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귀 아프도록 듣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독서의 계절!
한데 이거 아십니까? 사실은 정반대라는 거. 가을은 ‘가장 책 안 읽는 계절’입니다. 도서 판매량이 평균을 한참 밑돕니다. 오죽하면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란 건 출판계에서 불황을 타개하려고 지어낸 말’이란 우스개 소리가 떠돌까요.
이유? 한 가지입니다. 날씨 때문이지요. 푸른 하늘, 붉은 산, 누런 들…. 나들이도 바쁜데 책이 웬 말입니까? 대자연의 시가 문밖에 있는데 인간의 시가 눈에 들어올 리 없는 거지요.
그래서 ‘책도락 여행’을 제안합니다. 책 보기에 좋지만 책만 읽기엔 아까운 계절. 아예 책을 들고 떠나자는 겁니다. 신의 감수성(자연)과 인간의 지성(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 TV 소음 대신 귀뚜라미 소리 흐르는 곳, 남의 눈길 의식하지 않고 하루 편히 뒹굴 수 있는 곳을 찾아봤습니다. 출판·문학담당 기자가 어울리는 책을 추천해 줬습니다.
강릉 '나겸' … 바다·산·강 그리고 나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는 도서관 열람실에는 나밖에 없다. 그 아담한 방을 나는 완전히 독차지할 수 있다……이 작은 방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장소임을 깨닫는다. 나는 바로 이런, 세계의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은밀한 장소를 찾고 있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P78)
나겸은 그런 곳이다. 세계의 움푹 파인 데와 같은 은밀한 곳. 블로그(blog.naver.com/thenakyum)가 있지만 전화번호는 나와 있지 않다. 예약·문의는 e-메일(thenakyum@thenakyum.com)로만 받는다. 예약 땐 묘한 설문에 답해야 된다. ‘동·식물을 좋아하느냐’ ‘못 먹는 음식이 있느냐’ ‘좋아하는 작가, 작품은?’….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한 뒤에야 주인장 휴대전화 번호가 e-메일로 날아온다.
업태도 모호하다. 음식과 커피가 있지만 단순한 카페는 아니다. 숙소가 있지만 그냥 펜션도 아니다. 도서관이 아니지만 책이 있고, 음악감상실이 아니지만 CD가 수 백 장 있다. 굳이 따지자면 그 모든 것을 합해 놓은 곳, 별장에 가깝다. 숙박 손님은 언제나 딱 한 팀. 그나마 혼자 오는 사람이 많다. 친구도 따로 오고, 부부도 따로 온다. 그들은 서로서로에게 나겸을 ‘선물’한다. “요새 힘들어 보여. 나겸 가서 하루 푹 쉬고 와.”
나겸에서의 하루는 강릉 안목 바닷가 백사장에서 시작된다. 파라솔을 받치고 책을 읽고 있노라면 주인장이 피크닉 바구니에 챙겨온 간식을 내놓는다. 감자전에 와인이 보통이지만, 철 따라 찐 옥수수가 나올 때도 있고 손만두국·콩칼국수가 나올 때도 있다. 피크닉 바구니 위에 올려놓은 소형 라디오에선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글렌 굴드의 피아노 소리가 푸른 파도를 넘나든다.
해가 질 무렵 피크닉은 자연스럽게 나겸 안으로 옮아간다. 나겸은 해변가에 ‘떠 있다’. 코앞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7층 건물 두 층을 통으로 쓴다. 6층이 라운지, 7층이 숙소다. 앞에 바다가 있다면, 뒤로는 남대천이, 그 뒤에는 대관령이 흐른다. 산과 강, 바다가 삼면의 유리창을 통해 한 눈에 들어온다.
저녁은 6층 라운지에서 그날 잡은 신선한 자연산 회에 샴페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는다. 모에 샹동 로제가 단골 메뉴다. ‘어머니표 매운탕’도 나온다. 횟집에서 파는 것과 달리 맵지 않고 담백하다. 식사 내내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 너울대는 촛불 그림자를 따라 키스 재럿의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Meditation’이 춤춘다.
7층의 숙소는 살림집이자, 작업실이다. 바다를 향해 앉은 의자, 노트북 컴퓨터를 펴놓고 일하기 딱 좋은 앉은뱅이책상, 커피 메이커…. 서울로 돌아간 손님들이 보내줬다는 책들은 딱 나겸의 느낌 그대로다. 『슬로 라이프』 『배려』 『즐거운 불편』…. 없는 건 하나, TV뿐이다.
브런치는 일러야 오전 11시부터다. 하지만 기다려야 한다. 유기농 샐러드에 로제 와인, 가리비 구이에 샴페인, 서울 청담동 카페에서 돈을 주고 배워갔다는 ‘특제’ 샌드위치, 과일껍질로 블랜딩한 얼그레이 홍차와 치즈 케이크, 주인장이 직접 만든 핸드드립 커피. 무려 다섯 코스다. 내처 먹기만 해도 한 시간, 행여 주인장과 얘기를 나누거나, 음악에 빠지거나, 이곳에 묵는 동안 주인장이 찍어둔 자기 사진 슬라이드 쇼를 구경하다 보면 몇 시간쯤 훌쩍 지나간다.
책과 음악, 음식과 커피,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곳의 주인장은 홍나겸(37)씨다. 그녀는 음악 전문 방송작가다. 나겸은 필명. 1996년 CBS ‘박정운의 우리들’을 시작으로, ‘이현우의 뮤직네트워크’ ‘김형준의 FM 팝스’ 원고가 그녀의 손에서 태어났다. 2003년 고향에 내려온 뒤로도 강릉KBS·MBC 라디오에서 주 1, 2회 코너를 맡고 있다. 덕분에 나겸 골수 매니어 중엔 방송·음악계 인사가 많다. 영화 ‘봄날은 간다’ ‘외출’ ‘행복’의 각본을 쓴 이숙연 작가, 인기밴드 자우림의 싱어 김윤아씨 같은 이들이다.
하지만 홍씨는 나겸이 절대 ‘특별한 사람들만의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나겸은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 없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아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곳입니다. 손님을 가려 받는 것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나겸은 그런 곳이다.
■강릉 시내에서 454번 지방도로를 타고 견소동 끝까지 가면 나겸이 있는 안목해수욕장에 닿는다. 1박2일 풀코스 패키지 ‘칠아웃(chillout) 나겸’ 33만원, 7층 숙소에 조식·간식만 제공되는 ‘아뜨리에 나겸’ 1박2일 기본형이 16만원이다. ‘아뜨리에 나겸’은 일~목요일에만 예약 가능하며, 주로 창작인들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제공된다. 경포 호수, 보현사 약수터, 선교장 등 강릉 일대 명소가 지척이다. 나겸에서 친절히 안내해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문학사상사)
대관령 넘어 굳이 강릉을 찾아 들어가는 건 광활하게 펼쳐진 저 바다 때문이다. 강릉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지 않지만 동해를, 동해안을 끼고 도는 7번 국도를 소재로 삼은 문학 작품은 여럿 있다. 지금은 절판된 김연수의 장편 『7번 국도』도 있고, 시인 김영남은 『정동진역』이란 이름의 시집을 상자했다.
그러나 오늘은 하루키의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를 들고 나가라고 권하련다. 이유는 오로지, 저 바다 때문이다. 동해안 백사장에 쪼그리고 앉아 불끈 치솟는 아침 해를 바라본 사람은 안다. 내가 얼마나 알량한 존재인지.
저 장엄한 광경 앞에서 우리는 겨우 자신을 돌아볼 따름이다. 나는 무엇이고, 내가 앉아 있는 뭍과 저기 해가 치솟는 물은 어떻게 나뉘는가, 저 태양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루키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해변의 카프카』는 이름을 다무카 카프카로 바꾼 열다섯 소년이 가출을 한 뒤 온갖 고생을 하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소설이다. 저 해변에 홀로 놓여 있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카프카다.
청송 송소고택…온돌방에 배 깔고 누워
툇마루에 앉았다. 곱게 비질한 마당에 구르는 햇살 따갑다. 사랑채에서 내다본 앞산의 능선 부드럽고 가지런한 기와지붕 위로 하늘 높다. 삽사리 ‘껌껌이’가 꼬리 살랑대며 내 발치에 코를 박고 눕는다. 이놈 여간 순하지 않아서 하룻밤 이틀낮 동안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꼬마 손님들에게 이만 한 친구가 없겠다.
벽을 다시 바르고 기와를 새로 얹었지만 집의 뼈대는 그대로다. 갈라진 기둥, 삐걱대는 마루, 빛바랜 대들보에 130년이 다 돼가는 세월이 배어 있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이다. 눈에 띄는 쇠붙이는 문고리와 아궁이 위에 걸린 무쇠솥 정도다. 조선 고종 때 송소(松韶) 심호택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고 세운 집이다. 왕조 500년 동안 청송 심씨 가문이 배출한 정승이 열셋이고, 왕비와 부마가 각각 넷이다. 당당한 솟을대문 안의 ‘99칸짜리’ 옛집에서 흘러간 영화를 본다. 안채,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별채 모두 별도의 마당이 딸려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잇는 중문 사이에 헛담을 세운 연유가 재미있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헛담은 대문을 지나 안채로 드는 아녀자를 위한 배려였다. 바깥주인이 머무는 사랑채에서는 내다보이는 대문을 헛담이 살짝 가려주기 때문이다.
해 떨어지니 하늘 가득 별바다다. 수선스럽던 강아지 세 마리마저 잠드니 사위는 적막의 바다다. 행랑채에 있는 사무실에 마을사람들과 손님들이 모였다. 이 동네 심남규씨가 청송사과 자랑에 흥이 났다. 오토바이로 전국을 돌고 있는 방효섭씨는 뒷산에서 따온 송이 향에 감탄한다. 고택지기 정인상씨의 추임새가 구수하다. 일반에 문 연 지 4년 된 집은 지역의 문화명소가 됐다. 때로 음악회를 열고 영화를 상영한다. 얼마 전엔 이곳이 고향인 소설가 김주영씨가 객주 테마기행 길에 들렀다.
배 깔고 엎드리니 장작불의 온기가 은근하다. 벽에 걸린 액자 하나가 장식물의 전부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으니 혼자라면 책을 펼 일이다. 둘이라면 방문 열어 별 구경 하고, 가족과 함께라면 하지 못했던 이야기 펼칠 일이다. 댓돌 위에 귀뚜라미 울고 날벌레들 문풍지 때린다. 뒤란을 스치는 바람에 댓잎 서걱거린다. 손님들 방에 불이 하나둘 꺼진다. 새벽 다섯 시는 됐을까. 닭이 홰를 치며 울어댄다. 주위가 조용해 더 요란하다. 잠귀 얕은 이는 더 잘 수 없다.
화장실과 세면실이 본채에서 떨어져 있어 도시생활에 익숙한 이들은 불편할 수 있겠다. 칫솔과 수건은 가지고 가시길. 크기가 다른 10개의 방이 있다. 4만~18만원. 홈페이지(www.songso.co.kr)가 깔끔하다. 미리 신청한 사람에게는 아침을 낸다. 산채 위주의 5000원짜리 상차림이 정갈하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나와 안동 시내 거쳐 1시간 거리. ‘폴리페놀 사과’는 청송에만 있다. 당도 높고 깎아놔도 색이 잘 변하지 않는다. 55곳의 농가만이 인증을 받았다. 주왕산이나 주산지의 단풍 찾아 가는 길 간식거리로 그만이다(심중환 유통팀장 016-9778-7384). 달기약수탕 주위에 닭백숙집이 많다. 1981년부터 장사한다는 부산식당(054-873-2078)에 들어가니 YS 일행 사진이 있다. 오래전 민주산악회가 등산하고 들렀을 때 찍은 거란다. 신촌약수탕 인근의 야송미술관(054-870-6536)은 가로 48m, 세로 6.7m짜리 청량대운도를 소장하고 있다.
김탁환 『나, 황진이』(푸른역사) 한국사에 등장하는 여성 중에 황진이만큼 문학이나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 이가 있을까? 곡절 많은 삶에 당대의 남녀차별 멍에를 벗으려 애쓴 자유 의지, 뛰어난 예술혼 등이 더해져 인간적 매력이 물씬 풍긴다. 옛 향기 그윽한 고가(古家)에서 풍류의 주인공을 만나면 흥취가 절로 일리라. 황진이를 소재로 한 소설은 여럿이다. 그중 김탁환의 작품에 손길이 간다. 주인공 황진이의 독백체로 내면을 들여다 본 형식도 독특하고, 꼼꼼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것이 ‘일절(一絶)’이라 할 만하다. 이야기 구조에서 세속의 흥미를 자아낼 만한 일화는 덜어낸 대신 정결한 문체로 읽는 맛을 살려 호젓하게 읽기 맞춤이다.
혹 인문학적 자료를 덧붙인 주석 판을 접하게 된다면 지은이가 한갓 대중작가로 평가되는 것에 반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단아한 송소고택에 어울리는 단정한 소설이다.
파주 지지향 … 종이가 예술이 되는 곳
호텔 지지향은 호텔이 아니다. 간판에도 브로셔에도 호텔이라고 박혀 있지만, 지지향 사람들은 호텔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긴 호텔치곤 없는 게 너무 많다. 술집이 없다. 수영장·헬스클럽도 없다. 객실은 한 술 더 뜬다. 텔레비전이 없다. 인터넷은 연결돼 있지만 컴퓨터가 없다. 개인 노트북 컴퓨터를 쓰겠다면 랜(LAN) 선을 빌려줄 뿐이다. 욕실엔 일회용 제품이 하나도 없다. 칫솔·치약·면도기가 필요하면 복도 자판기에서 사 써야 한다. 샴푸와 물비누는 대용량 리필제품이다.
다른 호텔에는 없고 지지향에만 있는 것들도 있다. 로비엔 갤러리, 2층엔 고서점이 있다. 예술작품과 희귀 고서를 공짜로 구경할 수 있다.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빌려준다. 가요·팝·재즈·클래식·영화OST…. 음악 수백 곡이 담겨 있다. 객실엔 책이 많다. ‘폼’으로 한두 권 갖춰 놓은 수준이 아니다. 스무 권이 넘는다. 문학·인문학·사진집·동화… 종류도 다양하다. 하나같이 표지 빳빳한 새 책이다. 벽에는 북 디자이너 정병규의 타이포그래피 작품 액자가 걸려 있다. 주제는 역시 책. 책꽂이 한편엔 MP3 플레이어를 연결할 수 있는 작은 스피커가 있다. 실내에 있을 땐 이어폰 안 끼고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호텔 아닌 호텔 지지향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지향의 주소를 봐야 한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 출판도시’. 지난 5월 출판도시를 찾은 사람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연수시설로 문을 열였다. ‘종이예술의 고향(紙藝之鄕)’이란 독특한 이름도 주소를 보고 나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연수시설이지만 출판문화인 아닌 일반인도 이용할 순 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지지향에서 묵는 것 자체가 연수의 일종이라는 데 동의해야 한다”(출판도시문화재단 이기웅 이사장). 쉽게 말해 ‘쉬고 사색하는 곳’이지 떠들썩하게 노는 곳이 아니란 것이다. TV와 일회용품 없는 불편한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지향에서의 하룻밤은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다. 뭣 모르고 왔다가 “뭐 이런 데가 다 있느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원목 마루에 검은색 가죽 러그가 깔린 로비 라운지는 내 집 거실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화려한 대리석 바닥에 샹들리에가 매달린 여느 호텔 로비와는 다르다. 한편엔 사람 키보다 큰 극장용 스피커가 놓여 있다. 초대형 우퍼에서 흘러나오는 저음의 첼로 선율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객실도 마찬가지다. 변변한 장식 하나 없는 ‘모던의 극치’다.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가구도 담백하고 따뜻하다. MP3를 틀면 존 콜트레인의 재즈, 요요마의 영화 OST, 에릭 크랩튼의 R&B… 부드럽고 편안한 음악이 쉼 없이 흘러나온다. 지지향에 머무는 내내 TV 한번, 인터넷 한번 안 봤지만 ‘금단 현상’은 없었다.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13쪽)
파주 출판단지는 책을 만드는 도시, 지지향은 책을 읽게 만드는 호텔이다.
■이산포IC 지나 7㎞쯤 가면 파주출판도시 진입로가 나온다. 지지향은 출판단지 중앙에 있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내에 있다. 지지향 1박에 레스토랑 ‘노을’ 디너, 카페 ‘수련’ 조식을 묶은 패키지(2인 기준)가 10만원이다. www.jijihyang.org, 031-955-0090. 파주출판단지는 11월 2~4일 파주북시티 책잔치를?? 입주사들이 오픈 하우스 행사를 연다. 싼 값에 책을 살 수 있는 창고 개방 축제, 책 벼룩시장, 출판사 대표·저자와의 만남, 건축기행도 준비돼 있다.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이레) 책에 관한 책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파주 출판단지를 찾는 데 함께하기엔 뭔가 미흡하다. 책과 도시, 혹은 책과 건축을 아우른 책은 어떨까.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씨앗을 뿌리는 사람들)나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얼른 떠오른다. 전자는 고향마을을 ‘헌책방 왕국’으로 만드는 우습고도 매혹적인 이야기, 독서 자체를 소재로 한 환상적 판타지다.
아쉽지만 이번엔 보통의 『행복의 건축』과 동행하기로 한다. 출판단지는 계획 단계부터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를 표방해 건축가들에게 솜씨를 뽐낼 기회를 제공했던 문화 명소다.
이곳에서 만나는 보통은 각별하다. 그는 “건축이 말을 한다… 민주주의나 귀족주의, 개방성이나 오만, 환영이나 위협, 미래에 대한 공감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좇다 보면 주거 공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남이섬 정관루 호텔 … 섬 속에 섬이 있었네
남이섬도 섬이다. 배를 타고 강 건너는 데 10분도 안 걸리지만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육지와 완전히 고립된다. 게다가 남이섬 정관루 호텔은 전화도 인터넷도 TV도 없다. 창문을 여니 밖은 온통 깜깜하다. 청량한 가을 공기 속에 별빛과 풀벌레 소리만이 동무가 돼 줄 뿐이다. 세상과 단절된 그 곳에서 책을 열었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김영갑·휴먼앤북스).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이 교회나 절, 성당을 찾아 회개하고 기도하듯 나는 마라도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섬 자체가 삶을 깨닫게 해주는 경전이자 성지였다.” 마음에도 고요한 평화가 밀려든다.
남이섬은 섬 전체가 책을 위한 공원처럼 꾸며졌다. 매년 봄 열리는 ‘세계 책 나라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섬에 들어서면 저절로 책에 손이 간다.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사이의 나지막한 벤치나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잔디밭은 자연을 느끼며 책 읽기 좋은 장소다. 이곳엔 식당·화장실·상점 등 손이 닿는 곳마다 책이 놓여 있다. 마음이 내키면 곳곳에 붙어 있는 메모판과 노트에 글 한 줄 올려보자. 주식회사 남이섬 강우현 대표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정관루 호텔(www.namihotel.com)은 ‘섬 속의 섬’이다. 정성스럽게 꾸민 로비와 정원, 객실은 유럽의 부티크 호텔(규모가 작으나 고급스럽게 꾸며진 호텔) 같다. 객실은 작지만 개성이 넘친다. ‘갤러리룸’은 조각가·서양화가·공예작가들이 각자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꾸민 방이다. 아이들과 함께 온 손님에게 인기라는 ‘최민주’ 방은 동화 속 별천지 같다. 벽을 따라 인공 나무가 뻗어 있고 상상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림과 조형물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한병호’ 방에 들어가면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천장에는 대형 하늘 사진이 붙어 있고 작은 새를 조각한 장식품도 벽 틈새마다 콕콕 박혀 있다.
호텔 로비는 한쪽 벽이 다 책장이고 방에도 식당에도 온통 책이다. 어린이 책이 특히 많다. 동화책 한 권 꺼내 들고 호텔 주변 강가를 산책해도 좋다. 호텔이 섬의 외진 곳에 있어 복닥거리는 관광객들 보고 눈살 찌푸릴 일도 없다. 나무숲 사이로 뻗어 있는 강가 산책길을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고요해진다. ‘그 섬에 내가 있고’ 또 책이 있었다.
■정관루 호텔에는 4~5인 이상이 머무를 수 있는 별장도 있다. 일반실은 1박에 주중 5만5000원, 주말 8만8000원, 갤러리룸은 주중 6만6000원, 주말 9만9000원이다. 별장은 7만~25만원.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앤북스)2005년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의 사진에세이집이다. 그는 병을 얻기 전인 1985년 제주도에 정착해 그곳의 고요와 평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된 다음 그는 자기 마음을 사로잡았던 자연을 추린 뒤 진솔하고 순박한 글을 붙였다. 그는 말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고 아우성이다…하지만 어떤 바다나 강에도 큰 고기는 있기 마련이다…행운은 사진가 스스로 준비해서 맞이하는 것이다”라고.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노래했다. 그 섬은 눈에 보이는 뭍은 아니리라. 하지만 이 사진에세이를 읊조리며 손으로 찬찬히 사진을 쓸고 있노라면 ‘그 섬’에 가고 싶어지리라.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