에 대한 나의 이러한 표현에 대해 나의 에고가 발악하는 모습이라 말할지도 모르겠지만-단적으로 나라는 표현을 엄청나게 많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단지 ‘내가 나의 에고를 이겼다.’라 할 수 있는 그 ‘지금’의 순간을 더욱 많이 느끼고 싶을 뿐이다. 이 세상에서 내게 쥐어진 그 경험들을 다 하고 떠나는 그 날까지, 그리고 물론 저자가 말하는 그 ‘Now’의 순간을 통해서.

‘가장 이상적인 완벽한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고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 중에 쓰인 구절이다.
그 구절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더듬으며 글로 써 내려 간다는 것에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와 일맥상통하는 작업, 즉 가장 이상적인 완벽한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하기 위한 작업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나로 하여금 갖게 한다.
그러나 문득 ‘이상적이고도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는 어딘지 모르게 그러한 작업에 관여하는 많은  인간들의 한계를 엿보이도록 하는 경계심을 갖게도 한다.
인간의 기억이 시간이 흐르면 미화되고 편집된다는 학술적 연구가 엄연한 사실로 세상에 알려진 마당에 그 ‘역사적 사실’이란 가치는 여전히 과연 그 역사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까? 라는 끊임없는 물음표를 그러한 글들을 쓴 이들에게 던지도록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 ‘단순한 열정’은 그러한 면에서 어떠한 의심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소설이다.

장편소설의 기준이 도대체 뭘까 싶을 정도의 얇은 분량을 펼치고 있는 이 소설.
처음엔 그 분량에 얼마나 많은 진실을 담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다 읽은 후엔 이 소설은 양보단 질이라는 산술적 개념에 너무나 잘 부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에 보이는 양은 몇 시간-이것도 사람에 따라 길수도 있으리라-정도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전해지는 그 풍부한 감정과 상념의 분량이란 저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전하는 그 감정과 상념이란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 혹은 그 불륜의 사랑을 과감히 폭로했다는 것 보다는 그 사랑 앞에서 처절히 대응했던, 그러나 한 없이 무너지기도 했던 그녀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묘사함에 있어 따라 나오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 솔직함은 단순히 용감하다거나 정직하다거나 하는 식의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아니면 그 반대로, 또는 우리 모두를 통쾌하게 만드는, 말 그대로 우리에게 ‘공감’되어지는 솔직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이다. 너무나도 쉽게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그 글들을 통해.

그래도 연하의 유부남과의 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도덕적 판단이 필요할진 모르겠다. 할머니 소리 들을 나이의 여인네가 망측하게 뭐하는 짓이냐며 돌을 던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 분명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 의견을 물어 볼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다.
고로 그 뻔한 사실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자의 전화 한 통화에 목숨 걸며 살았던 한 여인네가 그러한 사랑을 통해 우리를 대표하여 보여줬던 행동과 느낌, 그 공명의 울림에 주목해 보자.
그 울림은 카타르시스요, 오르가즘이다.
최소한 나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