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 근무한다.

아시다시피 대학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과 행정적 지원을 해주는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언젠가 부속기관장들의 회의에 내가 속한 기관의 장을 대신하여 참석을 한 적이 있었다. 약 10여 명의 참석인원 중 나만 직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교원들만 참석하여 살짝 당황스러웠으나, 정작 당황스러운 순간은 그 다음이었다. 처음에는 쌀의 뉘처럼 앉아 있는 나를 의식하여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하던 교수들이 어느 순간 대화에 몰입하다 보니 눈앞에 버젓히 앉아 있는 나를 보면서도 마치 없는 사람인 양 취급하며, 대화의 성격상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대화를 거침없이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취한 자세는 그저 교수들이 보는 시선에 맞추어 없는 사람처럼 정물이 되어 조용히 눈을 내리깐 채 침묵하는 것 뿐이었다.

대학 3학년때, 영호남화합도보대행진이 광주에서 하동까지 3박 4일에 걸쳐서 시행된 적이 있었다. 전라도와 경상도 대학의 동아리연합회 학생들로 구성되어 참가하게 되었는데, 하루 종일 8시간씩 걷다가 시골초등학교의 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때, 전라도와 경상도를 경계로 하여 너무도 확연히 비교되던 도로사정과 초등학교의 시설상태는 참가한 대회의 성격도 잊어버릴 만큼 호남측 학생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블랙라이크 미를 읽으면서 나는 그 때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와 함께 백인속에서 흑인들이 가지는 감정을 나 또한 사회 조직안에서 살아가면서 유사하게 경험한 순간이 참으로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체념과 타협을 배우면서 점점 부당한 처우에 익숙해져 가는 백인속의 흑인들처럼 같은 집단끼리도 분열해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흑인의 이야기는 어린시절 동화로 읽었던 '톰아저씨의 오두막'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정도였다.

그 속에서 그려지는 흑인들은 백인의 시종이나 하녀이면서도 매우 충성스럽고 인격적으로 품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백인에게 흑인은 꼭 그렇게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흑인에 대해 내가 인지하고 있던 지식은 백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음악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것, 지적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을 거라는 것 등등..그러나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그때에서야 진지하게 흑인 개개인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자각하면서 우리와 똑같은 사고와 품위와 느낌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된다.

저자가 약 한달 반 동안 완벽한 흑인이 되어 남부지방을 돌아다니면서 흑인의 몸으로 겪은 일들은 지독히도 참혹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조금도 찾아낼 수 없는 내용들의 연속이었다. 그때가 1959년의 일이니

이제 50여년의 시간이 흘러 흑인의 아들인 오바마를 아메리카의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까지 미국내에서 일어난 그 변화는 감히 기적이라고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이나 저자와 같은 인권운동가들의 노력이 밑받침되었기에 그 기적은 가능했던 것이다.

<블랙 라이크 미>는 모두 1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으며 브리이유 점자와 오디오북으로도 나와??치의 예를 들면서 인종차별을 저지를 경우 그 폐해는 피해자 집단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에까지 미친다는 결론하에 우리 백인이 미국 흑인에게 다른 형태의 인종 억압을 가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바로잡을 수 있기에 그 자신이 직접 흑인이 되어 그 차별의 현장을 체험하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일기형식으로 흑인으로서 남부여행기와 그 뒤 백인가정의 가장으로 사는 모습,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이 책이 미국 전역에 폭풍과도 같은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나는 어디까지나 똑같은 나였다. 그러나 백인일 때에는 백인으로부터 형제 같은 따뜻한 웃음과 특권을 제공받고 대신 흑인에게서는 증오의 시선이나 아첨을 받았다. 그러다가 흑인이 되면 백인은 나를 잡동사니 더미에나 어울릴 법한 존재로 여기는 반면 흑인은 나를 매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p233)

위의 내용은 단지 한 사람의 내면이나 사회적 위치, 그리고 지적 능력이나 여타의 모든 조건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벌어졌던 행태인 것이다.

저자는 피부색의 차이가 그들(백인과 흑인)의 인격이나 교양, 품위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그들이 처한 각자의 조건이 현재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흑인들의 경우는 그 조건이 백인의 의도에 의해 계속해서 열악한 상황에 몰리기 때문에 백인이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만 보던 흑인의 그 모습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여행하는 도중에 만나는 흑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신께 기도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이다.

이 책의 매력은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위험한 일을 과감히 실천한 사실적인 내용에도 있지만, 변화를 통해 영혼의 여행을 추적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을 끄는 진실성과 솔직한 자기 비판,  탁월한 문학적 향취등에 있다.

여전히 사람사는 세상에는 각종 이해와 얽혀서 빚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편견들이 건재하고 있다. 백인들의 흑인을 백안시하는 행태는 비단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땅에서도 피부색에 따른 차별과 편견 뿐 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계급적 차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최근 고려대 입시의 특목고 우대 정책을 보면서 그 정책안에 숨어있는 철저히 타자화되는 집단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 사회속에서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자각을 같이 하게 한다.

따라서 <블랙라이크미>가 더이상 흑인의 인권이야기로만 읽히지 않고 자꾸만 우리네 현실을 돌아보게 했던 것은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관한,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이 타자화되기도 하지만, 무의식중에 나 또한 누군가를 타자화시키고 있는지는 정녕 모를 일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어떤 집단을 타자화했었음을 깨닫는다.

저자는 <'타자'를 넘어서>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서로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주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이 책을 통해 소박하게나마 내 삶속에 실천적 행동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책의 제목인 '나처럼 검은'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를 의미한다는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겨 삶의 긴장속에서 나 자신을 자주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