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소설보다 조금 두께도 얇고 지금은 조금은 생소할 수도 있는 공산주의 구소련 이야기. 그런데 뒷표지에 써있는

"이제 우리 교실에 너를 위한 자리는 없어! 남고 싶으면 다른 아이에게 누명을 씌워라!"

라는 짧으면서도 굵고 강렬한 한 마디. 무슨 말인지 딱 다가오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진실을 알아보고 싶었다.

 

 아빠가 비밀경찰인 샤샤는 스탈린 동지를 매우 존경하며 소비에트 소년단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샤샤의 순수한 스탈린 동지에 대한 존경심과 KGB 비밀경찰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은 정말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 순수한 마음을 짓밟는 보이지 않는 깜깜함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스파이로 지목받아 잡혀가게 된 자랑스러운 아버지. 하나뿐인 아버지를 한 밤중에 그렇게 잃어버리고 주변 사람들마저도 반역자의 자식이라며 내쫓는다. 추운 겨울에 자신과 아버지만의 공간에서 아늑함과 따뜻함을 다시 느껴보지도 못하고 나오게 된다. 아직 누군가의 사랑과 온정이 필요한 10살에 벌써 큰 시련을 느끼다니... 그래도 스탈린 동지를 믿으며 샤샤는 아빠가 풀려날꺼라 굳게 믿는다.

 

 소년단원이 될 생각에 부푼 큰 마음을 안고 학교로 한 걸음 내딛는 샤샤. 담임 선생님도 영웅의 아들이라며 샤샤를 아끼고 자랑스레 여긴다. 그러며 아빠가 사형당한 보브카는 전혀 같은 사람으로 아껴주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는 해서는 안될 나쁜 말을 한다. 보브카가 나쁜 아이라 하다니, 범죄자 녀석이라고 하다니. 솔직히 샤샤가 비밀경찰이신 아버지의 아들이고 비록 공산주의 스탈린 동지에 대한 동경심도 강하고 그러하더라도 같은 반 똑같은 사랑스러운 학생인 보브카나 유대인이라고 천대받는 눈깔 네개 보르카도 그렇게 쌀쌀맞게 대해도 되는 걸까? 자신의 관점에서 아이들을 판단하며 편애를 하다니. 솔직히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아이들을 고루고루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어야할 선생님이 선입견을 가지고 쳐다보다니.

 

 그런데 정말 일어나서는 안되는 큰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샤사가 깃대를 받으며 가는 길에 스탈린 동상의 코를 깨뜨린 것이다. 왜 하필 코가 깨졌을까. 여기서 한 국어 선생님이 수업 도중 "코" 에 대한 의미를 설명한다. 멍하니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샤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르면 우리는 사리판단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스탈린 동지만 맹목적으로 믿고 동경했던 샤샤는 어린아이로써의 그런 순수함과 진실됨이 조금은 거뭇거뭇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새하얀 마음을 다시 되찾게 된 샤샤. 어떤 결정을 해야한다는 것, 솔직히 그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말하면 되는 것이지만 또 그게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압박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압박도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결정을 내린 샤샤가 멋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는 무척 잘 알고 있지만 너무 외부 환경과 사상에 얽매여 나의 진정한 모습이 아직도 펼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 진정한 속마음과 어떤 사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밝히는 일을 해내는 사람은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당연한 사람이다. 다른 이, 커다란 무게에 짓밟히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또 혼자가 아니라 다같이 모여서 깨어낸다면 그런 고백과 판단은 어느새 당연하고 샤샤처럼 새하얀 순수함이 될 것이다. 나의 주관을 가지는 것은 힘든 고민 끝에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다소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그 단적인 모습을 샤샤의 관점에서 보게 되니 조금은 놀라우면서도 무서웠다.

 "Mr.박을 찾아주세요"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이러면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까?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피할지도 모른다. 큰 사정을 가지고 있는 리바이와 강파랑의 이야기. 귀를 닫아버리지만 말고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이름부터 전혀 심상치 않다. 리바이는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것도 아빠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왔다가 엄마를 만나 일주일만에 자신을 만들고 그냥 떠나버렸다. 다문화 가정, 이제 다들 수용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서양과의 혼혈아와 동남아쪽과의 혼혈아를 조금은 다르게 볼지도 모른다. 나도 다양한 다문화, 편견 관련 책을 읽으면서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마음으로 보듬어 줄 것이라고,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하는 상담가도 꼭 되고 싶다고. 그런데 아직 나는 한참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조금, 아니 더 많이 이상한 것이 아닌데 괜히 쓱 쳐다보곤 한다. 이럴때면 뭐든지 차별, 편견은 제도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제대로 된 마음가짐부터 고치려 해야 하는 것 같다.

 

 또다른 아픔을 지닌 강파랑. 파랑이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파랑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찾으려 한다. 서로 이렇게 아픔만 많으면 더 그 상처가 채이고 채여 커져서 치유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해 보려고 담임 선생님 똥박사가 별 거 아닌듯 하지만 심장을 울리는 한마디를 한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뜨거운 불덩이는 밖으로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 불덩이는 온전한 살을 데이게 만들지. 골치 아픈 학교폭력도 불덩이를 끌어안고 있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처음 말하기 힘들어 그렇지 한 번 꺼내놓고 보면 별거 아닌 경우가 많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고민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각자 내가 안고 있는 불덩이가 뭔지 생각하기 바란다...... (본문 40쪽)"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그 불덩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리바이가 진짜 비밀은 가시처럼 목에 박혀 죽을 때까지 살점에 묻혀 있다한 것처럼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그 불덩이, 진짜 나를 아프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불덩이는 목에 콕 박힌 가시처럼, 갑자기 벙어리가 된 양 나오지 않는다.

 

 리바이의 가시는 미스터박. 강파랑의 가시는 얼굴을 한 번도 보니 못한 아버지. 강파랑은 똥박사를 통해 그 가시를 빼내어 리바이와 공유한다. 전혀 대화도 해보지 못하고 어색한 친구에게 자신의 콱 박혔던 가시를 빼내기까지는 정말 큰 생채기와 쓰라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견뎌냄으로써 내 불덩이는 식어버릴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가시, 큰 가시는 무엇일까. 나 스스로도 빼기 두려워지는 가시를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을 빼기까지 정말 가슴이 아프고 혼자서는 힘들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과 미혼모의 자녀. 우리가 모르지만 주변에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목에 가시가 콕 박힌 채 빼지 못하고 있다. 그걸 빼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고통스러울 지 모르지만 그 끝에는 새로움과 '다시' 라는 큰 빛이 있을 것이다. 그 가시가 되고 가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똥박사처럼 살살 자신 스스로 빼내기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리바이는 결국 그 가시를 완전하게 다 빼지는 못했지만 둥이로 인해 조금은 목이 아프지 않고 뜨거운 불덩이는 뜨뜻미지근해졌다. 둥이의 진정한 속마음과 맑은 순수함을 리바이가 알아보았기에 후회는 커녕 '다시' 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고 리바이와 둥이, 파랑이는 저 어딘가에서 웃으면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도입부를 처음 보았을 때는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의문을 가지며 슬슬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기대를 안한 채 읽었는데 점점 읽어보니 흥미진진하고 우리 청소년들이 아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큰 깨달음을 주는 지리산에서의 일이 서서히 융합되면서 눈이 번쩍 뜨이게 된 것 같다. 나도 서서히 '당나귀처럼 고집 세고, 새끼 꿩처럼 수풀에 고개를 처박고, 도넛박스에서 나오려 하지않는 (본문 8쪽)' 사람이 아닌, 고수가 비록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를 믿어 보고 싶다, 아니 믿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고수, 맘에 들었다. 사실인즉 나에게는 남다른 리듬감이 있었다. 담벼락이든 고철 덩어리든 내 손에만 닿으면 묘하게 리듬이 생겨나곤 했다. 드럼과 리듬은 나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두드리다 보면 다른 것들은 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다. (본문 54쪽) "

진짜 이름이 아닌 대학로 춤꾼 히로가 지어준 이름. 뭐든지 손에 닿으면 리듬이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진채 모든 것을 잊어버릴수 있다니. 뭐 다들 모르고 있겠지만 자신이 힘들고 복잡할 때 무언가를 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그런 알 수 없는 자신만의 행동이나 무언가로 승화시켜야 더 편안해지고 맑아질텐데, 꽉 막혀있다면 그런 것을 남에게 풀려고만 하는 것 같다.

 

 히로의 부탁으로 먼 시골로 가게 된다. 하지만 히로가 알려준 약속 장소로 가자마자 왠 10명이 넘는 불량해 보이는 학생들이 고수를 죽일듯이 팬다. 겨우 고수가 도망치자 그들은 고수를 놓치면 안된다며 미친듯이 따라간다. 아마 이게 이 이야기의 반전을 암시하게 될 복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힘들게 도망쳐 지리산으로 올라온 고수는 밤에 의문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시도 눈 돌릴 틈 없이 빨려들어가는 듯 읽고 있었지만 솔직히 몇 부분씩 이해가 안가고 그 부분에서 그 이야기는 무얼 의미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현재와 고수의 회상, 지리산에서와 대학로 생활이 바뀌는게 계속 반복되면서 우리들을 밀당하는 듯 그 두개의 사건이 교차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나에게 큰 영감을 주는 것 같다. 고수와 캄차카에서 왔다던 파란 만장한 삶을 사시고 슈퍼우먼 같으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믿고 느낀 사람만이 할머니와 고수를 통해 힘차고 밝은 기운도 받고 인생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고수와 할머니의 이야기도 나에게 큰 의미를 주었지만 그것보다는 대학로 노숙 생활 도중 고수가 만난 여자 아이 화산과의 이야기가 더 다가왔다. 화산은 뭔가 이방인 같은 존재 같다. 아니, 이방인이 아니라 캄차카 할머니와 같이 무의미한 삶이 아닌 힘차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일로 희망을 얻어가는 화산. 화산은 나마른 소망을 가지고 있다. " 아니야, 고수야 난 그냥 별이 될래 (본문 130쪽) " 이 한마디는 나에게 크게 꽝 박혀졌다. 작은 먼지가 되었다가 다시 뭉쳐져서 별이 되고 싶고, 생각도 하지 않고 감정을 느낄 수도 없는 별이 되고 싶다고 한다. 잔인한 인간은 자신에게 버겁다는 화산. 나는 과연 지금 이 하나하나에 만족하고 잔인해도 뭐 어때 하면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화산처럼 견딜 수 없어서 별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한 적이 있을까? 화산이 겁쟁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진짜 겁쟁이는 나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관여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고, 나는 그 잔인함을 입지 않을테니 별은 무슨,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와는 무척 다르게 빛나는 별, 이미 별이 되어버린 것 같은 화산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처음과는 달리 책을 확 확 넘기고 넘길 때마다 마음에 콕콕 박혀들어 오면서 값지게 느끼게 된 내용들. 고수가 겪은 일들은 전혀 그냥 넘어가야 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이야기 인 것 같다. "히로!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고수가 진짜 싸움을 시작한다고! (본문 262쪽) " 고수가 한 이 외침은 히로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