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우리네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그리고 자기만의 주체적인 생각을 꿋꿋히 지켜가며 큰 욕심없이 알콩달콩 일상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그런 책.

독일뿐 만 아니라 유럽과 우리나라에서도 닥종이 인형작가로 이름을 날리는 김영희님은 이런 분야의 책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녀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뮌헨의 노란 민들레>를 아주 흥미롭고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저자도 김영희님과 마찬가지로 독일남자와 가정을 꾸린 후 슬하에 남매를  놓고 독일에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하고도 진솔한, 그리고 톡톡 튀는 그녀만의 감성으로 잘 풀어놓고 있다.

소위 중산층 지식인에 속하는 사람들인 저자와 독일인 남편은 그러나 그들의 삶의 방식은 독일의 중산층들의 삶과는 구별된다. 그들은 환경보호에 관심을 보이면서 에너지를 절약하는 적극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인 출세나 성공보다는 가족의 단란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가족의 행복과 단란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앵무새처럼 말하고는 하지만, 타인의 시선들을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의 소신을 지켜가며 살아간다는 것의 지난함을 익히 알고 있다.

나 또한, 저자처럼 그렇게 최소한의 것만 소유한 채 가족 중심의 단란한 행복을 꿈꾸곤 하지만, 그저 늘 생각에만 머물고 만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앞 부분의 약간은 자유방임의 교육관과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일상의 삶을 그려놓고 있고, 뒷 부분에서는 통일 이후의 독일의 경제 상화과 역사 인식, 그리고 현재 전국민의 9%를 차지하는 외국인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도 한국인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외국인이면서 청소년시절부터 인생의 반을 독일에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 독일의 모습을 아주 상세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 채 우리에게 얘기해준다.

그중에서는 주목할 만한 것은 나치정권을 창출하고 그 폐해를 온전히 경험한 독일국민들이 다시는 그런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인류의 역사 속에 '역사 청산 문화'라는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역사 청산은 지나간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기에 일핏 보기엔 실속 없는 일 같지만 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매우 실속있고, 긴 안목으로 보아 대단히 경제적인 행위다. 인간은 누구나 '나치적 대재앙의 불씨'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 불씨를 잘 다스려 함부로 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힘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가르쳐주는 역사가 존재하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련한 사회다. 언제든지 되풀이해서 죄를 짓고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사는 사회다 -179p-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일수록 발아래를 살펴 자기도 밟을 자가 없는지를 찾게 되는 거 같다.

이 책은 현재 우리 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각 종 문제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할 이유를 제공해 준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천연자원 없이 전적으로 인적자원에 기대어 과학 기술의 힘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와 매우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역사청산'의 자세와 교육문제, 외국인 문제 등은 우리가 독일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와 맞닥뜨기는 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부분을 언급해준 책이라 할 만하다.

엄청난 구호보다는 이렇게 가벼운 터치의 에세이로 다가오는 지식인의 깨어 있는 시각은 가랑비에 속옷이 젖듯,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각에 작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 먹을 것이 많은데, 굳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고등어잡이의 고등어를 식탁에 올려야 하냐는 저자 가정의 식탁에서의 토론은, 남들이 해보는 것은 나도 꼭 해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사고에 아주 신선한 충격을 주는 발상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고등어를 매우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고등어가 그나마 싼 생선에 속하는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먹어줘야 겠다. 여기는 독일이 아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이니까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우리 식탁에는 고등어 대신 소고기를 금해볼까나.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주기로 성장소설을 읽어주면 이미 인생의 쇠락기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또다른 인생의 깊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소설을 선호한다.

낯선 작가이자 외국소설이지만 성장소설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갔고, 우리나라의 성장소설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 이번 기회에 알고 싶기도 해서 읽게 되었다.

책날개에 나와 있는 저자의 이력을 보니, 이미 문단에서는 절묘한 필치와 세련된 유머가 돋보이는 문장으로 그 저력을 입증받은 작가이자 행간에 인생의 애환이 감도는 언어감각으로 상당한 팬층을 확보한 작가였다. (이렇게 해서 이미 유명하고도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다.)

항상 새로운 테마에 도전하는 저자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항상 새로운 테마'에 도전한다고 하더니, <네번째 빙하기>를 읽어보니 과연 그러했다.

성장소설에 빙하기라니, 그리고 주인공이  태어나니 아버지가 없는데, 그 아버지가 크로마뇽인일 것이라는 설정이라니, 참 신선하면서도 묘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소설이었다.

기업연구소의 연구원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와타루, 아버지가 없다는 점도 그렇지만, 외모도 이웃의 누구와도 같지 않은 것은 와타루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누구와도 같지 않고 각기 구별되는 특성이 있지만, 와타루의 다른 점은 유독 부각되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편견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

이런 와타루에게 단 하나의 친구가 생겼으니 무능력하고 폭력아빠를 둔 '사치'다

아버지가 없는 와타루와 아버지가 있으나 없느니만 못하는 사치는 자신의 껍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달팽이와 소라게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소라게와 달팽이는 껍데기를 서로 바꿀 수도 없다. 둘은 자신의 껍데기를 찾고 있는다는 점에서 동지이자, 친구였다

소설속에서 와타루와 사치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과정은 너무도 당연하게 가슴을 울린다. 성장기의 아이들이 가질 만한 여러 가지 의문들,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순박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진정을 다해서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와타루가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그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나 수렵생활이 그려지는데, 비록 엉뚱해 보이는 설정이나 이 또한 성장소설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성장소설이 가지는 배경적 상투성에서 벗어나 신선해서 좋았다.

인간은 누구나 아픔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해 간다. 인류가 세번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살아남았듯이.

오기와라 히로시가 <네번째 빙하기>의 결말을 밝게 그려주어서 감사하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 시대에 아픔을 겪는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음 한다. 그래서 와타루와 사치처럼 자신만의 세상을 당당하게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