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겨울이다.
첫 눈은 이미 내렸고, 사람들은 그 때 또 다시 자신들의 추억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아니, 누군가는 추억의 수를 놓고 있기도 했을 것이다.
첫 눈이라는 그 신기할 것 하나 없는 연례행사가 열린 그 날, 모르긴 몰라도 주머니 안에 전화기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전화벨은 신나게 울렸을 것이며,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 전파는 그 문자들과 목소리를 이어 주기에 정신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파가 도달할 일 없는 누군가는 첫 눈에 얽힌 지나간 사연들을 머릿속으로 읊조렸겠지. 작년에, 몇 년 전에 내린 그 첫 눈과 함께 있었던 인연들, 혹은 연인들을 생각하면서.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날씨의 변화에도 사람이 생각나고, 추억이 생각나고....... 그래서 사람들은 연락을 한다. 아니면 그 연락을 추억하거나. 그런데 그러한 모든 사람들의 인연들이 갑자기 생겨났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어쩌다 알게 되어 자신들의 시간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애정을 나누고, 그러다 호감을 나누며 자라난 아름다운 꽃과 같은 각자 나름의 특별한 인연들이었을 게다. 글쎄, 이러한 것을 꽃에 비유한다는 건 좀 잔인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알다시피 꽃은 시드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에 그것을 비유하고자하는 마음이 이는 건 그 꽃이 표현하는 평안하고도 아름다움이 그 시듦보단 강하게 사람마음에 각인되어서일 것이리라. 그리고 ‘채링크로스 84번지’는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사실 누군가는 대부분이 사소하고도 잡다한 편지들을 담은 이 책에 너무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손으로 쓴, 혹은 타자기로 쳤을지도 모를 지금은 재래식이 된 그 편지왕래 방식에 대하여 키치 문화에 대한 싸구려 향수를 뿌리고 있다 할 수도.
그렇다 치자.
그러나 다만 1949년 어느 가을에 쓰여 진 간단한 책 주문 편지 하나가 2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서로에게 순수한 기쁨과 정을 나누게 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책을 구하는 작가와 고서적을 다루는 서점 직원(들) 사이에 오간 편지들 속에 어느덧 한두 마디의 곁가지 이야기가 써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심지어 그 주변 인물들과도 그 관계는 따뜻하게 이어져 간다. 이것은 마음과 마음은 이어진다는 그 형이상학적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이 확인되는 글들 앞에서 내 마음은 미동이나마 하지 않을 례야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갑자기 정이 들고, 뜻이 맞아 급하게 달아오른 정 때문에 뭔가 해 주고 싶다하는 행동이 아니라, 관계에 있어 적절한 거리감 안에서 누리는 자유스러움을 공유하며 발생 된 순수한 배려가 돋보이는 따뜻한 감정이었던 것이다.

글쎄, 그러한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20년 동안 만나지 못 했던 것은 어쩌면 비극일 수도 있으리라. 더군다나 한 사람의 급작스런 사망 때문이라면 더욱 더.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이 만나지 못했기에 더 큰 의미를 선사하는 듯하다. 그것은 알량한 신파조의 애절함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도, 그러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친절한 교류는 충분히 완성되어 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세상에 남겨줬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작가는 무의식중에 그것을 세상에 알리려고 이 책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성공한 작가는 못 됐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간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들을 보기 위해 꼭 눈으로서가 아니라 믿음이나 마음 하나로도 충분하다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함께 만들어 준 타인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전화로 ‘여비만 있다면 우리랑 가시겠어요?’그러는데,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대로가 나을지도.......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어요.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 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에 있어요.” 어쩌면 그럴 테고, 또 어쩌면 아닐 테죠. 주위를 둘러보니 한가지만큼은 분명해요. 여기에 있다는 것.
이 모든 책을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혹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아~ 지금 창 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내 눈에 보이는 공간들이 또다시 서로와 서로를 연결해주는 그 전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듯 하다. 오늘밤도 우리가 숨쉬는 공기 속 전파는 그 문자들과 목소리를 이어 주느라 정신없겠지.

종업원 주식 소유제를 바탕으로 회사가 운영되는 작은 건축기업.
좀 더 회사에 대해 설명 하자면 “서른 명의 직원 중 열여섯 명이 오너이고, 직원을 뽑을 때는 5년 뒤 오너가 될 만한 사람을 뽑는 회사.”가 바로 사우스 마운틴이다.

종업원들이 주식을 소유하여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회사는 세상에 비단 여기뿐 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 회사만큼의 사회적 의식과 책임을 갖고 일하는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세상은 혹시나 기업에겐 이익의 크기가 중요하고, 그에 따른 성장만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 하는 만고불변의 기업경영정신이라는 그것에 푹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아무리 종업원들이 주식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어서는 아닐까.
이 책은 그러한 정신에 대해 과연 그럴까요? 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물론 느낌표도 함께.

그럼, 우선 1980년 대 말부터 종업원 주식 소유제를 실시한 이 회사의 여덟 가지 기본 원칙부터 살펴보자.

-민주적인 직장 만들기
-성장이라는 불문율에 도전하기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기
-마서즈 비니어드 섬(그들의 회사가 있는 곳)에 전념하기
-장인 정신을 지키기
-지역 주민을 보호하기
-지역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기
-성당을 짓는 사람처럼 생각하기

이렇다. 솔직히 말 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 늘 우리가 말하는 것들이다. 아니면 선전용이라 생각하는 것들. 말로는 그럴싸하여 많은 회사들이 내세우고 있는 그것들.
그러나 그들은 행했고, 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랑체도 아니다. 책 속 곳곳에서 저자는 자신들의 운영 체계에 대한 갈등, 그리고 한계점과 고민 등을 드러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 두 번째에 있는 성장에 대한 그들 회사의 생각은 어떻게 저 원칙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지, 그 회사 생명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인지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를.
몸체 큰 일명 빵빵한 회사가 되어, 혹은 되기 위해 주식을 발행하고 직원들을 앞세워 그 투자자들의 배를 불려주도록 하는 그것이 과연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그것을 목표로 한다면 나머지 7가지 원칙들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는지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만들게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새겼던 회사의 초심을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 앞에서 잃어버린 그 많은 회사들을 상기시키면서 말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성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위해 자신들은 그것을 희생할지언정 그들이 생각하는 나머지 소중한 것들을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 회사 직원들이 성장의 가능성 대신 작업의 질을 높이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트럭 대신 소를 택했다. 이 경우에는 소가 우리 작업에 더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p.84

글쎄, 어쩌면 회사치곤 욕심이 없다, 근성이 없다, 혹은 승부욕이 없다 말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대다. 다섯 번째와 여덟 번째 원칙을 보라. 사실 그들이 짓는 건축물들이 모두 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도 인정한다.
그러나 진정 노력한다. 자연을 훼손시키려하지 않고, 돈이 들더라도 자연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짓기를 원한다. 고로 그들을 저처럼 심리학적 성격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들은 섬을 위하고, 자연을 위하고, 직원을 위하고, 주민을 위하고, 지역 경제를 위하는 모습,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후세에도 저러한 원칙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에 의해 회사가 나아가기를 바란다. 대단한 꿈이지 않은가.
그러나 실제 그 꿈들의 많은 것들을 이루고, 이루고 있었다. 모든 직원들의 합의와 열망과 협동심을 가지고 말이다. 결국 그들은 그저 의식 있는 한 그룹의 행동하는 사회인들인 것이다.

욕심이 많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고 크게 확장하는 회사라야 직장을 창출해 내고 나라 경제를 원활히 돌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더 큰 장점이라 말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분명 서로의 일장일단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기업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곳인지를. 바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안의 개인과 개인의, 그리고 팀과 팀 사이도 벌어지도록 하는 것이 저 곳이지 않은가. 고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공평히 누리고 살아가기는커녕 서로의 뜻하나 맞추기도 힘든 세상인 것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해 대단히 미화하려는 뜻은 없었다. 그러나 또한 경제문제로 요즘 또다시 뒤숭숭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느끼면서 무조건 성장을 외치던 많은 위정자들의 모습이 이 책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반값 아파트, 서민을 위한 정책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이 그런 사람들의 입으로만 달성 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우스 마운틴이 벌인 지역 서민을 위한 주택사업은 뜻있는 작은 소규모의 기업과 기업인들, 주민 한 사람, 그리고 그 직원들의 마음만으로도 행동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앞으로 선거 때, 저러한 공약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특별하게 바라 볼 필요를 못 느끼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구린 짓 하다 내 놓는 재산 환원조차도 말이다.

한 가지 더, 요즘 다시 나오고 있는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뉴스들을 보면서 그 과거 성장 시에 일조하고도 버림받아야 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마음 아프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작지만 튼튼한 기업, 자신의 가치를 개발하고 펼치는 기회를 주는 회사, 그렇게 직원들과 회사의 미래를 위해 공평히 함께 나아가는 그런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았다면 과연?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나라 경제가 살려면 중소기업이 살아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지도.

글쎄, 쓰고 보니 어째 도덕 교과서 같은 책으로 오해 시킬만한 리뷰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저자도 아직까지 자신들이 걷고 있는 길이 반드시 옳다거나 확실하다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풀어야 할 문제점들이 아직도 많고, 앞으로도 분명 있을 것임을 토로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는 회사의 저 원칙에 대한 신념까지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이 진행된 것을 보면 미래에 대한 낙관 또한 보게 된다고 언급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은 후에도 그들의 열정과 희망이 내 가슴에 계속 남아 있다.

언젠가부터 서점에서 툭하면 나오는 광고 중 하나가 휴가철에 CEO들이 읽는 책들에 관한 목록이다. 내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자 주제 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도 그 리스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할 한 권임을 말하고 싶다. 최소한 그림 사들이기에 바빠 결국엔 욕을 먹자 혹한의 극지방에서 고생하며 핸드폰 실험을 하고 있는 직원을 보여주느라 헛된 광고비 쓸 일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그러한 작태를 끊임없이 행하고 있는 여러 기업들의 모습 중 하나의 예에 불과하겠지만.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사업을 꿈꾸는 직장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일반인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물론 나 개인을 포함하여 행동으로까지 간다면 더욱 좋겠고.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책으로 언제나 기억 될 듯 하다.

얼마 전 나 홀로 외국 여행을 하다가 어떤 남자가 눈에 띈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단지 유명한 관광지에 그도 나와 같이 홀로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저 사람은 왜 혼자일까, 누군가와 그 장소에서 약속을 했을 수도, 소설 속에서처럼 몇 년 후 여기서 만나자라는 식의 그림과 함께, 아! 동반자는 화장실에 갔는지도 모르지, 혹시 여기서 일 하는 사람.......’기타 등등 나 혼자 말 그대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나 같은 범자도 이럴 진데, 소설가들은 어떨까. 그야말로 망상대해를 헤엄치지는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목요조곡은 그 망상대해 속 작가들을 위한 조곡이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유명 여류 소설가와 얽힌 다섯 명의 여성 글쟁이들이 매년 모여 그녀를 추모하던 가운데 마침내 그 해엔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순간이 다가오는 이 야기. 곧 그들은 각자의 개성과 상황에 들어맞는 작가적 고유의 망상들을 끄집어내 사건의 진실을 작곡해 나가니까.

이 책은 분명 픽션일 것이 분명하겠지만(나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논픽션의 분위기 또한 자아낸다. 왜냐하면 작가가 그리는(특히나 여성이라는 틀을 갖춘 작가들) 작가들 세계의 모습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리라.
“......진짜, 엄청난 굴곡이 있는 것 같아. 작가란, 항상 자신감과 콤플렉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거잖아? 나도 기력이 약해졌을 때는 책방에 들어가는 가 무섭다니까. 그 산더미처럼 쌓인 신간들. 아아, 세상에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구나!......매일 세계 곳곳에서 걸작과 화제작을 쉼 없이 쓰고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압도당하고 만다니까.......”

그런데 그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직업 세계가 그려져서일까. 왠지 모르게 작가가 상당히 신나는 느낌으로 쓴 책이 아니었을까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이야기 전개가 계속해서 뒤엎어지고 이어지고 다시 뒤엎어지고 거의 매 장이 그 방식으로 그렇게 끝까지 이어진다. 마치 작가라면 이 정도 망상쯤 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듯. 그것은 그녀가 다작의 활동을 한다는 점, 거기다 많은 단편들로부터 연작을 끌어낼 수 있는 저력의 작가라는 점(이 점들은 내가 이 작가를 자주 접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맥없이 너무 질릴까봐서.)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해 거기엔 그녀의 재능에 감탄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 진 시기를 생각 해 봤을 때, 한편으론 어떤 이야기꾼이라는 소설가로서의 강박관념과 독자들의 기대라는 압박감에 빠져 저러한 전개를 펼 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치 소설 속의 그 죽은 여류 작가가 느낀 그러한 것들 말이다.

그러함을 하소연이라도 하듯 책 속의 이 문장은 개인적으로 꽤나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정말이지 당신들은, 혼자 태어나 혼자 자란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당신들이 아무리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걸 발굴하고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결코 소설로 완성될 수 없어. 그걸 잊지 않았으면 해.”

한 명의 독자로서 결국 그녀는 그걸 잊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게 읽힌 소설이었다는 말이다. 그녀의 작품을 꿰고 읽는 이들에겐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나에게는 최소한 그랬다. 연극적 분위기하며 인물 하나하나에 부여한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마지막까지 긴장감과 함께 끌고 가는 저력하며, 그녀다운 소설이라는 점에 어느 하나 토 달 것 없는 내용이었다. 참고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일본영화 ‘키사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1년 전 갑자기 죽은 어느 미소녀 아이돌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다섯 명의 남자들이 펼치는 그 이야기와 구성이 상대적으로 엇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우리가 언제나 진실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결국 진실이란 이야기 짜 맞추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다.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자신의 품은 생각들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아니, 어떤 이유에서는 그리 못하니까. 그렇게 세상이 네 멋대로 생각하도록 여운을 남기니 어쩌랴. 고로 망상과 진실은 세상살이의 합의점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것이 때론 불쾌하고, 불편하며 그렇게 믿고 가기엔 찝찝하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한편 우리는 성장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그리고 인간관계 모두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