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누군가 고전은 얼마나 읽었냐고 물어본다면 할말이 없어진다. 꾸준히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인문학과 관련한 ‘진짜’ 독서는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초보단계인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고전과 만날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책장을 펼쳤던 것 같다.

웃음이 나온다. 그 모든 책들을 한번에 얻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기에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에 대한 헛웃음이다. 물론 이 책에 나와 있는 독서목록들 그리고 이 책을 쉽게 생각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는 이름보다는 모르는 이름들이 더 많았고 그렇기에 처음 듣는 고전 제목들도 많았다. 비록 저자가 일부 내용을 실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주었지만 그것을 오로지 내 것으로 소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욕심이 생긴다. 저자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콜럼비아 대학에서는 왜 그러한 책들을 선별했는지 알고 싶어서라도 독서 목록에 나온 고전부터 다 읽고 싶었다. 그런 고전들을 한층 더 쉽게 풀이해준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을 통해 책들을 미리 파악할 수도 있지만, 난 아직 어디에도 동화되지 못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신과 인간, 부모와 자식, 전쟁, 자신에 대한 정체성, 성과 쾌락,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 끊임없이 토론한다. 물론 거기에는 책을 읽지 않고 온 학생도 분명 있다. 마치 이 책을 읽는 내가 그러했다.

 -『오디세이』는 어느 모로 보나 『일리어드』만큼 벅차고 무모하며, 거칠게 아름답고 마침내는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145p -

 이 한 문장에 순간 작은 질투심이 발동한다. 오디세이는 어떠하고 일리어드는 어떠하다는 내용 요약이었다면 어려운 내용을 파악하기 쉽게 도와주었다며 만족감을 얻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디세이와 일리어드를 깊이 이해하고 자신 나름대로의 재해석을 하며 비교, 분석이 가능한 일종의 감탄과도 같다. 읽는 나는 전혀 감도 잡을 수 없는 작품의 느낌! 읽고 싶은 책의 목록에 당장 오디세이와 일리어드를 적는 것으로 질투심을 잠재운다. 

고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수업시간에 접했을 때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책 내용은 간단히 설명으로만 넘어가고 이론적인 것만 배우게 된다. 당연히 시험을 본 뒤엔 언제 배웠냐는 듯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을 읽으며 고전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짐을 발견한다. 왜 읽어야 하는지 조용히 마음의 벽에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고전을 읽어야 하는 으뜸가는 이유로, 그것이 우리와 멀리 떨어진 시대, 우리와 사뭇 다른 문화와 사유의 소산이란 점을 든다. 그렇기에 고전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가 우리 시대의 문화적 틀 속에 갇혀 경험하거나 생각해보지 못하는 것들을 접하게 한다. 결국 고전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36p -

- 인문학 강좌는 기지개 켜기와 같다. 우리가 읽는 고전작품 가운데 일부는 더 이상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을 읽음으로써 학생들은 남녀 모두 덜컹덜컹 뒤흔들리고, 이제껏 접해온 것보다 더 큰 어떤 삶, 강렬한 개성이 실린 보다 장대한 원칙을 의식하게 된다. 결국 ’틀린다’는 것은 학생됨의 속성이며 실수는 앎에 이르는 길이다. 279p -

 저자에게도 물론 고전은 어렵다. 책에서도 쉽다고 표현한 적은 한번도 없다. 오히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레스토랑, 병원, 버스, 지하철 등 한 장이라도 더 읽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편한 것만 찾고 있었던 내게 고전 읽기의 그 어려움마저 하나의 가치라고 담담하게 얘기한다.

 그래서일까? 어느덧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때로는 그의 생각이 유쾌하다. 호메로스에 대해 배울 때 헨리가 헥토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자 저자는 그가 아킬레스의 우월함과 시의 폭력을 즐거이 음미하는 것을 보고 약간 움찔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의 폭력을 즐기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라며 반문한다. 이것은 마치 내게 묻는 질문과도 같아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문장은 꼭 내게 [시를 즐길 줄도 모르는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소곤소곤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고전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선 테일러 교수가 명쾌한 답을 내어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DGSI. “Don’t Get Sucked In”의 약자로 그릇된 생각에 속지 말라고 말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우리는 결코 텍스트를 겉으로 보이는 모습대로 받아들이지 않아"하고 그가 말했다. "언제나 우린 텍스트를 심문하지. 아마 ’객관적인’ 시각이란 건 없겠지만 진지한 독법은 있는 거야." 이제 우리는 진지한 독자가 되어 그 책들을 마구 주무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주무를 것인가? 76p -

 그동안의 책읽기라고 하면 부끄럽지만 인물과 사건 중심의 단순 읽기에 불과했다. 잠시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형태, 형태와 형태가 만나 이루어지는 유기적인 구조를 혼자서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고전을 읽기 전에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을 만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고전을 먼저 읽었다면 여전히 그것은 표면적인 텍스트로만 남아 무엇을 사고해야 하는지 전혀 갈피도 못 잡았을 것이다.  

요즘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경제 불황, 신뢰받지 못하는 정치. 더불어 얼어붙은 민심을 보도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플라톤의 국가론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눈에 들어온다. 이상적인 국가, 그리고 사회를 통합시키는 힘을 고전에선 어떻게 얘기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