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표지 탓인지 ’Choke’라는 제목의 단어가 마치 뼈를 씹어댈 때 나는 소리같이 들렸다.

그리고 어느 남성 섹스 중독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중독과 질식이 그렇게 함께 엮어질 수 있는 단어들이었던가를.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살고자 한다면 호흡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우리를 보고 호흡에 중독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미 호흡에 중독 되어 그런지도 모르리라.

물론 아무리 이것이 관념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중독을 위해 담배와 술, 섹스 같은 것들과 삶의 필수 요소인 호흡을 비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해야만 살 수 있는 것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 그것은 호흡을 기호식품 따위로 가볍게 치부하는,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라고, 너무나 가벼워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와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너무나 답답해져서 죽을 것만 같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그것은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중독이 가진 유혹의 임무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전문가들이 현대인들 모두 정신병과 관련 된 증상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말할까.

중독의 유혹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르게 해석 하자면 우리가 매일매일 정신병자들과 마주하고 산다는 이야기도 된다. 미쳤지만 티 나지 않게 미친 사람들이 곧 우리다.

그것이 우리 각자가 소유한 비밀들이다. 각자 가진 서로 다른 비밀들.

‘식민지 던스보로는 당시 시대상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 못난이들과 미치광이들은 현실 세계에서는, 그리고 현실의 직업에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 숨어 산다. 우리가 처음 영국을 떠난 것도 다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었던가? 우리만의 대체현실을 위해서. 순례자들도 그 시대의 괴짜들이 아니었던가? 나와 함께 일하는 이 한심한 낙오자들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다른 믿음을 갈구하기 보다는 강박증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의과 대학을 중퇴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둔, 섹스 중독자이다. 그리고 살기 위해 박물관에서 식민지 시대 재연배우로 일하면서, 그것도 모자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질식사를 연출해 돈을 버는 인간이다. 돈을 받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그만한 대가를 또한 지불해야 한다. 그가 지불하는 대가는 상대방을 영웅으로 만들고, 스스로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에 짜릿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영웅을 창조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을 시험에 들기 위해서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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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영웅과 악수할 것이다. 모두 영웅의 등을 토닥거려 줄 것이다. 나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내가 이런 짓을 꾸미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모든 골칫거리에 도전하라. 낯선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권태 속에서 신음하는 또 한 명의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단지 돈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단지 숭배를 위해서만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마다할 이유도 없다. 아주 손쉬운 일이다.……그저 나약하고 굴욕적인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그저 평생 사람들에게 이 말만 되풀이해 주면된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작가의 문체이다. 우선 상당히 시니컬하게 시작하는 처음 1장 부분의 문장들을 살펴보자.

‘이 이야기를 읽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 두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손을 놓고 싶어질 테니까. 즉 아예 시작을 하지 말라는 얘기야. 빨리 꺼져. 무슨 일을 당하기 전에 사라지라고. 몸을 아껴야지.…… 이 저질 꼬마, 치가 떨리도록 한심한 이 풋내기 녀석은 눈 속에서 반쯤 벗은 채로 연신 몸을 떨어 대며 누군가의 터무니없는 약속을 진심으로 믿었지. 이것이 당신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당신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뭔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잘 생각해 봐, 이게 마지막 경고야.’

내 돈 주고 사서 읽는 소설책에서 정말 이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읽어줘야 될까, 싶을 정도로 독자의 마음을 상당히 아니꼽게 만드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저러한 시작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집중하고 몰입하도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작가는 그만큼 힘 조절에 능란했다.

그 힘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적절히 사용되기도 하며, 추리 소설 식의 진중함과 난센스, 혹은 블랙 코미디 식의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통해 교차된다.

그런 주인공이 내뱉는 시니컬한 감정묘사 및 인물묘사, 그리고 상황묘사는 그러한 목소리를 담은 문체의 영향으로 인해 서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듯한 아주 메마른 풍경을 선사하고 있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것을 1인칭 시점의 고백체가 가지고 있는 솔직하고도 쓸쓸한 고독미로 치환시키고 있었다.

더불어 작가는 의학과 종교, 그리고 역사 지식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이야기의 키를 쥐고 있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배경묘사에 사실감을 부여한다.

특히 제 8장에서 보여 지는, 바로 주인공의 엄마가 수용된 요양원의 묘사는 소설적으로 상당히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힘을 발휘하기보다 응축시키고 있었다.

소설이라면 당연히 있어 보여야 할 그런 묘사들임에도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그 안에 많은 복선들을 깔아 놓았음을 알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

물론 정신병자들이 머무는 요양원이라는 자체가 이미 상징적으로도 상당히 큰 이야기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 이미지를 갖추고는 있지만, 앞서 작가가 가진 힘 조절에 대해 말했듯 거기에 심어 놓은 작은 모티브들을 그가 어떻게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나의 저러한 의견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지 않을까 싶다.

즉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요소들이 가진 힘들을 응축시킨 뒤 보여 지는 강, 약의 폭발 과정은 다른 모든 장에서도 규칙적으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8장을 유심히 읽고 나머지 뒤를 읽어 나간다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는 말이다.

아무튼 작가는 이 소설에서 질식, 중독, 비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이 가진 모든 역학적인 요소들을 재미난 방식으로 하지만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과 소설을 쓴 사람을 별개의 것으로 나눌 수는 없다하더라도 이 소설은 나로 하여금 작가의 매력을 더욱 강하게 느끼도록 했다.

그가 작가로서 부린 기교도 그렇지만 독특한 이야기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확장에 이르도록 독자들을 인도한다는 점이 더욱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기존의 그의 작품들과는 다른 성향을 가진 작품이라고, 특히 결말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그 색다른 결말이 나에게 있어 저자 스스로 보여 줄 수 있는 스펙트럼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라 느껴질 정도로.

그것으로 인해 처음 문장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전적으로 다가왔던 저자였지만 마지막 문장들에선 독자들의 삶 또한 자신의 작가적인 역량처럼 확장되기를 기원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우리 서로 각자 다른 비밀이 있듯 거기에 맞는 해석 또한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세상이 판단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미쳤는지 정상인지. 성인인지 섹스 중독자인지. 영웅인지 피해자인지. 우리가 선한지 악한지는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 판단하거나. 어쩌면 뭔가 더 나은 것을 창조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지도 모른다.…… 섬뜩하지만 우리는, 순례자이자 이 시대의 괴짜들인 우리는 우리만의 뒤틀린 현실을 바로 세우려고 애쓰는 중이다.……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바동거리며 살아 왔건만 결국 우리가 도착한 곳은 깊은 밤의 어느 외딴 곳일 뿐이다. 어쩌면 아는 것만이 해답은 아닐지 모른다. 바로 지금 이곳, 어둠 속 폐허에서 우리가 짓고 있는 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시작부터 참으로 흡입력이 돋보이는 대단한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을 시각적이면서도 청각적으로 또한 미각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문장이었기에.

문장으로 3D를 구현한다면 바로 저런 표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직 이름만으로 그것을 직접 말하는 사람의 심상과 그 대상의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낼 수 있다니, 마치 모든 존재감은 그 이름에 담겨져 있다는 듯, 혀끝에서 감돌고 맴돌지 않는 이름이라면 감히 존재한다, 말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이것은 누구나가 화자(話者)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면서 또한 책 속에 담긴 저속하면서도 처절한 사랑의 이야기에 관한 암시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소설 ‘롤리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쳐진 작품이었다.

물론 저것은 세상의 모든 훌륭한 문학 작품들이라면 들을 수 있고, 들어야만 되는 찬사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특별히 감정과 심리,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묘사와 언어유희(사실 이것은 영어로 써진 글로 읽어야 더 그 맛이 나는 부분이긴 하다.) 등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 찬사에 찬사를 더하도록 나를 이끌었다.

1인칭 시점, 더군다나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법정의 배심원과 세상의 독자들을 향한 고백록의 형식을 띈 이 소설은 그래서 사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어린 딸을 욕망하는 계부의 사랑이야기는 당연 도덕이라고 하는 개념의 세계에 우리를 빠뜨리게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가로서 자신이 가진 역량을 뽐내기 라도 하듯, 미화된 듯 하면서도 솔직한, 과장된 듯 하면서도 간결한, 훔쳐보는 듯 하면서도 똑바로 응시하는 듯한, 불필요한 듯 하면서도 필요한, 소심한 듯 하면서도 과감한, 장난치듯 하면서도 진지한, 더러우면서도 아름답고, 노골적이면서도 감추는 듯한 많은 묘사와 표현들로 주인공의 기억과 감정을 세밀하게 쫓아가 독자로 하여금 예의 도덕적 관념으로부터 어느덧 벗어나 주인공의 마음과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놀라운 필치를 구사한다.

더불어 롤리타로 대표되는 님펫들의 인물묘사와 거기에 따르는 주인공의 심리 표현들은 분명 소설이지만 시적이기까지 하다. 아니 사실상 시라고 해도 되는 글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책 379페이지 다섯째 줄에서부터 마지막 줄까지의 글, 즉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가 마지막으로 롤리타를 만나는 모습이 펼쳐지는 가운데 드러나는 그의 감정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상대에 대한 묘사를 함과 동시에 그 상대를 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감정을 같이 교차시키는 문장들을 이 책에서는 많이 반복해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독자들의 주인공에 향한 감정이입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곧 독자에게 소설에서 하나의 표현기법이 작품에서 어떤 효과를 일으키게 하는 가, 라는 부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역할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이 작품은 나 같은 아마추어 독서가에게 소설이라는 문학의 장르를 읽고 즐기게 함과 동시에 소설에서 다뤄지는 표현기법에 대해서도 은근히 배우게 된다, 라는 느낌마저 선사한다. 물론 이것은 달리말해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과 같이 써야만 하는 사람들에겐 소설 기법에 대한 좋은 표본감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전달될 수 있겠다.

그런 기법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그것은 바로 대사부분이다.

내 개인적인 시각에서 단정적으로 그것에 대해 직접 전하자면 이 책 203~206페이지, 241~242페이지, 그리고 411~412페이지에서 말하는 인물들의 대사들이 그렇다.

첫 번째는 험버트가 롤리타를 교묘히 협박하는 장면, 두 번째는 미스 프랫이라고 불리는  교장이 험버트에게 자신의 학교가 실행하고 있는 교육철학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험버트의 총에 의해 죽음을 위협받고 있는 어떤 사내가 펼치는 회유와 설득이 담겨진 장면이다.

예의 표기된 페이지 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대사치고는 상당한 장광설로 작가는 그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의 대화라고는 믿기 힘든, 그래서 어떤 배우가 연기하고 있는 극의 한 장면인 듯한 저 부분들은 과장되었지만 현란한 문학적 감흥을 독자에게 전해준다. 즉 현실에서 실제 말하듯 하는 절제된 표현과 소설적인 문체로 극적인 긴장감이 깃들어 표출되는 인물의 성격 묘사를 함께 담을 수 있는 성질로서의 그러한 창조적인 거짓말이 문학의 표현 기법에서 어떠한 차이를 이루는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들인 것이다.

작가 나브코프는 그만큼 이 책을 통해 대사가 가지고 있는 전자의 담백함과 후자가 전하는 인위적인 풍성한 맛의 차이를 독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게끔 하는 묘한 마력을 또한 펼치고 있었다.

저러한 모든 사실들을 근거로 요약해 보건데, 이 소설은 내용보다는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관찰 대상으로 바라봐야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문장들과 단락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분해하고 분석하고 음미해 보면서, 한 중년 남자의 금단의 사랑이 어떻게 문학으로 승화되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그러한 승화 과정은 418~419 페이지에서 험버트가 벌이는 교통사고 장면과 그의 삶의 최후 발언으로도 여겨지도록 느끼게 하는 422 마지막 페이지서의 모습까지 이어진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추하고도 이기적인 저질이며 현실과 환상의 괴리감에 빠진 정신병자와 같은 변태이기도 했던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

그런 그를 보고도 우리들로 하여금 오히려 동정심과 애잔함을 세상에 전하도록 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이러한 감정적인 잔상 하나만으로도 문학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도록 하는 하나의 확실한 증거물로 세상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잠시 명상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하는 책이었다.

작가도 독자들이 그러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나는 솔직히 처음 몇 페이지들의 책장을 넘기며 눈으로만 읽었다.

그러자니 작가가 안내하는 세계가 그저 그만의 세계로 비춰졌다.

나와 상관없는.

저자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라도 되는 양 우주를 구성하는 4대원소를 여행지로 삼아 독자들을 안내하는 한낱 가이드의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만 보여 졌을 뿐이었다.

그런 책을 위한 나의 몰입은 입에서 나오는 하품에 의해 공기 중에 산화되었다.

그러다 문득 자세는 책 읽기라고 하는 능동적인 자태를 취하면서, 머리는 그렇지 않은 수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모순감이 밀려왔다.

시간의 낭비라는.

그래서 작가의 언어의 지휘에 따라 그려지고 있는 그 상상의 세계를 나 또한 연주해보기로 했다.

한 줄 읽고, 그 상황을 떠올리고, 다음 줄로 넘어가고, 또 상상해 보면서.

몰입과 정신이 일치하기 시작했다.

하품을 내뿜던 내 입은 고요한 심호흡으로 바뀌었고, 책 속 행간 사이를 향해 있던 내 눈 뜬 현실의 마음은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성과 감성의 공존이라는.

거리, 하늘, 구름, 배꼽, 빛, 갑옷, 칼, 돌고래, 집, 아기, 어른, 숫자, 그리고 우주 등등 그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컷이 되어, 내 이마에서 발산되는 영사기를 통해 그것이 다시 내 시야 앞 스크린 위에 펼쳐졌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좌의 자세로 해야 하는 명상과는 분명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명상이 별거인가, 라는 생각을 나로 하여금 갖게 했다.

전자가 세상일에 무감각한 도인의 이미지라면 후자는 부처님 앞에서 합장하고선 자기 세계에 빠진 채 불경보단 다른 생각하기에 여념 없는 순진무구한 동자승의 모습이다.

자기의 키처럼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되지 싶다. 동자승과 같은 자세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정신적으로나마 가벼운 편안함을 언제 어디서고 얻을 수 있도록.

베르나르가 안내하는 상상의 여행은 한 마디로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