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보르헤스가 말한 문학적 기법에 상호 텍스트성이란 것이 있다. 일명 다시 쓰기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이야기를 새로운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인해 나는 소설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읽게 됐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는 주인공 막스 티볼리의 생체적 운명은 나로 하여금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끔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오히려 단편 소설 속의 벤자민 버튼 보다 영화 속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와 비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단편 소설 속 이야기는 말 그대로 작가의 단편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또 이야기 구조는 시간의 역류 속에 놓여진 인간의 모습에 걸 맞는 변화에 맞춰 단순히 서술한데 반해, 영화는 시간의 배경을 방대하게 잡으며 서사적으로도 큰 스케일을 표현하여 예의 이름에 다채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인데, 그럼으로 장편소설의 틀을 잡은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당연 예의 그것과 견주 되어야 함이 맞지 않을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 소설을 영화와 좀더 비교해 보자면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화는 서사적인 반면 나는 이 작품을 서정적이라 말하고 싶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재미를 앞세운 블록버스터와 작품성을 내세운 독립영화에서 느껴지는 그러한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에 이미 나와 있는 소재를 다시 한 번 다루고 있으므로 흥미 면에서 다소 어느 정도의 기대치는 접게 만든다는 것일 뿐,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사건들과 그에 따른 결말은 예의 저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 작품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작가가 문장에 담은 세심한 묘사력이었다.

‘그다음엔 국자 모양의 대웅좌. 그리고 빨갛게 충혈 된 눈 같은 화성. 나는 내 스스로 거듭 확신하고 싶었단다. 내 두 손이 물렁물렁한 불가사리 모양으로 쭈그러들어도 저 별들은 변하지 않고, 우주를 가로질러 맥박처럼 반짝이는 별빛도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고. 만일 눈을 깜박이지 않고 똑바로 바라봐서 별이 내 눈 속에 잠긴다면 내 눈도 똑같은 별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이다. 우유를 한 모금 마셔서 넘기지 않고 입 안에 잠시 가둬둘 수 있는 것처럼. 그러면 예전에 느낀 것과 똑같은 별빛, 가득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지하 세계의 행성. 내가 눈을 감아도 저 하늘에 있을 명왕성. 다른 모든 별에 구름을 드리우는 자줏빛 독약 한 방울.’

‘그녀의 커피 잔 속에 떨어진 달을 보았다. 커피 잔 속에서 나방처럼 꿈틀대는 달.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말없이 그 달에 키스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가 커피를 식히기 위해 그 표면에 입김을 불어 골을 맬 때 달이 폭파되어 산산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작가는 편지에 담긴 고백체의 문장이 갖는 최대한의 장점, 즉 서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글을 쓸 때 그림을 그리듯 묘사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 작가의 글이 바로 그랬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묘사가 이야기를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의 단점도 가질 수 있지만 아무튼 내가 느낀 작가의 묘사력의 힘은 이 책을 그냥 읽는다, 라기 보다 감상한다, 표현하고 싶을 만큼의 뛰어난 서술적 감각으로 태어났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과 다름은 어쩌면 고독과 외로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그것에 더욱 큰 특별함을 부여하자면 시간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하는 점이다. 시간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그것마저 더욱 더 그의 편이 아니었다. 작가는 그 속에서 같은 시간, 그러나 다른 흐름 속을 걷는 주변의 그와 관련 된 인물들의 이야기에도 소리 소문 없이 역점을 두어 시간의 역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비극에 다다르도록 가속도를 더해간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닿는 최후의 목적지는 운명의 장난이라 이름 지어진 장소가 도착한다. 그 때 우리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겪을 고통의 크기보다 더욱 이겨내기 힘들고 어려운 일일까 하는 것을.

 

재밌다, 라며 마냥 책을 덮어버리기엔 소설이 남기는 여운의 맛이 사뭇 깊어 그 느낌으로부터 쉽사리 헤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책에 담겨진 고백은 뒤표지에 써져 있는 단어처럼 차가운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그 차가움은 표지의 태양빛을 머금은 해바라기 사진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문득 해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딱딱하게 얼고만 사람들의 마음이 태양에 의해 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으로.

그들의 고백은 어떠한 치장도 허용치 않는 사건 진술서와도 같았다. 더불어 백색종이 위에 인쇄된 그들의 고백은 같은 공간의 차가운 눈밭 위를 걸어 새긴 그들만의 발자국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새긴 것은 결국 발자국이 아닌 진실이었다. 겨우 유아원에 다닐 만큼 어린생명의 죽음 위에 남긴, 눈이 녹아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그들만의 기억으로 완성된.

세상엔 자신들에게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강탈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건에서부터 심지어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그러나 그것은 곧이어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작용이 생성한 공간은 복수라는 단어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복수는 책 속의 어느 화자(話者)의 말처럼 존재하는 기억까지 덮어주지는 못한다. 어쩌면 복수는 그래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없어지지 않는 바로 그 기억 때문에, 복수를 통해 잊으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때문에 하게 되는 그것으로서. 그 사이가 아무리 사제지간, 부모자식지간, 친구지간, 학부모지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단순한 추리 소설임에도 이 책이 저러한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의 고백 속에 반성이라든가 후회, 혹은 용서의 느낌이 묻어 나오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고백은 이 책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그렇게 우리의 상식이 배제된 그들의 고백은 예의 눈과 같은 차가운 온도를 담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관심과 복수가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기준점에 대해 생각토록 한다.

저러한 요소는 소설의 매 장에 붙여진 소제목들, 즉 성직자, 순교자 등과 같은 종교적 뉘앙스를 담은 단어들에서도 묻어나온다. 그것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피의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번갈아 맡아가며 벌이는 고백의 과정에서 다의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 결국 차가움은 따뜻함을 그리워하게 종용하듯 책에 담긴 차가운 진실은 우리를 냉정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애처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들 사이에 자기 입장에 따른 해석의 오해와 기억에 담긴 무의식이 저지른 삭막한 오류의 감정이 아닌 따뜻한 애정이 통했더라면 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야기 속 사건의 원인은 살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기원은 그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기억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을 읽은 나로 하여금 나는 어떤 기억을 마음에 품고 사는지, 기억 때문에 행여 나 자신과 타인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혹은 이미 치룬 희생의 경험은 없는지, 라고 하는 질문들을 마음속에 남기도록 했다. 잔인한 기억은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말했다. 내가 아닌 세상이 그들에게 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복수라고.

우리에게 모든 것은 허용된다.

식당에 비치된 메뉴판에서 어떠한 음식이든 고를 수 있는 것처럼. 단, 식당 주인은 조건을 내건다. 당신에게 음식들을 시켜 먹을 만한 돈은 갖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물론 우린 상대방의 조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 있다. 음식의 맛과 직원의 친절도, 그리고 위생문제 등과 같은 것들을 빌미로 주인의 조건을 음식 먹듯 씹어 삼킬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먹음으로서 에너지를 충당하는 생물인 우리들에겐 조금 밑지는 그런 장사를 할 수도 있다. 충전 된 에너지를 먹고 튀는 방법을 씀으로서 아깝고도 허무하게, 그리고 위험천만 하게  소비시켜 버리는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최악의 가정을 세워 볼 수도 있다. 시비가 붙은 그들 중 누군가가 화에 못 이겨, 혹은 나름의 권리해석을 통한 정당방위의 목적으로 폭력과 살인을 범하는 것이다.

이렇듯 저러한 식당 풍경 하나에도 존엄한 세상의 규칙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약되어 존재할 수 있다. 즉, 우리 스스로가 만든 상식의 범위가 권리에 따른 자유와 책임, 선과 악, 사랑과 증오, 그리고 생과 사의 문제와 같은 허용의 범위를 조절하고 있는 세상이 저 안에서도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허용은 되지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눠진 세상의 부조리는 분명 모순과는 다른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순은 그저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식의 이론적인 서술에 불과 되어 남겨지지만 세상의 부조리는 인간의 운명과 신의 장난(기적과 저주)이 조합하여 만들어 낸 대 서사시로 탈바꿈 된다.

소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그 축약의 전형이었으며 한 편의 대 서사시였다.

그것은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친부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 가족과 그들과 관련 된 주변 인물들 속에서 여지없이 펼쳐졌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건이 일어난 기간이라든가 배경 등이 지극히 협소함에도 스케일이 크게 느껴진다, 라고 하는 점이었다. 소설에서의 그것은 한정된 장소와 시간 안에서 벌어진 사건 하나에 곁가지로 묻어 나오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토대로 저마다의 개성이 분명하게 살아있는 등장인물들로 인해 완성되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소설의 스케일은 한 가정, 한 마을, 한 도시, 그리고 당시의 러시아라고 하는 나라 전체를 묘사하듯 소리 없이 커갔다. 그만큼 이 책은 수많은 변주로 가득 차 있었다. 잠깐 등장하고 마는 듯, 영화 속 엑스트라와도 같은 인물들이 작가의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 중요한 등장인물로 다시 떠오르는가 하면, 종교와 사회를 어우르는 수많은 사상들은 작가의 서술과 묘사가 아닌 그들의 대화 속에서 오가며 그 변주는 연주된다.

또한 개인적으로 인간과 신이 가진 한계를 이 소설처럼 용의주도하게 펼친 소설을 과거에 내가 읽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유의 틀 속에 모기장처럼 촘촘히 박힌 선과 악의 그물을 씨줄과 날줄로 엮듯 형성해 나아간 것이다. 그나저나 관연 그 그물은 무엇을 거르고 남기기 위한 것일까. 평화? 사랑? 인류애? 혹은 신의 가르침? 죄와 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라는 자문 속에 그 답이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신이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신을 구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구원은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소멸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최후에 남는 구원이 죽음인 것도 바로 저러한 이유이다. 우리 모두에게 허용 된 최후의 진실은 오직 그것뿐. 그 순간, 예의 그물은 찢겨져 나갈 것이다. 그런데 무엇으로 인해 그것이 찢겨질까. 선과 악을 모두 어우르는 그것, 바로 참회에 의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