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예술가는 오직 작품을 통해서만 대중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만약 그것이 정답이라면 그들의 작품은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될 것이다.
그런데 옷에는 자기보호와 치장의 의미가 있다.
고로 그 의미는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놓지만 동시에 가리는 모순을 동반한 채 늘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말 또한 될 것이다.
예술가들은 어쩌면 그렇게 살포시 수줍어 가림과 동시에 보여 줄 것만 보이면 되는 사람일 수도 있는 것.

그런데 이를 어쩐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 이외에도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 안달하니, 그들도 그 속박의 눈초리를 벗어 날 수 없다.
특히나 작가들. 그들이 누구인가.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자들이 아니던가.
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외면하고픈 것들까지 찾아 들고 나와 억지로 그것과 마주하게끔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공평하다.
자신들의 글로 세상을 발가벗겨 만든 작품들로 짜여진 옷을 입고는 자신들이 세상을 향해 무작정 가릴 생각만 한다는 것은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측면에서 나에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작가들의 세미 누드화를 감상하는 듯 한, 다분히 쾌락적인 느낌에 빠지도록 했다.
솔직히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그려낸 그들의 모습은 누드화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덮을 건 덮어주는 아량을 선보이며 그 대신에 그들을 통해 자신 또한 벗어 보여주는 재치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말을 전달하고 기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인이라는 직업인답게 때론 예리하게, 때론 아름답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보이는 시적 어휘들로 그들과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그.
사실 작가와 작가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그 흔한 명사 하나에도 또 다른 숨겨진 의미가 담겨지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것은 미화가 아닌,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이해하여 표현 할 수 있는 그러한 언어들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는 노시인으로부터 술에 취해 딸린 자식들 때문에라도 다작을 할 거라는 여류 소설가와 시를 쓸 때에는 행복했지만 소설을 쓸 때에는 재미있다고 하는 시인 출신 소설가, 그리고 사회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는 시인들까지 그러한 모든 모습들이 저자의 언어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작가로서는 물론이거니와 친구이자 동료, 후배와 선배, 엄마와 아빠, 여자와 남자, 직장인과 전업인, 그리고 스승이자 자식이기까지 한 그들의 또 다른 인간적 모습을 바라보려는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말 하건데, 난 이 책에 나온 21인들이 만든 그들의 옷들을 거의 대부분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여 읽을 때 약간 걱정을 했다.
정작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접한다는 건 어딘가 어불성설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기우에 불과 했다.
이 책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처세술이나 자기계발 관련 서적들에 나오는 잠언들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글귀들을 많이 담아내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걸어 온 다양한 작가의 길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도록 하는 도움의 의미가 더 큼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더불어 이 책이 나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작가라는 직업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호기심을 충전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작가를 꿈꾸며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길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인내와 노력을 제시해주는 지도서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고로 그러한 분들은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여하간 의외였다.
이 책을 밤이 새는 줄도 모른 채, 세상이 밝아지는 시간까지 침 흘리며 읽을 줄은.

가만히 앉아 진화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이 느껴진다.
그것은 발달이나 발전과 같은 단어가 함께 떠오르면서 뭔가 점점 더 나아지는 듯한 형상이 그려지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발달과 발전은 인위적인 노력과 연구로도 가능한 반면에 진화는 생명의 유기체적인 현상과 맞물려 있는 단어이기에 좀 더 성스럽다할 자연의 세계와 법칙에 연관되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차이를 생각해 보건데, 흔히 우리가 학교에서 자연, 혹은 생물 시간에 진화론을 접하고 배우 듯, 지금까지 그것을 생명 과학 분야에만 국한 되어진 이론쯤으로 치부하며 살아 온 것에 대해 큰 잘못을 느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고 본다.
사회, 국어, 음악, 미술 등등 우리가 받은 교육은 이미 세상을 쪼개고 나누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 다른 분야가 자신의 분야에 뭔가 거슬리거나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공격이라든가 수용이라든가 협력이라든가 하는 식의 행동 양식을 보여주면 그 뿐이었던 것이다.
마치 자연시간에 사회 교과서를 보고 있으면 선생님에게 혼이 나거나 주의를 듣거나, 혹은 미술 시간에 이것은 정당하다는 듯 음악을 틀어 놓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마 우리가 자연과 사회가 다르다 인식하게 된 동기도 저러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단어를 보자면 그것은 모두 같은 원안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동질성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 또한 제시되어 질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이 책 ‘진화론의 유혹’은 바로 그 동질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근본적으론 진화론이 생물학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것을 사회 인문학적인 접목을 통해서도 충분히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진화론에 대해 적대감마저 드러 내놓는 종교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사회 집단 상이에서의 선과 악, 그리고 협동, 협력관계, 거기에 문화양식 요소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저러한 요소들을 자신이 살아오면서 거친 여러 가지 자연 세계의 관찰과 실험(동물은 물론이거니와 곤충과 플랑크톤까지, 거기에는 입덧과 영아살해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함께 한다.)결과를 통해 사회학적인 것들 또한 얼마나 진화론적인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나간다.

저러한 내용을 보아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저자는 인문학과 자연 과학의 교류를 통해 좀 더 근본적인 인류 문제에 접근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쓴 책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개인적으로 묘하리만치 마음속에 와 닿은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었다.
조금은 엉뚱한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과학자라면 고지식하게 이론이나 설명해 대는 그저 마르고 닳은 똑똑한 사람일뿐이라는 생각이 그동안은 지배적이었으나 저자와 같이 저러한 흥미로운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은 가히 상상력의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보다 다른 호기심의 발로가 그 기초를 다졌을 수도 있겠으나 가설에 대한 이론은 상상력에 기초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거기에다 저자의 아버지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쓴 그 유명한 소설가였다고도 하니 그 영향력도 적지 않았을 듯 하다.(저자는 책 속에서 그러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늘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어쩌면 그 집안의 유전학적인 진화였을 수도!)

그래서인지 이 책은 과히 말 그대로 포괄적이다. 생물학, 인류학, 역사, 사회학, 심리학 등등은 물론이거니와 자서전적인 묘사 또한 적지 않다.
고로 아무리 이 책이 쉽게 쓰여 졌다고는 해도 그 복잡성과 더불어 그 테두리 안에 쓰인 언어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개인적인 능력 차이의 문제이겠으나 텍스트를 따라 읽어 가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상당부분 잔재해 있었다.
어떤 문장들은 그 하나가 너무 길기도 하여 두 세 번은 읽어야 겨우 이해될까 말까한 그런 매끄럽지 않은 묘사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고로 이 책은 서점에서 직접 확인해 보며 자신의 독서 수준을 고려, 비교해 보고 난 후 구입하여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진화론에 대해 그것은 우성과 열성이라고 하는 묘한 경쟁의식의 자극제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사실 저자의 말대로 히틀러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 이론이 자신의 이념을 합리화 시키는 데에 잘못 사용되어지기도 했으니까.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진화론을 ‘사회 다위니즘 Social Darwinism'라고 부른다. 사실 다윈 자신은 노예제도를 강경하게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정책은 ’인간 본성의 가장 숭고한 측면‘인 연민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시각에서 볼 때 다윈 역시 뉴에이지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윈의 이론을 일부 신봉자들, 특히 초창기 시절의 신봉자들에 입각해 판단하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이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집을 태울 수는 없는 법, 진화론의 옹호적인 차원을 떠나서 모든 학문이 어우러지길 원하는 저자와 같은 과학자의 노력이 세상의 분열이라는 지병을 고쳐 나아가는데 하나의 큰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물론 진화론 자체에도 이미 인간의 원죄적인 운명이라 할 만큼의 선과 악의 대비가 극명히 존재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여러 가지 비유를 해 가며 산다.
예를 들면 삶은 흐르는 물과 같다거나 혹은 여행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 중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난 것이 있다면 바로 직소 퍼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삶에 비유될 때, 실제의 그 퍼즐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연과 필연으로 뒤엉킨 그 퍼즐들을 맞춰가는 방법은 우리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즉, 각자 선택에 따른 원인과 결과에 따라 그 퍼즐을 맞춰 가다 보면 제 각각의 서로 다른 삶의 그림들이 완성되어진다고나 할까.
어떨 때에는 당연한 결과로 인해 자연스럽게 조각들이 맞춰지는가 하면 어떨 때에는 인위적인 억지스러움을 고집한 나머지 마구잡이 욕심대로 퍼즐을 맞춰나가 거의 완성되었다 싶을 때, 그 퍼즐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

우선 소설 속 주인공인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그런 모습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때론 멋들어지게 퍼즐이 잘 맞아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하루아침에 그 퍼즐 조각들이 우르르 떨어져 나가기도 하니까.
하긴 여러 종교적 의미가 담긴 그의 복잡 미묘한 이름부터가 그렇기는 하다.
자신의 선택과는 관련 없이 고아가 되어 多종교 사회인 인도에서 태어나 그러한 주위의 환경 때문에 생긴 저 이름의 존재가 앞으로 전개 될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그림을 암시하고 있으니 기본적인 정체성이나 주체성마저 보호받지 못하고 태어난 그의 시작은 흥미진진한 내용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소설에서 저러한 개연은 인위적이라는 풍미를 숨길 수 없어 자칫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선사 할 수도 있다. 아주 흥미롭지가 않다면 비현실적이라는 개념이 먼저 와 닿아 독자들로 하여금 그 소설의 내용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위험수위를 저만치 낮춰줄 만한 TV퀴즈쇼를 접목시켜 그러한 기발한 구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현실의 시간들마저 망각할 정도로 읽는 재미에 푹 빠지게끔 하는 풍부한 재치를 맘껏 펼친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소설의 내용이 사건 설명 중심으로 치우쳐져 글들 속에서 만나고픈, 즉 삶을 꿰뚫어 볼 만한 그럴싸한 문장들은 다소 찾기 어려워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 모든 해답이 있을 수 있다는 그 전체적인 메시지가 저러한 단점을 충분히 덮어 버리도록 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더군다나 그것은 주인공 하나의 삶만을 통해 보여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궤적을 어떻게든 완성하여 보여줌으로서 그들이 쥐고 있던 각각의 퍼즐에 대한 의미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속 시원히, 그리고 흥미롭게 보여주며 현실의 우리 스스로가 완성해 가고 있는 퍼즐의 모습들은 과연 어떠한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전한다.
바로 선과 악, 정직과 거짓, 그리고 사랑과 위선 등이 깃든 퍼즐 조각들을 통해서.
더불어 저자는 이 속에 사회고발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신분제도가 남아있는 인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춰내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재능을 한계 시 하려는 사회적 부조리를 맹렬히 비난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그려내고 있기도 한데, 그것을 통해 얼마 전 우리에게 있었던 ‘미네르바 사건’을 다시금 엿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예상과 빗나갔던 그의 학력을 사건 수습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삼기위해 인위적으로 부각시기에 바빴던 미디어와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얼마나 쓴웃음을 짓도록 했었는지를.

솔직히 읽는 동안엔 전개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빠져 단순한 오락 소설로만 느끼기에 바빴지만, 결국 그렇게 완성되어진 퍼즐들을 돌이켜 보면서 적잖이 많은 것을 생각도록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퍼즐을 하듯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