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신.
이상하다.
전쟁이면 전쟁이고, 평화면 평화지 그 둘 모두를 상징하다니.
저것들은 너무나도 극과 극인 것을.

그것이 세상을 지탱하는 조화의 힘일까?
아니, 균형의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태초에 전쟁이란 씨앗이 뿌려지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세상은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물론 그와 동시에 평화가 귀한 존재임을 인간은 깨우치게 됐지만.

마리 킴이라는 아티스트는 그 극과 극의 모습을 인형이라는 오브제에 잘 담고 있다.
그녀는 청순하고 예쁜 듯한 그 전형의 아기와 같은 얼굴에 여자로서의 팜므파탈을 넘어 극한의 마녀와 같은 악의 기운을 거침없이 묘사 한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 자신의 모습일지도. 아니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다양한 모습을 선사하는 만화경을 드려다 보는 것처럼.

인형 눈동자에 비친 여러 얼굴들은 분열 된 내재의 모습을 가진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그 모습은 기괴하다. 그러나 사랑스럽기도 하다.
기괴한 저것이 나 일리 없다 하며 외면하고픈 것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정면 대응을 통해 저것도 감싸 안아야 할 소중한 존재로 변화되는 법. 나는 소중하니까 말이다.

프랑스 루이비통 사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유명한 다카시 무라카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강한 색채와 그로인한 오타쿠 예술의 기미가 살짝 보이는 그녀.
분명 순수 예술로는 보이지 않는다. 고로 상업적인 측면이 강하게 부각됨을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 요즘 젊은 아티스트들의 전형적인 기류에 그녀 또한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녀 스스로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놓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듯.
고로 아직 젊으니 작품들에서 깊이 있는 맛까지 우려져 나오지는 않으나 앞으로 그 소비적인 형태로서의 재능을 적당히 조절해 가며 자신에게 내재 된 창조적 역량을 십분 발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에 대한 것은 그렇고 이번엔 책에 대해서.
왠지 모르겠지만 급하게 만들어 낸 듯한 느낌을 준다! 랄까. 일련의 단편 그림들을 보이다가 그림과 함께 한 동화 이야기 전개가 1부라는 이름으로 끝나고 만다. 물론 친절하게도 어디에서 볼 수 있다는 설명을 해 놓기는 했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못한 듯. 내 눈으론 거기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교묘히 배어 나오는 상업성과의 연결선을 드러내놓아 조금은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이 책을 만든 출판사의 경향인 듯한데 왠지 모르게 그 형태가 출판사가 아닌 연예인 기획사에서 책을 만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러한 나의 생각은 책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여 책이 아닌 판촉용 행사 브로슈어로 은근히 느껴지기도. 한마디로 눈과 머리는 즐거웠지만 아쉽게도 책의 뒷맛은 개운치 않았던 책.

세상의 모순이란 짝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창과 방패로부터 선과 악까지.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은 대비의 세계에 놓여져 있다. 거울로 똑같은 모습을 비춘다 해도 왼쪽과 오른 쪽의 위치는 바뀌고, 상대방이 호의의 악수를 내밀 때도 우린 그 반대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그렇게 당연시하며 경험하는 것에서 조차 세상의 이치는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대부분은 그 이치에 대해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과 손에 달려 있는 듯 행동할 뿐이다.
그리고 그럴 때는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이다.’하는 여러 신들의 말에 잘 순응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 형상은 인간이 무언가 선택할 때뿐이다. 대부분 인간들의 마음은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자신의 신을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앞서 신과 함께 한 나와 너로부터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네 탓 식의 인과법칙을 따지기 시작하며 그 흔한 이치로부터 분리되려 하는 것이다.

괴테는 저러한 인간들의 내면과 실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치에서 나오는 모순의 간극이 얼마 만큼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바로 ‘파우스트’라는 책을 통해서.
그것은 단박에 메피스토펠레스의 짧은 한 마디의 자기소개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언제나 악을 원하면서도, 언제나 선을 창조하는 힘의 일부분이지요.”

사실 파우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읽을 필요를 못 느끼고 산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바로 나처럼 말이다.
그런데 읽어 보니 그렇게 귀동냥으로 듣던 것과는 달리 정말이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임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비극 1부와 총 5막의 2부로 채워진 이 책은 나에게 기존의 선과 악의 대비로서의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괴테가 우주론적 고찰 대상으로서의 인간과 세상을 바라봄에 맞춰졌다.
다분히 기독교적인 해석으로 비춰질만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대사, 혹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등장을 통해 인간으로 형상화 된 신들에게 조차 선과 악의 기운이 모두 깃들어져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신과 인간의 동일체를 꾸준히 연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다분히 인간(여기선 물론 파우스트를 통해서다.)을 성선설 차원으로만 다룬 것은 아닐까 함이 느껴졌으나 그것을 인간에게 쥐어진 하나의 능력, 즉 여러 감정을 통해 즐겁기도, 괴로워하기도 하며, 동시에 그에 따라 여러 부정적, 긍정적 행동들을 일삼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결국 종교를 초월한 인간에게 내재된 신적 존재와 결합되면서(물론 현실과 내세에선 그 한계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혹은 그 방법을 아는 신성한 존재로 언급하고 있다 랄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가?......저 형상들은 신들 영역에까지 도달하려 애쓰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과 같은 존재로 머물도록 저주받았지. 나는.......훌륭한 자에게 잘해주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있단 말이야. 그런데 마지막에 놈들이 해놓은 것을 보면, 충고를 해주지 않은 것이나 꼭 마찬가지란 말이야.”
“영들 세계의 고귀한 한 사람이 악으로부터 구원되었도다. 언제나 열망하며 노력하는 자, 그자를 우리 구원할 수 있노라.”

그렇게 사랑과 언어, 인간, 종교, 국가, 그리고 가볍게는 세태풍자까지 아는 것이 힘이라고 여러 학문을 섭렵하며 세상을 냉정히 꿰뚫어 본 괴테의 능력은 가히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이 책에 담긴 옮긴이의 노력이 돋보이는 600개가 넘는 주석(솔직히 그것들을 책 말미에 모두 몰아넣어 읽을 때마다 뒤로 넘겨봐야 하는 귀찮음이 있었지만)과 깔끔한 작품해설은 나로 하여금 파우스트에 대한 이해력을 한층 높여 주었다.

좋은 고전의 가치는 확실히 어느 때 읽더라도 그것이 풍기는 강한 메시지가 살아있다는 데에 있지 싶다. 물론 어떤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그 해석과 느낌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국에서 이 책을 요사이 읽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조차 무릎을 치게 하는 면모를 이 책은 보이더라. 심지어 국민과 정부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요즘의 우리 세태에 너무나 어울리는 듯한 글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좋은 음악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저 둘의 앙상블도 그러하리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어찌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질문해대는 것만큼 원죄적인 의문도 없으리라.
그러나 그런 만큼 과연 뚜렷한 가치관과 인생철학, 혹은 삶의 원칙을 마음에 새기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사실 그것에 대해 도덕적 가치로 따지자면 어릴 적부터 무엇이 바르고 그른지에 대해 배우는 만큼 바르다고 배운 것들만 지키며 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살다보니 그 선(善)이라는 것에도 더 높은 선(善)이라는 것이 존재하더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져 올라가다 보면 절대적인 선(善)에 도달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그러다 보니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때문이다. 아무리 선(善)이라도 말이다.
그러면 또 다시 생기는 문제는 진정 무엇이 옳고 그르냐 하는 문제의 회귀로 다시 간다는 것이다.
그 순환의 흐름에서 그러나 이것만큼은 꼭 지키고 살아야겠다는 그것이 각자의 삶을 이끄는 기준과 목적이 되니 참으로 중요하지 않다 말 할 수 없는 법.
이 책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어느 빵 회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편안하게 즐길 것, 경이로운 빵을 만들 것, 고객을 위해 달려갈 것, 강하고 즐거운 빵가게를 만들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넉넉히 베풀 것’
이것이 회사 창립 25주년 만에 35개 주에서 140개 프렌차이즈 점포를 운영하는 그레이트 하비스트 브레드의 사훈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회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천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삶에 대한 자유와 일로 부터의 균형이다. 주당 40시간을 일하지 않도록 하며 그에 맞는 느린 성장을 일궈가는 이 회사.
“나는 그레이트 하비스트에서 일하는 동안 두 가지 명백한 진실을 발견했는데.......일과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한 핵심 요소는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공간을 만들려면 일과 사업이 우리의 인생을 위한 것이어야 함도 배웠다.”

분명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이지만 어떤 공동체, 즉 자신들이 원하는 삶에 대해 같은 의식과 목적으로 모인 그룹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각 점포 주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회사 구직광고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그레이트 하비스트에 맞는 사람은 좋은 빵을 사랑하고, 친절하며, 개인 생활도 일만큼이나 중요한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각 점포 주인들과 맺는 계약서의 일부를 보자.
“무엇이든 본 계약서에서 금지하고 있지 않은 것은 허가된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
회사의 로고와 마크를 걸고, 항상 밀가루를 새로 갈아서 사용해야 하고, 허가받은 배급자로부터 받은 최상의 밀을 사용해야 한다는 정도이다.
그런 식의 자유 프렌차이즈의 개념이니 인테리어도 주인들 마다 각양각색이다.

또한 각 지점들 주인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나누며 협동(물론 본사도 함께)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 다른 프렌차이즈 회사와는 달리 본사의 영향력을 최소화(그러나 도움은 최대한)한 회사이기도 하다.
“우리 현장 팀의 방문 목적은 다른 회사와는 좀 다르다. 우리의 목적은 점주들이 회사의 매뉴얼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 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꽃에서 꽃으로 옮겨 다니는 벌처럼, 지식들이 한 점포에서 다른 점포로 옮겨 갈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꼭 지켜야 하는 원칙으로 자유를 내세운다는 것. 물론 그 자유에는 책임도 따른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삶과 부합되는 책임이기에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다지 지키기 어렵다거나 크게 양심적으로 고민 되어 질 문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원칙이 강한 만큼, 그리고 자신들이 진정 이 사회에 어떤 의미로 뿌리박혀지길 확실히 아는 만큼 아무에게나 그들의 로고와 마크를 내 주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분명 비즈니스이니만큼 자금과 관련 된 후보자들의 조건도 세심하게 본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 목적에 사용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분명 추구하는 것은 부가 아닌 삶과 관련 된 건강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글쎄, 성공과 출세 지향적인 사람들에겐 그들의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 회사의 직원이자 저자인 톰 맥마킨 조차도 자신의 흔들림을 토로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는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에 의한 성공이 주는 성취감 이전에 균형의 시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경이감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책에 대해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까?
왜 이것이 혁신적으로 와 닿아야 하는 걸까. 그만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조차 발견하지 못 할 정도로 이 사회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의 목적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기는 나 자신도 이 책이 분명 경영, 비즈니스 분야의 책임에도 자기계발서, 혹은 삶에 대한 에세이로서, 심지어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까.

인생 한 번 빵빵하게 산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것을 누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누린다고 함에는 왠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만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하다. 그러한 삶에 ‘어쩌면.......?!’ 하고 의문을 던져줌과 동시에 삶의 균형에 맞춰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다루며 남들과 사는 한 가지 방법에 대해 이 책은 조용히 알려주는 듯 하다. 그런 관점에서 개인적으로 ‘사우스 마운틴 이야기’라는 책과 함께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조용한 영향력을 남겼다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