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대한 명성은 경제면에서 익히 들어 왔다.

그런데, 최근에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후배가 요즘 읽고서 힘이 되는 책이라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언급했다.

처음에 듣고는 내가 아는 시골의사가 후배가 말한 시골의사인 줄 미처 몰랐었다.

자주 대화를 하면서 위로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그 사람이 바로 그사람이란다.헐

시골 의사라길래 난 저어기 남쪽 어디쯤에 있는 조그만 읍에서 무료진료를 겸한 의사인 줄로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배달되어 온 책을 보니 떡하니 표지에 <모방송드라마 소재제공 에세이>이라는 문구가 품질을 보증한다는 돼지고기의 붉은도장처럼 찍혀 있었다. 흠,,,시골의사가 저작권료는 좀 받았을려나..내 생각보다 많이 알려진 책인가 보군..하는 생각이 스친다.

안동정도면 국립대도 있는 도시인데, 전국이 서울과 지방이라는 두개의 단어로 정리가 되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보면 과연 안동에서 의사를 하니 시골의사라 할 법도 하구나, 하는 쓴웃음섞인 수긍도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역시 '도시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보다는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 더 그럴싸하게 정서적으로 어필하는 것을 보면, 역시 경제면에서 그 명성을 증명한 작가의 감각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갈피갈피 웃음과 울음을 함께 하고 또한 일상이 내게 주는 행복을 새삼스레 느끼며 누군지 대상도 분명치 않게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 세상은 결국 혼자 왔다가 결국 혼자가는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가까운 지인 중에 의사로 성공한 친구가 있다. 가끔은 예전의 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면 요즘의 친구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 친구의 인턴시절, 레지던트시절을 함께 했었는데, 당시에 의사로서의 삶에 깊이 고뇌하던 친구의 모습을 막연히 공감했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친구를 깊이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개인적으로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결국 삶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것,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다른 방법은 없는 것.

또한 각자의 삶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동행을 끝내고 죽음을 친구로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

사는 동안 그 동행이 아름다운 동행이 될 지, 그렇지 않을 지는 읽는 자, 각자의 몫일 뿐인 것이다.

사족하나, 이 책의 맨 뒷장을 보면 사회저명인사로 흔히 거론되는 네 명의 추천인이 그 추천글을 써놓고 있다.

다른 사람은 각설하고 그 중 현 유모장관의 글을 옮겨본다

'시골의사는 세상을 결코 쉽고 가볍게 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좋다. 부박한 생이긴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제 "나는 누구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진지란 질문을 던지며, 천천히 무겁게 살아볼 일이다.'

요즘 유장관의 행보를 보면, 참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추천글이다. 사람이 하는 말은 정말 믿을게 못되나 보다.

여성이라면 살아오면서 ‘황진이’라는 지난 시대의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자 드물 것이다. 그만큼 황진이의 삶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삶의 전형으로 다가온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나 또한 가끔 한번씩. 일상의 삶의 지겨울 때, 때로는 현재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황진이와 같은 삶을 동경했던 적이 많았었다. 하지만 나의 이와 같은 자세로는 황진이가 일궈낸 그니의 삶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굳이 황진이와의 인연을 거론하자면 외가가 황씨가문이라는 것이랄까..ㅎㅎ

소설에서는 뭐랄까 좀더 치열하게 황진이의 내면을 파헤쳤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많았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한 황진이의 모습은 한마디로 말해서 자유로운 여성이다.

자유롭다는 말은 듣는 계급에 따라서 혹은 성별에 따라서 혹은 연령에 따라서 달리 들릴 수 있는 말이다. 전경린이 말하는 황진이의 자유로움이란 황진이 자신이 아무리 남자를 사랑해도 사랑을 느끼는 사람의 첩살이나 혹은 부인으로는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즉, 황진이, 라는 자신으로 살겠다는 의지다. 황진이라는 여자의 자의식은 자신이 기생이라는 위치에서 출발한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가야금의 명인이자 기생이었으며, 연산군시절 궁궐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맹인이 된 여자기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황진사와 사랑에 빠지고, 진이라는 딸을 낳게 되었다. 황진사의 부인은 황진이의 어머니를 찾아와 황진이를 서얼이 아닌 양반으로 키우겠다는 제안을 하고, 그 제안의 대가로 황진이의 어머니는 딸을 부인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돌다가 생을 마친다.

한편 황진이를 데려다 키운 황진사의 본처는 황진이를 양반집규수로 키운다. 그것도 모자라당시 시대에는 남자들만의 고유영역인 글과 시문을 배우며 자란다. 그러던 어느날 친엄마인줄 알았던 황진사의 본처가 사망하자 그녀는 자신이 천한 기생의 딸이며, 천출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자각이 황진이 스스로 기생의 길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며, 누구에게든 사랑을 줄 수는 있으되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기생의 길을 가게 만든다.

기생은 자신의 존재위치를 어떤 남자에게든 개방할 수 있으며, 그래서 쉽게 꺾을 수 있는 노류장화라고 부르지만 한편으로 황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선택하는 남자와 영원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평생을 산 것 만큼의 사랑을 한다는 것이 황진이의 입장이다.

황진이는 살면서 많은 남자와 사랑을 한다.

그것도 지독하고 진솔하게 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상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누는 그런 사랑을 한다. 황진이와 사랑을 나눈 남자는 절대로 황진이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남자들은 황진이와의 이별앞에서 언제나 자신의 첩이 되거나 부인이 되어달라고 애원하지만, 황진이 또한 언제나 그 대목에서 입술을 깨물고 버틴다. 그녀인들 마음이 떠나지 않은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남자의 그늘로 가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녀의 자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생의 자리요, 어떤 한 남자에게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여인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랑함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여자가 황진이인 것이다.

남자입장에서 보면 환장할 노릇이지만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남자들은 더 황진이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들이 사랑할 수는 있지만 결코 소유할 수는 없는 여자가 바로 황진이니까.

그런 황진이가 딱 한번 첩살이를 3년 동안 하게 된다. 아마도 그 남자는 황진이에게 진정한 남자였을 것이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에도 황진이는 순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남자와 학식과 시의 세계를 알려준 남자와 서화담같은 도학의 정신세계를 알려주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첩살이를 하게 했었던 그 남자는 황진이에게 기생도 뭣도 아닌, 본능에 충실하게 한 그냥 여자이게 한 진솔한 세계의 남자였던 것 같다. 그 남자 앞에만 서면 두 손 모두어 잡은 채 하염없는 여자이게 하는 사람이 왜 있지 않은 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진이가 첩살이를 했던 ,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인의 자리에서 있고 싶었던 그 남자는 황진이 자신의 본능에 가까운 내면을 보여준 남자이었으며, 다른 그 어떤 남자보다도 여자로서 인정받고 소유당하고 싶어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인간 황진이로 살고자 마음 먹었지만, 긴 인생에 있어서 여자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3년의 첩살이를 통해 향유하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나 싶다.

황진이는 세상을 초월한 듯한 눈빛 그리고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외모와 끼,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적사유의 세계를 가진 여자였다. 뭐랄까, 남자로서는 겁나는 여자이기도 하면서 또한 도전하고 싶은 여자이기도 하고, 결코 소유당하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남자로 하여금 안달하게 만드는 그런 여자이기도 한 것이다. 아마 황진이가 서양에서 태어났더라면 팜프파탈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동양에 태어난 황진이는 팜프파탈이 아닌 오히려 뮤즈에 가까운 여자가 되었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외모를 파괴하면서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찾는 구도자가 된다. 어쩌면 작가는 기생의 딸이자 서출로 태어난 조선시대의 갇혀있는 사회구조에서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런 여자로 황진이를 규정하고, 누구에겐가 속하고자하는 열망까지도 초월하는 일종의 모든 소유욕을 버린 구도자로서 황진이를 그려냄으로써 모든 여자가 소망하는 자유에의 갈망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밤이거든 구비구비 펴리라.

청산은 내 뜻이오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가실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 밤길 예놋다

내 언제 신의없이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다

추풍에 잎 지는 소리야 낸들 어찌하리오

레너드 코헌은 캐나다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싱어송라이터이다.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 중반에 광고 음악으로 그의 음악이 쓰이면서 한국팬들에게 알려졌다.

19080년대 대학시절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는

아침이면 문을 열자마자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어온 젊은 청춘들의 귀를 달콤하게 적시는

마치 읊조리는 듯한 저음의 매혹적인 목소리인 레너드의 유명한 'I′m your man'을 틀어주곤 했다. 

그의 음악은..그리고 목소리는 이전에 들어왔던 어떤 음악의 선율과도 달랐다. 그만큼 레너드의 목소리는 충격적으로 감성을 건드려주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한동안 레너드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다방에 들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잊고 있었던 음유시인을 이번에 [아름다운 패자]를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지나가듯이 레너드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책까지 찾아볼 생각은 못했었기에, 이벤트를 통해서 그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주저없이 신청을 하게 되었고 너무도 매력적인 레너드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던 나는 책이 도착하기를 또 얼마나 기다렸던지..

그렇지만, 그렇게 큰 기대를 갖고 만나게 된 [아름다운 패자]는 너무도 쉽게 다가왔던 음악과는 달리 난해하기만 했다.

이미 한달전에 받아봤음에도 불구하고 독서의 속도가 나질 않아, 이 책을 제껴두고 간간히 다른 책을 읽는 외도를 3번이나 했었다.

비단 서평이라는 숙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레너드의 책은 그 어떤 기호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듯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질 않아 마치 스핑크스의 문제를 푸는 것처럼 곤혹스럽기만 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패자]는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매혹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모호하기만한 저음의 울림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알 듯 모를 듯한 내용으로 꽉 차 있었다.

[아름다운 패자]는 인디언 A족을 연구하는 화자 나와 그의 아내이자 A족 인디언인 아내 이디스, 그리고 '나'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형제이자 친구인 F의 삼각관계가 그 주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디언의 첫 번째 순교자로서 성녀가 된 카테리 테카크위타의 얘기가 교차적으로 나오고 있다.

백인들의 제국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프랑스의 캐나다 점령기, 그리고 프랑스 신부들이 그 곳에 이미 살고 있었던 원주민인 여러 인디언 부족들을 선교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캐나다 국가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습의 사람살이들,

즉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이 동성애, 린치, 마약, 순교, 전쟁, 음악, 정치 등 등의 여러 사회적 현상속에서  성과 속의 다양한 모습들이 혼재되어 화자 '나'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서 전개되고 있다.

번역체의 글체라서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이 많아 앞으로 읽어나갔다가도 이미 읽은 앞 페이지를 뒤적이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개별의 문장은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매혹적인 표현이 많아 줄을 긋게 만들었다.

이 책은 1966년에 쓰인 책이니, 나보다도 먼저 이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결코 괴리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여러가지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내용으로 충만하다.

 1990년대에 필화사건으로 실형을 받은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 [아름다운 패자]는 [즐거운 사라]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는 성애표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문단의 엄청난 호평(제임스 조이스의 재래)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읽히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의 문학적 환경을 새삼스레 되짚어보며 씁쓰레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름다운 패자]는 파격적인 문학적 형식과 그 내용으로 읽어볼 만한 책이었지만, 독서하는 동안 공감하기가 꽤나 힘들었던 부분들이 있어 다시 손에 잡기는 어려울 듯 싶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 대학에서 영미권의 포스트모던문학을 설명하는 영문학 강의의 필독서라 하니, 영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볼 만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