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구체적인 언어의 기록보다는 그저 조용한 내적 느낌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책이다. 왜냐하면 행여 타인의 죽음을 통한 통속적인 감동과 자기반성이라는 의미만이 전달될까싶기도 하려니와 그 이상의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퍼져 나오는 책임에도 그러한 내 느낌의 감상문이 이 책을 읽을 타인들의 의식에 제한된 표상을 그려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타인들에게 이 책을 전할 때조차 자연스레 말이 아껴짐을 느끼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화책을 본 듯 하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만화가 있는 줄 몰랐다. 이렇게 사회성이 짙게 배어나오는 만화가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동안 어디에 발표되었던 것일까.

단편 만화집이지만 단편 소설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만화.
80년 대 중, 후반을 그리고 있는 이 만화의 스토리들이 단순히 그 시대 민초들의 삶을 그렸다하여 대우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성을 그렸다는 작품들이 찾아보자면 어디 이거 하나였겠는가.
그러한 가늠에서 그동안 이 만화가의 작품들이 손꼽혀 왔다함은 역시나 그의 작가적 역량이 제일 크게 빛을 발했다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러한 빛이 독자들에게도 눈에 띄었기에 복간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었을 터이고.

사실 사회의 리얼리티를 들여다봄에는 어느 정도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게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지만 분명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거니와, 내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이런 현실 속에 자신의 운명을 내 맡기며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을 아무리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운다 해도 그 진정성에서 생기는 고단한 삶의 고름까지 모른 척 되어 질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도 그러한 세상에 힘없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삶에 어린 암울함과 울분, 그리고 불공평함에 대하여 추운 겨울 서릿발과 같은 날카로운 획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화해와 순응, 그리고 그 속에 깃든 희망을 은연중에 엿보게 해 준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삶, 그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인 듯하지만 거기에도 하나의 싸이클, 즉 순환성이 존재함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는 그러한 느낌이다.

인간에게 매 순간 끊임없이 매달려 나오는 질문은 바로 ‘어찌하오리까?’가 아닐까.
어쩌면 그 질문의 연속성이 지금껏 있었기에 상황 속 하나하나의 선택을 해 가며 벌어지는 우리의 일들이 그 많은 사람들 손에 의해 상상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픽션화되어 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고로 이 단편들의 내용이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어디서 본 듯 한 느낌이 들어도 독자의 입장에서 그다지 흠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러한 픽션의 내용들이 우리의 현실 속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들 삶 속에 용해되어 있다는 그 사실감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붙이자면 지금 우리가 현실 속에서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후퇴의 모습이 과거 1980년대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뭔가 뒤 끝이 구린 향수 냄새를 불러일으키게도 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가 그리는, 혹은 필요로 하는 남성상, 그리고 여성상은 틀려질 수밖에 없으리라. 특히나 남녀 성차별이라는 단어조차 쓰기에 무색해진 요즘 세상에 남자의 역할이라든가, 여자의 역할이라 하는 대다수의 것들도 그 성(性)벽 앞에서 무너지고 있으니, 그 역할 론을 대부분 집안일, 바깥일로 나누던 예전의 흔적들은 고리타분한 영역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대한 그러한 향수까지 몰지각한 반동분자적인 사상으로 몰 것 까지는 필요 없을 터이니, 그런 면에서 이 책 ‘부생육기’는 궁합 잘 맞는 부인과 함께 인간다운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간 과거 어느 중국인의 모습을 통해 그 향기에 심취 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총 6장중에 5장(유구국 기행기로 지금의 일본 오키나와라고 함.)과 6장(양생과 소요를 통한 삶의 바른 행로)은 후세 다른 이에 의한 위작이라고 하는 이 책이 아직도 많은 이에게 읽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심복이라는 자가 유명한 영웅이라거나 가문의 영광을 누릴 정도의 유명 집안의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처음부터 사람들에 의해 엄청난 고전으로서의 인기를 구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뒤늦게나마 그러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후세에도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의미일 게다.

그런데 그 공감대라는 것이 자신의 부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차지하고 있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저자가 남편임을 생각할 때, 남성본위적인 느낌이 먼저 강하게 다가옴에는 어쩔 수 없다. 즉, 남성들에게 이런 부인과 살았으면 하는 일종의 환상을 심어준다 랄까. 저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자랑할 만한 부인이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보여 준 그의 삶이라는 것이 거의 한량수준이라 말을 해도 과언이 되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하는 것이다. 내말은 세상유람 좋아하고(물론 부인과 함께), 자연을 사랑하는 취미생활 등을 즐기던 사람이니, 반대로 여자들 입장에서 그와 같은 남편상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기까지 하다는 말이다.

부인을 사랑하고(부인도 남편을 끔찍이 위한다.) 세상의 자연을 사랑한 그에게 그러한 표현의 올가미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지금의 세상 흐름 앞에서 이 한 권의 책이 전해주는 느낌은 인생의 치열함을 제대로 실감치 못하고 깨달은 헛헛한 무상함인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대문호 임어당이 극찬한 했다는 것도 결국 재기 넘치는 그의 부인이었을 뿐, 이 책 전체, 혹은 심복의 삶에 관한 것은 아니었지 싶다.
솔직히 풀어 말해, 좋은 느낌으로 우리가 바라보며 배우고 느껴야만 될 부분들만 섭취하면 되는 것이 감상자의 도리일 수도 있겠으나, 책 자체가 금술 좋은 부부의 사랑이야기 이상의 감상적 대상으로서 무리하게 포장되어 이 시대까지 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 든다는 말이다.

인생을 향유하는 방법은 치열한 모순 속에서 하나의 선택을 함으로서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통찰과 성찰이 얻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부부관계에서조차 나올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물며 그러니 부부가 백년해로의 약속을 지키며 서로에게 반듯한 사랑을 구현하는 모습이 어찌 흠 잡혀 보일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부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심복이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절규는 그 의미가 남다르지 싶다.
“나는 여기서 감히 세상의 부부님네들에게 권고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부부가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것도 진실로 불가하거니와, 부부가 서로 너무 정답게 지내는 것도 또한 불사한 것이라’고. ‘의좋은 부부는 백년해로 못하는 법’이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나 같은 사람이 그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고로 이 책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아니 자신의 배필감(특히나 부인감에 대한)에 대한 이상향을 어정쩡한 눈높이로 꿈꾸기보다는, 그리고 세상 구경에 목메는 유유자적보다는 그 서로의 사이에서 흐르는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찾아내는 중용의 성찰은 아닐까 생각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