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 수 있을까?’

왜였는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가 참 좋아, 라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아키유키에게 앞으로도 수없이, 수없이 바다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리라 다짐했다.

그 순간, 아빠가 내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듯이 바다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아키유키를 살그머니 꼭 끌어안았다. 아빠의 품안에서 아키유키의 미소는 더욱 밝아졌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이다.』

저 다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들은 누구보다도 더 많은 이 세상 하나 뿐인 보물의 순간들을 많이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저 표지의 사진도 바로 그런 순간들 중 하나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수 십 번의 사계절들을 맞이하며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보통사람은 사주에서 말하는 인간의 원, 형, 리, 정의 매 시기조차 상당히 길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보통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 아키유키도 그랬다. 5~6년을 살다간 이 선천성 장애아의 삶은 단 한 번의 사계절로 집약시켜 몰아 쓰기에도 워낙 짧아 힘겨워 보였다. 솔직히 아키유키의 저 5~6년은 그나마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도 긴 삶이었다. 그것이 저 아이와 부모에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그렇다.

이 이야기는 아주 짧은 생을 살다간 자신들의 아이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는 부모의 이야기이다. 아이가 떠난 후 저렇게 찍어 간직하고 있던 사진 한 장이 광고에 뽑혀 일본 사회 안에서 화제가 되었고, 그런 계기로 이 책도 나온 것이다.

세상엔 저 부모보다 더 힘들게 오랫동안 아픈 자식을 볼보는 부모들도 많을 테고, 심지어 그런 자식을 두고 이 세상을 먼저 뜨는 것이 걱정의 한으로 남아 눈을 감지 못하는 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누가 더 힘든가 하는 것을 따지고 들 때는 아니다. 사실 멀쩡한 자식 키우는 것도 얼마나 힘든가. 그들 모두 대단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게 든 생각은 책 앞, 뒤표지에 써진 글들처럼 딱 두 가지였다.

그 중 하나는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였는데, 사랑을 알고 배우기 위해 그 책을 읽느니 차라리 이런 책 한 권이 더 나을 것이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흔히들 사랑은 무조건 베풀며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눌하지만 용기 내어 나의 언어로 간략하게나마 말해 보자면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이가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좀 더 단순해 질 필요가 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애쓰지 않아도 절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네가 가진 능력만큼만 살면 돼.

그건 온 힘을 다했다는 증거니까.』

나머지 하나는 역시나 순간에 관한 것이었다.

책을 읽다보니 이 아이가 곧 죽을 것이란 생각이 어느 순간 사그라지고 있었다.

힘들 땐 힘들고, 아플 땐 아프고, 행복할 땐 행복한 이 가족의 순간순간들을 함께 따라가다 보니 그랬다. 그것은 그들이 매 번 그 순간에 몰입했듯 나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아이는 몇 년 있다 죽을 테니까 살아 있을 동안만이라도 잘 해주자, 라는 식의 아이에 대한 부모의 동정심이 그 행동에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아마도 저런 몰입은 힘들 것이었으리라. 심장까지 약했던 아이에게는 위험하지만 부모가 그를 장애 학교도 보내 교정에서의 생활을 만끽하게 해주고, 감기마저 생명에 치명적이었던 아이를 데리고 바닷가 여행도 가고 하는 모습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이 없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더욱 건강한 것이지 싶었다.

그럼으로 해서 나는 사람의 행복은 생명의 길이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라고 이 책이 말하듯, 우리가 이 세상 오는 데에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고 말하듯, 오늘의 하루를 생의 마지막처럼 생각하며 살라고 하는 말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살려고 하기 보다는 매 순간에 머무르는 법을 더 배워야 할 것이다. 순간을 자각하는 것이 곧 열심히 사는 것의 기초 아닐까.

『쾌청하고 차가운 겨울 하늘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아키유키에게 나는 “그래, 이 세상에 와서 참 애썼지?”라고 말했다.

지금 현재를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 그것이 가장 소중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아키유키와 함께 살면서 깨달았다.

지금의 생명을 온몸으로 감사하라고, 아픈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으리라.』

 

장난스럽지만 조금은 징그럽기도 한 책 표지, 그것을 보며 일단 눈이 즐겁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조금씩 읽어갔는데 역시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책은 딱 소장용이다.

일단 겉표지부터 사진 앨범을 연상케 하는 그런 두툼한 쿠션감이 가미된 재질로 되어 있어 종이처럼 쉽게 너덜거리지 않으리란 믿음을 준다.

내용 또한 각 장마다 지식 집약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설명한 내용도 좋았고 아무튼 책 이름에 걸 맞는 디자인과 내용으로 이것은 나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었다.

우선 기호 하나, 색깔 하나, 글자 모양 하나 우리 모두 그냥 지나쳐버렸던 디자인 요소들을 다시금 볼 수 있도록 한 기획의도가 생생히 살아있어 좋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서로 다른 디자이너들이 만든 여러 그래픽 디자인 작품들을 각 장마다 소재로 등장한 요소들에 맞춰 모아 그것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르게 이용했는지를 시각적으로 잘 정리해 보여준 편집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말 할 수 있겠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알지도 보지도 못해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디자인 관련 쪽 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한 권 정도 소장해 틈틈이 아이디어 개발 및 전개 과정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 내 생각이다.

 

 

폭풍이 일던 얼마 전 아침, 그런 날씨임에도 배우고 먹고 살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 모습을 TV를 통해 보면서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인간은 유전자적으로는 여전히 자연친화적인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가로수들이야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죽는 존재이니 그렇다 쳐도, 넘어진 간판이며 가로등이며 하는 것들이 보여 질 때는 자연이 비자연적인 존재들을 청소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자연재해다, 혹은 자연보호다 해서 오래 전부터 세계 각국 정부가 벌인 각종 공사가 상당함에도 늘 무력하게 자연의 힘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과연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인가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자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억누르려는 경향이 더 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 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동물의 공존이 평등하게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숲이지 싶다. 그건 자연적인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지내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인데, 이 책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었다.

미국의 3천 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애팔래치아 산길에 오른 덩치가 곰만 하면서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곰의 공격에 산만한 걱정에 빠진 중년 아저씨(들)의 발걸음의 자취를 담은 이 책은 소문대로 명랑함과 진중함이 고루 섞여 있어 좋았다. 명랑함은 이 글을 쓴 저자가 개성 넘치는 자신의 친구 및 산길에서 오다가다 만난 다른 사람들과의 에피소드에 잘 녹아내려 있었고, 진중함은 역시나 저자가 갖춘 자연 역사에 대한 박식한 지식과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글들에 잘 녹아내려 있었다.

특히 여전히 멀쩡해 울창하게만 보이는 숲과 그 적막한 숲의 생명력을 살려주는 동물들이 얼마나 알게 모르게 현재진행형으로 인간들의 방종으로 인한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는지 일침을 가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것을 통해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 마음도 곯는다고 자연도 그렇구나! 함을 새삼 다시 한 번 느꼈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산길 자체가 이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천연의 자연 상태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우리나라의 많은 국립공원들도 그렇게 만들어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손을 타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다. 물론 그렇게 해서 인간이 자연과 친해지고, 또한 자연에 대한 경건함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그것 자체가 자연 훼손적임을 부정하기는 힘들 듯 하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의 편의를 위한 개발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사실 편하려면 집에 그냥 있지 뭐한다고 산길을 가는가!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느꼈던 좋은 점은 여유로움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여행에 있어 목표의식도 중요하지만 이 글을 쓴 저자의 경험을 보자 하니 자기 자신에게 맞는 융통성 있는 계획과 실행이 오히려 더 나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 포기를 하면 좀 어떻고 편안한 생활을 하면 좀 어떤가.

고생스런 여행이 의미가 더 있다거나 폼 잡듯 여행을 통하여 뭔가 대단한 삶의 어떤 것을 얻어야 한다는 식의 감성중심의 주장을 펴는 여러 여행 관련 책들을 보다 이런 책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솔직히 그런 책들을 보면 저자들이 보여주는 감성이 다 비슷비슷할뿐더러 심지어 일상의 자기주위에서는 전혀 감사할 게 없다는 식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이 상당히 배제되어 좋았다. 그래서 현실적인 여행기로 보여 졌고 우리 주위 가까운 것들에 대해 왜 감사해야 하는지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쉬엄쉬엄 가면서 감탄도 하다가 투덜대기도 하는 이 아저씨(들)의 모습이 멋있거나 못사는 나라에 다녀와 이런저런 경험과 생각을 했다며 번지르르하기만 한 글 솜씨로 자기모순에 빠진 내용들을 써서 채운 다른 여행관련 저자들의 서적들보다 더욱 인간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나 홀로 여행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한 서적들 속에서 이 책은 그 반대로 독자로 하여금 누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들춰내게 한다는 것이다. 여행 목적에 따라 그리고 떠나려는 사람의 의식에 따라 그것은 엄연히 구분되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은 사람들에게 누군가와 함께 가는 여행에서 느끼는 감흥도 삶에 필요한 것임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