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사람도 아름다웠다.

자연미란 자연과 늘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들만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지 싶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말함에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도 빠뜨릴 수 없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책 띠지를 장식하던 그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멋있다거나 뭐 그런 표현들, 즉 남자에게 좀 더 어울릴만한 표현들도 많을 텐데 왜 나는 그를 두고 아름답다, 라는 말을 하는 걸까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책을 넘기면서 내가 왜 그랬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품고 있던 알래스카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풍경 사진을 보면 그저 아름답다, 멋있다, 웅장하다, 라는 정도의 느낌을 되새기게 된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이는 여러 풍경들은 왠지 나로 하여금 보호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그 지역 풍토에 맞게 차가운 기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진들임에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느꼈다.

찍는 사람의 마음이 사진에서 묻어 나온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이.

사진 속에 마음이 담겨지기 위해선 어떠한 집착도 없이 있는 그대로 오브제를 바라봐주는 것이 우선되어져야만 한다. 조그마한 자기 욕심도 눈치 빠른 상대방에게는 느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하물며 사람도 그럴 진데 자연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알래스카를 바라보는 이 작가의 시선은 애정이 넘치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 속에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따뜻한 교감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그 온전한 사랑, 그들의 욕심 없는 결합이 그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애정.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 그의 필름과 글 속에 녹아 있는 그것.

앞서 말했듯 급기야 그것이 사진 속에서 느껴질 만한 북극의 차가운 기운마저 몰아낸다.

세상이 온난화가 되어간다 해도 이런 방식이라면 누구나가 환영 할 일일 텐데…

『한 에스키모 노파와 툰드라에서 보낸 가을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노파는 흙을 꼭꼭 디뎌가면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쥐는 겨울에 대비하여 에스키모포테이토라 불리는 새끼 손가락만하 뿌리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구멍 하나를 찾아내서 파보자 정말로 한 움큼의 에스키모포테이토가 나왔다. 노파는 그 중에 절반만 꺼내고는, 그 대신 가져온 말린 생선을 넣어 두고 구멍을 다시 흙으로 메웠다. “왜?”하고 묻는 나를, 노파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노파의 행동은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얽히고설킨 생명의 결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생각해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

계절과 물이 흐르듯 자연 속의 시간과 급류에 온전히 자신의 몸을 맡기며 산 사나이.

카리부 떼가 이동하는 시기에 맞춰 그들의 모습을 찍기 위해 홀로 몇 개월간의 고립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에스키모들을 통해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태계의 순환을 배우며 그 자연을 경배하게 된 사람으로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거기에 걸 맞는 운명이란 이름으로 남겼을 정도로.

고로 산이든 바다든 그리고 사막이든 밀림이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언제나 사람들을 일개의 연약한 동물로 보이게 하는 그런 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그는 어쩌면 우리에게 영어에서 말하는 Mother Nature의 진정한 뜻을 전하고자 하늘이 보내 준 여러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일 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자연 앞에서 마치 패륜아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꿈 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기억도 그런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흔히들 인간의 기억에도 편집의 과정이 있어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여러 차례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들로부터 인정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기억의 편집 과정, 고로 그것은 사실을 멀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야기가 형성된다. 진실과 왜곡을 오가며 더욱 풍성하게 혹은 단순하게.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한 권의 자서전이나 전기는 소설이 될 수 있다. 그로인해 그런 책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 글이 아니라 믿고 의심하는 글이 되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예의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그래서 자신의 자서전이나 전기를 쓰는 것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한 부담감과 두려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카를 융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나의 숙명을 정말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 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

인간은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사건 진술서, 혹은 경위서를 요구한다. 융이 기억하는 본인에 관한 사건 진술서는 그의 두세 살 시절부터 기록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이게 사실이야?’ 라는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그를 취조하고 있는 형사처럼, 나는 믿고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술서는 곧이어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의심이 아닌 본인이 자신을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일인가로.

아버지가 목사임에도 아주 어릴 적부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하느님을 두려하며, 자신의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그 두 가지 모두를 인식하게 된 그는 이미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스스로 고립 된 삶을 영위해 간다.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고 독특한 사상을 가진 이 아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니체의 영향을 받으며 스스로의 외로운 성장을 일궈 나간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다른 사람들은 그 벽들이 너무 두꺼워서 그 뒤를 보지 못하므로 거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아무것도 보지 못하면 또한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하며, 아무런 결론도 끌어 낼 수 없거나 자신의 결론을 믿을 수도 없다. 나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그 자체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내 삶의 방향을 처음부터 결정해 버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꾼 꿈들과 자신이 경험한 심령적인 체험, 그리고 연금술과 신화, 종교에 대한 연구로 탄생된 것이 무의식의 조명이다. 바로 언어가 대신할 수 없는 신비한 그 어떤 힘을 이성에 의거하여 학문화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성은 그를 제일 힘들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다.

‘이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좁은 한계에 매여 있도록 한다.……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우리 의식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줄 수 있다. 동시성 현상과 예언적인 꿈, 예감 들을 생각해 보라!’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학술적인 면도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어 간혹 텍스트를 따라가기가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한 가지 분명 한 것은 기이하고도 오싹한 기분을 선사하여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꿈과 관련 된 그의 해석이 기가 막히게 맞을 때(예를 들어 그를 치료하던 의사의 죽음을 예고한 꿈이 그렇다. 그것을 포함해서 아주 많은 그의 꿈들은 학문적인 신화로서의 해석을 요구하여 그러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결코 융과 같은 해석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나 유령과의 조우, 또 사후의 세계에 대한 그의 주관적인 견해는 우리에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선사(환생이나 카르마에 관한 부분)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진중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그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성찰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한 탐구의 계기가 되어 점점 더 죽음 이후의 세상과 가까워진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측면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성찰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세상이 무상한 것을 깨달아 더 이상 환생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흔히 불교에서 많이 들어 보았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리고 카르마는 우리가 풀지 못하고 끝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그 어떤 것들로 인해 생기는 것이며 그것이 죽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환생의 선택을 하도록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가 이것들을 설명하는데 불교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말하기 보다는 자신이 꾼 꿈의 형태를 통해 그러한 증거, 혹은 추측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언급할 사항은 융이 말하길 사후의 세계가 우리의 생각처럼, 혹은 많은 종교나 이야기들을 통해 얻은 기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사실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우리의 경험과 탐구가 그와 같지 못하여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는 것이 융의 자서전이다. 융은 아마도 사람들의 그러한 의심을 일찌감치 예상하고는 이 자서전을 자신의 사후에 출판하도록 명했을 것이다.

‘나는 몰이해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자가 빠져드는 그러한 고독을 겪을 만큼 겪었습니다.……’자서전‘은 내가 연구하고 노력하여 얻은 빛에 비추어 살펴본 나의 생애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상을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와 내가 어떻게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노력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서전‘은 단지 소문자 아이(i)의 윗점, 즉 전체를 완성하는 최후의 한 점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고독이란 말이 나왔으니, 여기에 그것과 관련 된 그의 말을 하나 더 옮겨본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나의 고독은 어릴 적 꿈의 체험과 함께 시작되었고, 내가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할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저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하지만 고독은 반드시 공동체에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독한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해 더 호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모든 개체기 자신의 개성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동일시되지 않는 곳에서만 만개하게 된다.’

문득 이 부분에서 우리가 평소 사람들을 볼 때, 애잔함을 느낀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고독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성이라는 상호작용이 저항감을 일으키게 된다.

왜 사랑으로 그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그만큼 사랑은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 책에서 사랑과 관련 된 부분은 다른 장들에 비해 아주 적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 융조차 그것에 대한 설명이 제일 힘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성찰의 영역 이외에 그보다 더 넓게 뻗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만큼은 넓은 또 하나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영역에서는 합리적인 이해와 표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것은 에로스의 영역이다. 고대의 에로스는 의미심장하게도 일종의 신으로, 그 신성이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 넘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이해되거나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 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 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우리는 소위 가장 깊은 뜻에서 우추 창조의 근원인 ’사랑’의 희생물이거나 수단과 도구다.……부분으로서의 인간은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그는 전체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는 찬성하거나 분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는 그 속에 갇혀 있고 에워싸여 있다. 언제나 그는 거기에 좌우되며 그것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통찰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색은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그것은 비이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결합을 뜻한다. 이성에 도사리고 있는 냉정함에 비이성적인 형상들이 희생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착상’이 우리가 궁리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하물며 선인식(先認識)에 속하는 꿈을 우리가 다루면서 어떻게 꿈을 자신의 이성의 작용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그 꿈이 일종의 예지 혹은 원견(遠見)을 의미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우리는 그것을 견디느라 고생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심각한 불확실성에 내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신의 경우 대극의 복합으로서 의미심장한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진실과 허구, 선과 악이 다 될 수 있다. 신화는 델피의 신탁이나 꿈처럼 이중의미를 지니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본능이 우리를 긴급히 도와주고 신이 신에 맞서 우리를 지지해주리라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는 또한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로 나눠??리고 탐구와 연구는 종교적으로 볼 때는 선과 악의 구분으로 단정되어질지는 모르겠나 하나의 삶으로서 그를 본다면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게 된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개척해 나가며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며 산 한 명의 인간으로서, 프로이드를 잇는 계승자가 될 영광의 순간도 자신의 양심과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워 과감히 뿌리칠 만큼의 의미가 있었다.(이 부분에 관해 개인적으로 ‘살인의 해석’이라는 추리 소설을 함께 추천하고 싶다.)

물론 그가 말하는 의미와 무의미에도 어쩌면 이중의 뜻이 곁들여져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과 대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의미와 무의미의 아래와 같은 그의 이러한 해석은 정신적인 삶의 필수요소가 틀림없을 것이다.

‘무의미는 생의 충만을 방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을 뜻한다. 의미는 많은 것을, 거의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개성이라는 것, 그래서 인간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삶이 가진 특유의 고유함을 그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의미와 무의미도 각자에게 그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과연 부조리에 절망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을 볼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의 각자에게 달린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이 세계는 거칠고 잔혹하며 동시에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무의미와 의미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하다고 믿느냐 하는 것은 기질의 문제다. 만약 무의미성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면, 더 높은 정신발달 과정에서는 인생의 의미충족성이 점점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모든 형이상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아마도 양쪽이 다 진실일 것이다. 인생은 의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한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탐구하는 동시에 인류를 탐구했다.

그러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두렵기도 한, 고독하기도 한 우리의 삶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가 너무나 멀어 보이지도 않고, 도달하기도 힘든 그 세계의 문을 굳이 두드릴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자가 ‘지혜를 터득하는 길은 세 가지다. 가장 고귀한 첫 번째 길은 성찰이고, 가장 고통스런 두 번째 길은 경험이며, 가장 쉬운 세 번째 길은 모방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다.’ 라고 말 했듯 오묘하게도 저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만나 볼 수 있었던 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가끔 많은 상품들의 포장지에 새겨져 있는 유효기간을 보게 될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태어날 때도 유효기간이란 것이 신체 어딘가에 새겨져 태어났다면….’ 하는 이런 생각을.

그러면 이 세상 누구를 보고 만나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을까 해서.

물론 우리는 이미 모든 인간의 운명에 탄생과 죽음이라고 하는 암묵적이고도 불명확한 유효기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실을 현실로 쉽게 전환시키지는 못한다.

주위의 누군가가 인생을 마감했을 때조차도 그 사실과 현실은 몽환이 되어 나타날 뿐이다.

상대와 함께 했던 기억을 용해시키며….

그럴 때 기억은 우리가 느끼는 몽환 속에 눈물로 희석되어 증발할 수도, 아니면 두부를 만들 때 쓰이는 간수처럼 그 상대의 형상을 마음에 더욱 각인시키도록 하는 응고효소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갖는 애도의 시간은 어쩌면 그것을 결정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원한 이별에 의해 생성되는 소멸에 대한 현실 순응과 흐르는 시간이 선사하는 기억의 퇴색에 저항하기 위한 의지와 다짐, 그리고 고집 사이 중에서.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그것을.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런 그를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는 문장들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사람을 애도하고 있어요…… 죽는 순간, 그저 숫자가, 유령이 되어버리고……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는지 잊어버리는데…… 이 남자는 죽은 자가 지나온 삶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 인물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박하게나마 기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대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즈토가 죽은 자에게 불어 넣는 새로운 숨이란 다름 아닌 죽은 자가 누구든 이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로 살았다는 걸 기억하겠다는 의미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누군가로부터 감사를 전해 받았던 사람으로서.

그는 그러한 목적의식을 갖고 벌써 5년째, 죽은 사람들만을 찾아다니는 애도의 여정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다.(어떤 구체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 여행한다는 점에서 한국 소설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와 비교해 보며 여행이란 소재가 어떻게 문학을 이끌어 가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 그리고 자신이 지금 밟고 서 있는 그 길 위에서도 이미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누군가가 죽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함으로서 독자에게 어느 특정 개인에게만 갖는 죽음에 대한 의미가 아닌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모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 번 쯤 해 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야기가 선보이는 나름의 특별함과 연관이 있다.

작가가 죽은 사람을 선과 악, 그리고 피해자와 피의자(나이에 따른 죽음의 순서조차에도 도사리고 있는 삶의 부조리와 같은 운명의 장난을 모두 포함한)로 저울질 하지 않는 주인공을 내세워 과감하고 명료한 주제의식을 펼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누구에게 사랑받았고,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로부터 감사를 받았는가, 만이 중요할 뿐 각각의 죽음에 얽힌 속 내용은 따지지 않은 채 애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우리 앞에 비추며 그 생명이 가졌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런데 그것을 드러 내놓는 작가의 방식이 영악하다.

세 사람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3인칭으로 서술하면서도 오직 주인공인 시즈토만은 작가가 아닌 그들을 통해 서술되어질 수 있는 2인칭, 혹은 3인칭으로 등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이중의 관찰을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서술 방식으로 인해 시즈토는 철저히 객관화 된 존재가 된다.

이것이 왜 중요하게 느껴지냐 하면 우리에게 이야기의 주요 포인트가 되고 이슈화가 되는 주인공의 생각 및 행동방식이 그렇게 해서 자유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달리 말해 작가의 의도를 단순히 주입시키지 않으며 독자로 하여금 죽음과 애도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선사하여 시즈토의 그런 생각과 행동에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고 하는 열린 선택을 지향케 한다는 작가의 마음이 소설적인 기교에 의해 도출되어 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는 독자들에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만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의 예를 풍부하게 서술하면서 그들의 감성을 자극함과 동시에 이성을 잃지 않게끔 지휘하는 모습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작가는 애도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감성의 대립을 이처럼 첨예하게 다룬다.

그 대립의 문을 여는 열쇠 또한 예의 등장인물들에게 쥐어주면서.

그것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우선, 타인의 죽음을 일종의 흥미 위주의 사건으로만 다루는 잡지 기자, 그는 모든 죽음을 포옹하고 애도할 수 없다는 현실의 대비를, 위암으로 죽어 가는 환자, 그녀는 애도할 죽음의 우선순위 비교를,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 그녀는 인간으로서 애도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 등을 내세우는데, 곧 이것은 그들과 모든 죽음을 구별 없이 공평하고 대등하게 삼으려는 시즈토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시즈토가 우리에게 감성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이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또한 우리의 애도에도 이렇게나 많이 숨어 있는, 선과 악으로 대표되는, 그 도덕적인 관념들이 표시하는 경우의 수에 놀라움을 전해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책을 보면 시즈토도 막연히 한다면 한다는 식의 인물로 표현되어 있진 않다.

그도 온갖 번민을 거친다.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시즈토를 통해, 그리고 그가 표하는 애도 방식을 통해 삶과 죽음에 연관되어 가지고 있던 자신들의 기존 관념에 대해 고뇌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실 이 소설은 불필요해 보이는 반복적인 설명 및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코드가 전형적이다, 라고 하는 단점들을 드러내어 테이프가 늘어진 음악을 듣는 듯한 기분을 가끔 선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애도의 방식과 객관화 된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놓을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갖춘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타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애정의 시각에도 영향을 미치게 한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사랑받았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누군가로부터 감사를 전해 받았던 사람으로서’라는 문장자체에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그것이 새삼 확연히 마음에 다가올 정도로 말이다. 이것은 단연코 죽음의 애도라고 하는 행동양식 하나를 끈질기고 밀도 있게 추적한 작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인간 누구나가 누려야 할 인권을 죽음 이후에까지 연장시켰다.

애도란 결국 죽은 사람 모두가 누려야할 인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