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들 마음속엔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환상을 쫓아서든 상상력을 발휘해서든 아무튼 그런 방식으로 만드는 세계가.

그것을 현실의 세계와 비교했을 때,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곳은 정착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란 점이다.

그 점은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가며 깨닫게 되는 여러 모습들의 중에 하나다.

감성과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어린 시절의 정신적 모양새가 점점 더 이성적으로 바뀌어 현실 순응으로 바뀐다는 것으로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시리즈의 주인공 제제가 보여 주는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꼬마 제제에게 못된 장난만 치게 만드는 자기안의 악마와 진짜 친구가 되어 주는 나무 밍기뉴, 제제의 십대 초창기에 찾아오는 두꺼비 아담과 타잔,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영화배우 모리스 등등 그들 모두 어린 제제만의 예의 세계를 만들어준다.

그런 세계에 머물러 있던 제제가 1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들과 이별하고 차차 독립적인 인간으로 변한다. 사랑에 눈뜨고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어디로 디뎌 나아갈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한 편의 슬프고도 따뜻한 동화와도 같았던 이야기는 견고한 성장소설로 바뀐다.

개인적으로 한 편씩 책을 읽는 동안 보다 모두 읽고 나서의 감흥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책들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주인공 제제가 이 책의 저자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그렇지 싶다. 선박회사에 취직해 배를 타고 저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던 제제가 결국에는 커서 작가가 된 거였구나, 하는 어쩌면 정말로 나의 착각일 수도 있는 그러한 생각 때문에.

조금 웃긴 생각이지만 이건 아무래도 소설 속 제제가 잘 컸길 바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생겨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 책들에서 나름 신선한 점이 있었다면 작가가 드라마적인 재미를 살린 첫 번째 책과는 달리 ‘햇빛 사냥’과 ‘광란자’에서는 제제의 성장기에 따른 의식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에 따라 후작인 예의 두 편이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질지도.

특히 마지막 ‘광란자’에서는 사랑의 고뇌에 빠지고 미래에 대한 선택으로 방황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제제만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제의 두 번째 이야기인 ‘햇빛 사냥’은 앞 뒤 편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역할을 함과 동시에 작가의 집필의도가 단순히 감동어린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전달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겪었던 성장痛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실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입양을 통해 꼬마 제제에게 새로운 환경변화를 주어 달라진 세상에 대한 적응 문제를 점차 부각시킨다. 그리고 가깝지만 멀기도 한 양부모를 내세워 어른들과의 마찰과 갈등을 내세운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제제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인간으로서의 성숙이다. 제제가 그의 상상의 세계, 즉 어린아이로서의 순수함과 멀어지는 안타까움(그것을 위해 작가는 제제의 원래 가족들과 그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1편 이후, 언급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표현하였지 싶다.)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그것은 독자에게 뭔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얻자면 현실에서의 노력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일깨워 준다. 그러면서 작가는 성인이 된 제제를 ‘햇빛 사냥’ 후반에 갑자기 그리고 잠시 등장시켜 어릴 적 상상의 세계는 우리들 미래에 또한 그 추억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성장소설을 읽으며 어떤 생각에 잠긴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안에 성숙되어야 할 뭔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미완의 성숙이 때론 후회하든가 자책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러한 의식의 흐름은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제제가 귀여운 꼬마에서 점차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보여주는 것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어떤 여행을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이유로 나에게 있어 제제는 순수한 꼬마가 아닌 현실을 사는 일종에 삶의 여행자로 각인 되어진다.

 

 

“국가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

이것은 요즘 어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행어 취급을 받고 있는 말이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말이니 당연 가볍게 듣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왠지 매번 모르게 씁쓸한 기운이 맴도는 것도 사실이다.

작든 크든 ‘사태’라고 이름 지어진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그것과 관련 된 사람들의 입에서 충분히 진심의 절규로 내뱉어 질 수 있는 말이니까.

사실 국가는 우리를 향해 국민 누구나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라고 외치면서도 질서유지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의 도구로 국민들을 이용할 때도 많다. 그럴 때, 주인의식이라는 말은 어느새 희생을 강요하는 의미로 탈바꿈된다.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로.

고위급 정치인들 혹은 공무원들이 평소 흔한 노래가사처럼 흥얼거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 라는 그러한 구호가 무색해질 만큼 말이다. 심한 경우 어떤 국민들은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면서.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국가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버림 받은 어느 일본 국민들의 울분을 대변한 소설이라 말 할 수 있겠다.

“우리들은 버려진 국민이다. 처음부터 이 아마존 이민사업 자체가 2차대전 이후의 식량난을 벗어나기 위한 정책이었을 뿐이다. 즉, 정부와 외무성이 추진한 기민(棄民)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이 사기꾼, 이 살인자들.”

그들은 남미로 이민만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정부의 거짓 정보에 속아 깊은 밀림 속으로 버려진 일본 국민들이다. 그들이 가자마자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미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다하여 도착한 곳, 그러나 그런 기반은커녕 날씨와 토양 때문에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곳에 그들은 안착하고 만다.

일본 정부가 벌인 철저한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

원주민들보다도 못한 생활 속에서 가족과 이웃들은 그들 앞에서 하나하나 죽어간다.

그리고 수십 년 뒤, 그런 거친 인생역정 속에서 살아남은 이민 1세대와 2세대로 구성된 네 명의 남자가 일본 정부를 향해 복수극을 펼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실제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써서인지 감성과 이성을 적절하다고 할 만큼 영리하게 잘 사용했다.

복수극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읽는 이는 도덕적인 견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그런 부담감을 크게 전가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이 최대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복수를 하려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작가의 집필의도도 명확하게 전해진다.

왜냐하면 작가가 소제의 단순한 문학적 역사고발에 그치지 않고 범죄 사실에 대한 진지한 사과와 반성에는 국가도 절대 예외일 수 없다는 큰 주제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신 있게 꾸려나갔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저런 주제의식에 걸맞게 풀어나가는 에피소드,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의식과 감정들이 소설과 뜻을 같이 하겠다 하는 독자의 공감대형성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피해자가 피의자로, 그리고 피의자가 피해자로 자리바꿈을 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덧붙여 영화가 보여주는 클라이맥스 장면들이 연상되어지듯 뒷심을 발휘하여 서술해 나가는 종반부분에서의 힘 있는 묘사력도 좋고, 비극과 해피 엔딩을 아우르며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결말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소설의 입장에 서서 깔끔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 소설의 장점은 추리 소설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성 짙은 소재를 다룬 작품답게 일본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작가의 자세에서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하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정치가를 비롯한 일본 전체의 국민성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표현함에 약자에 입장에 선 작가의 시선이 날카롭다. 그리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독자는 현실 속에서 장르소설이 갖는 사회적인 중요한 의미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소외되고 희생 된 사람들을 문학으로 다시 살려 내어 그들의 혼을 달래주는 중요한 역할이기도 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주장을 펼침에 작가로서의 떳떳하고도 당당한 모습이 대단히 보기 좋았다.

그래서 일까.

개인적으로 과거사에 얽힌 사과의 문제를 국내외적으로 여전히 많이 안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인 만큼 한국 문학계에서도 이런 소제를 찾아내어 과감하고 용감하게 서술할 수 있는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한다.

 

 

얼마 전 나는 영국 일간지에 소개된 하늘을 나는 집이라는 것을 사진으로 봤다.

그것은 미래형 주택을 제시한 것으로써 우리나라 대형 건설사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단지 디자인만 제시한 것일 뿐, 실제 개발까지는 오래 걸릴 것이라는 기사가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이처럼 땅, 바다, 하늘, 그리고 우주로 우리는 인간 삶의 지대를 넓혀왔으며 동시에 저 기사가 보여주듯 지금 이 순간에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듯 인간의 영역도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역의 확장은 나로 하여금 부정적인 단어들을 연상시킨다, 침략, 침범, 정복과 같은. 여기에서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개발, 발전, 개척은 예의 단어들의 미화된 표현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아주 먼 옛날의 역사와 사건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주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명목 하에 벌어진 희생이란 것을 떠 올려 본다면 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평화로운 태초의 모습이란 필라멘트가 끊어져 소용없어진 전구와도 같이 되어버렸다. 마치 이 시대의 집단 무의식 자체에도 적자생존이란 것이 있다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티끌만한 태초의 기억, 즉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떠올려 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성서의 창세기가 현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화하면서도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인간의 모순, 그것으로 인해 세상 모든 법칙에 서려있는 순리가 순환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그러한 반복을 지겨워하면서도 원한다. 슬픔과 불행 다음 기쁨과 행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이, 끝 다음에 시작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그런 측면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파피용’은 우주로 탈출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새긴 우리 시대를 위한 새로운 창세기란 생각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또한 인간 종속으로부터 느끼는 회의로 인해 지구와 거의 비슷한 행성을 찾아 자라잡기까지의 1000년이 넘는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다른 한편으론 인간들의 집단무의식의 탐구세계를 보여주는 여행서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제일 흥미로운 점은 마지막 희망을 위한 답이 아이러니 하게도 탈출이 아님을 각인시킨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인간의 잘못 된 욕망에 의해 더럽혀져 병든 지구로부터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리는 탈출을 감행하면서 지구는 과거, 우주선 파피용은 현재, 그리고 새로운 안착지인 별은 미래라는 폭 넓은 시점을 유지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집단 무의식에 있다. 왜냐하면 작가가 진화되면서도 무의식 속에 찌꺼기 같이 남아있는 인류의 자기욕심과 폭력의 습성(심지어 그것은 사랑에도 깃들어 있다.)들이 과연 생활과 시간의 공간이 바뀐다고 해서 사라질까, 하는 의문을 책 속에 등장하는 나비인들(문득 이 단어 때문에 영화 아바타가 생각나기도)의 행동양식을 서술하면서 지속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탈출이 답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현실순응밖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결국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긴다.

즉 진정 변화를 위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주인공 이브가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원하면서도 지구인들의 과거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작가는 그러한 것들을 책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렵지 않고 현학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거창하고도 거대한 포장지로 인류의 미래를 감싸고 있지만 사실 속 내용은 새로운 변화에조차 깃든 반복의 장, 단점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우리의 유기적이고도 생태학적인 측면과 마음이라고 하는 정신적인 측면을 보두 포함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된 지식의 힘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지식이 갖는 병폐도 무시할 수 없기에 필요악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식이 존재하는 한 지식에도 선별의 과정을 주입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힘이다.

그것은 아무리 악이라 할지라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악과 인위적으로 야기되는 악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인류에게든 각각의 개인에게든 끝과 시작이라고 하는 반복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똑같이 반복하여 재생되는 삶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욱 싫은 건 그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일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나아진 변화를 꿈꿀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앞서 언급했듯 누구든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장소와 시간의 변화가 있은들 아무런 효과가 없을 거란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인간이란 족속이 원래 그런 것이다. 자신과 인류의 미래는 그래서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누가 되었든 새로운 변화가 주는 시작은 결국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반복에 대한 회의에 저항할 얼마만큼의 희망을 품고 사느냐 하는 문제로의 귀결이 아닐까,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그런 생각을 가져본다.

항상 쳇바퀴 돌 듯 산다고 하는 느낌이 든다면 더욱 더, 쳇바퀴 돌릴 힘조차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