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답게,~다운’이라는 말들, 사람 꽤나 피곤하게 만든다.
집단 무의식의 시초가 어디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된다는 식의 정의도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것이리라. 더군다나 인간에게는 언어라는 확고한 정의성이 부여 된 기호들이 사용되고 있으니 그 범주에서 탈속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좋게는 하나의 파격이 주는 신선함으로, 나쁘게는 ‘저 미친!’이란 수식어와 함께 제 어미가 산고 후에 먹은 미역국마저 아깝게 낭비된 음식물로 취급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은 성별과 나이, 종교, 직업, 그리고 등에 짊어 진 가문의 영광 등으로 한 사람의 위치와 행동반경에 특정한 울타리를 쳐 놓음으로서 나름의 사회 질서를 인간 스스로 지켜 나아가게끔 한다. 바로 도덕적인 가치기준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도 상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는 그 도덕률이 그렇게 지켜져야 되는 것이 맞지만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도 종교를 보면 그러한 사실이 명백해 진다. 몇 년 전, 예수님이 주신 샘물의 은혜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신전에 뿌리려한 자들에게 갖은 비난의 소리가 쏟아진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그리고 세상엔 그러한 이들에게 한 번쯤 종교와 인간에 대해 생각토록 하는 책들 또한 여럿 존재하는데, 이 책 ‘다다를 수 없는 나라’도 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생각하는 바이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와 베트남을 배경으로 정치적인 의도와 함께, 베트남으로 떠난 프랑스 선교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언 듯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떠오르게도 한다.
물론 배경과 내용은 사뭇 다르지만 절대전능하신 신의 과업을 과연 신이 아닌 인간의 손길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또한 신은 특히나 인간적인 존재의 의미마저 포기하고 사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신앙인들에게 특별히 더 가까이 계시다고 볼 수 있는지.

“이름이 뭐지요?......이름이 따로 없습니다.......우리네 절은 다 이름이 있지요.......이 집은 그저 하느님의 집이라고 합니다.......존재는 무엇이나 다 하느님의 집이지요.......우리가 사는 집은 평화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과연 도미니크 수사가 말한 평화란 무엇이었을까. 베트남에서 쫓겨 난 지도자의 왕위를 되찾도록 도와주기 위해 교회가 마지막 무기로 남아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던 그에게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소명은 과연 신의 명령이라 말 할 수 있는가.

그 파견대는 본국의 정치적 소용돌이로 인해 점차 잊혀져 가고, 이미 그 전부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이루기도 전에 타국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 중 최후로 남은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
그들은 그들은 그러는 사이 한 꺼풀 한 꺼풀 자신들을 싸고 있던 신앙적 존재의 껍질들을 벗어 나가게 된다. 베트남의 자연과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자신들도 하나의 인간임을 세상에 고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두 사람의 백인 선교사를 찾고 있었다.......마침내 그들은 도미니크와 카트린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을 열었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서로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젊은 여자의 젖가슴 위에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여자의 배는 땀과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던 것이다.......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육체를 서로 나눈 법이 없이 눈이 매섭고 말씨가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찾아내게 될 줄로 기대했던 것이다.......군인들은 감동했다.”

어찌 보면 자아 찾기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찾기 힘든 것이거나 보물찾기 식의 개념이 아닐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에게 강요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은 더더욱 아니란 생각도. 또한 타인들로부터의 존재적 망각은 인간에게 자유를, 그러나 고독감을 선사한다. 묘한 모순의 색채가 느껴지는 저 의식들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어떤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가 누리라고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가끔은 내가 왜 영화를 보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감정의 의식만이 남을 뿐인데. 감동과 재미, 뭐 그런 것 말이다.
결론적으로 호불호의 잔재가 전부인 그것을.
그런데 한편으론 영화라는 시각매체를 통한 자극은 일반인들에게 예술품 감상이라는 묘한 고급스러움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듯도 하다. 물론 거기엔 대중성과 오락이라는 접점이 형성돼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언제나 미술 감상보다는 영화 감상이 가볍게 취급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이 영역에서도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른 그 사람의 심미안을 가늠, 측정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을 가지고 영화를 보는 눈에 대한 수준을 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영화가 남긴 잔상들을 향해 진지함의 시선을 던져보는 정신적인 여유를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심미안을 충족시켜주는 감독 중의 하나가 데이빗 린치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데이빗 린치는 그 심미안(사실은 해석에 관한 것이지만)에 대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영화에서 뭔가를 보았을 때, 좀 더 그것의 정체를 명확히 애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는 친구와 다시 얘기를 나눠보자. 그러다 보면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분히 난해함이 엿보이는 그런 영화들을 많이 만든 감독다운 충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그는 이 책에서 많은 영화이야기들을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과 경험을 토대로 펼쳐나간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그의 경험들 중, 많은 부분들을 ‘초월명상’과 연결시켜 이야기 한다. 아니, 그런 뉘앙스가 많이 느껴진다. 내가 갑자기 저렇게 말을 바꾼 이야기는 그가 이 책에서 명상에 관해 몇 몇 페이지를 통하여 예찬론을 편다는 것뿐이지 구체적으로 명상방법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것은 명상을 통한 자기 초월적 의식의 세계를 경험해 보라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명상을 하면 남에 대한 공감과 이해, 남을 돕는 능력이 커진다. 내면으로 잠수해 들어가 순수한 사랑, 순수한 평화의 바다-혹은 순수한 공감의 바다-를 경험해 느끼고 알게 된다.”

저러한 느낌, 즉 심연의 내면을 바탕으로 한 그의 통찰력은 영화 작업 과정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즉 예기치 못 한 순간순간의 느낌을 잡아내어 우연이라는 이름을 필연으로 받아들여 작업에 적용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여 진다랄까.
“어느 것과도 어우러질 수 없는 조각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가 여러 가지로 보이는 것 뿐.”

고로 자연스럽게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명상의 힘에 대해 생각 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실 30년 넘게 오전, 오후 각 10분 씩 명상을 해 왔다는 그지만 그가 만든 영화라던가 그의 외모를 떠 올려 보면 상당한 예술가적 광기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선 그러한 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술가들은 고통 속에서 얻은 치열한 삶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창조해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무의식적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대응한다.
“예술가가 더 많은 고통을 당할수록 창의성이 덜 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고통을 당할수록 그는 자신의 일을 덜 즐기게 되고, 정말로 좋은 작품을 만들 가능성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정말이지 그는 그에게 서려있을지도 모를 그 광기를 명상을 통해 순화시키며, 자신의 그 기에 창조력과 더불어 삶의 균형을 부여 했을 수도.

데이빗 린치에게 따르는 컬트의 제왕, 영화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생각해 본다면 이 책은 시시한 재미는커녕, 실망감을 안겨 줄 수도 있으리라. 그럴싸한 영화론, 혹은 예술론 따위는 없으니까. 심지어 그가 영화에 직접 담은 구체적인 철학적 미학조차 희미할 정도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적인 삶을 지향하는 분들께는 한 번쯤 읽어봐도 괜찮다 말하고 싶은 책이다.
최소한 일반인인 나 스스로에게조차 그 동안 불규칙하게 가져 온 명상의 시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다잡을 수 있도록 하는 마음가짐을 선사해주는 것을 보면, 그러한 분들께는 예술가적인 심오한 자신의 세계를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지도 모르니까.
그가 책 마지막에 전하던 평화의 기원과 함께 말이다.

일단,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카뮈의 ‘이방인’을 들먹이는 이 책을 선택하며 들었던 생각은 ‘읽기 만만치 않게구나!’였고, 그 생각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 칠 동안 잠자기 전, 이 책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내 눈을 통해 감응되었던 몇 가지를 끼적여 보고 싶다. 

우선 책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탐색은 정확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머로부터 순진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공감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치 저것을 실험하기 위해 쓴 듯, 이 책은 엄청난 탐색전을 요구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따라가기 쉽지 않은 텍스트가 분명 하지만 몇 번 씹어 읽어보면 저 표현이 이해가 가더라.
즉 정확성이라는 말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이었다. ‘이 세상의 무엇이 그리도 정확하다는 것인지 말 한 번 해보시지!’라는 식으로 말이다. 뭐? 언어가? 감정이? 사물이? 아니면 그것을 서술하는 그 모든 표현들이? 

조서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사실 주인공 아담에 관한 조서를 우리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왜일까.
있었던 그대로 그의 생각과 행동과 망상으로 써진 그 사실 기록인데도 말이다.
물론 그것의 이해를 위해 우리는 작품 해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하나하나에 이해를 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 그저 유식한 소설가가 쓴 유별난 소설로 밖에는 안 보일듯하다. 그리고 꽤나 어려운 거 좋아하는 비평가들에 의해 찬사를 받고, 상을 받은 듯한 그 상징성만이 보일 듯 하다. 

그러나 다행히 저렇듯 아니꼽게 이 책을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건(작품 해설을 본 후에라도), 작가가 그 모든 계산, 즉 자신이 이러한 글을 쓰고 있다하는 목표의식이 각 문장마다 자신감 있게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는지, 그리고 사실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얼마나 목메고 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자는 그 인식의 문제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문장에서 사물과 생각을 꿰뚫는 그의 시선은 개인적으로 예리하기만 느껴졌다. 그것이 아무리 사람들이 꺼리는 공포감에 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빵 부스러기 하나를 개에게 줄 수도......그 짐승이 자신에게 친근감을 가질 우려.....그건 위험한 짓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개가 자신을 쫓아올 것인데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를 이끌고 다녀야 하는 책임을 지기도 싫었다.”
“대학 생활 몇 년을 사색으로 보내고, 독서에 푹 빠진 생활에 충분히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공포(일례로 들자면 태양에 대한 공포)만이 유일하게 그가 균형의 한계 내에 머물 수 있도록 , 그나마도 안 되면 해변으로라도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그 갈라터진 미라에서 나의 그 어떠한 것도 알아보지 못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발가벗을 채, 시커멓게, 마침내 불에 타서, 마침내 창조되어.”
"우리에게는 동굴과도 유사한 집이 있습니다. 우리 얼굴처럼 구멍이 뚫려 있고, 우리 엉덩이처럼 의자들로 가득차고....., 결국 우리를 모방한 집 말입니다."

결국 그렇게 난해하다고 생각되며, 비이성적이라 할 수 있는 아담의 말과 행동들은 신문지면(우리는 늘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떠드는 그것)을 통해 한마디로 어떤 ‘미친 놈, 혹은 사회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 쯤으로 정의되어지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치료감호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정신병원에서 아담은 정신과로 실습 나온 학생들(?)과의 대화 도중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부족하여, 아니 부정하고자 자신을 분석하여 해체하려 기를 쓰는 세상에 무릎이라도 꿇듯.

“난 사람들이 날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해요. 난 많은 것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아닌 일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나보고 하라는 일.....간호원이 내게 얌전히 굴어야 한다더군요. 그래요. 내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겁니다.....죽는 것, 아뇨,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그건 마치 태어나기 전과도 같아요. 다시 소생하려고 안달할 것이 분면한데, 그건 피곤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당신이 거대한 체계를 생각하도록 이끌고 싶어요. 어떤 점에서는 보편적인 사고를, 순수한 정신적 상태를 말입니다. 아시죠? 추론의 정점일 수 있는 것,....심리학, 철학, 수학, 그리고 모든 것,......모든 곳의 정점 말입니다......그런데 모든 것의 정점은 뭐죠? 그건 존재하는 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해! 하루 종일 그놈의 정신병리학 뿐이군.....다 끝이야. 당신들은 당신들이고 나는 나요. 더 이상 내 입장에 서려고 애 쓸 것 없소.....제발 부탁하건데, 더 이상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시오......”

파괴가 있어야 창조가 있다 했던가. 그렇다면 도대체 우린 무엇을 위해 사람들을 파괴하려는 걸까. 그 존재의 파괴를 왜 꾀하려는가. 그것도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정의, 혹은 질서유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맞다. 하나의 정의는 본래의 그것을 파괴하는 짓이기도 하다. 그 따위 창조로 세상은 가득 차 있다고 작가는 말 하는 듯 했다. 이젠 그런 것들을 파괴하자. 

그러나 조서는 그 단어의 의미상 창조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건 누가 정한거지? 여전히 별 쓸 데 없는 질문이 따라 나온다. 그걸 파헤쳐 뭘 하겠다고.
그렇다. 조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적으면 된다. 존재하는 대로 말이다. 그래도 창조하고 싶다?
기록하기 전에 많은 것을 파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