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령화 가족>

 

p.18

언제부턴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유령이라도 만난 듯 화들짝 놀라 나를 피했다.

마치 나의 불운이 자신에게 옮아붙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는 동안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나는 충무로에서 완전히 잊힌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하고 만 거였다.

완전한 패배였다.

 

p.42

세 남매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해도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엄마는 부지런히 밥을 해댔고 오함마는 여전히 방귀를 붕붕 뀌어대면서

하루 종일 걸근대며 뻔질나게 주방을 드나들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마냥개미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먹어치워

그가 지나가는 곳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밤마다 옆에서 탱크가 지나가는 것처럼

큰 소리로 코를 고는 바람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둘이 한방을 쓰는 게 갑갑했는지

곧 제 스스로 거실 소파로 거처를 옮겨

그나마 탱크 소리는 모면할 수 있었다.

미연과 민경 모녀는 각각 카페와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와

서로 부딪칠 일이 별로 없었다.

비록 오함마가 바지에 손을 넣고

불알을 조몰락거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이따금씩 방에서 나오던 민경으로 하여금

질색을 하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엉겁결에 재구성된 우리 가족의 평균 나이는 사십구 세였다.

 

p.45

지루한 일상과 수많은 시행착오.

어리석은 욕망과 부주의한 선택......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p.46

담장 아래 놓여 있는 긴 소파엔

노파들 몇 명이 나와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빌라에 사는 노인들을 위해

근처에 버려진 소파를 가져다놓은 모양이었다.

비록 여기저기 코팅이 벗겨지고 귀퉁이가 찢어져

내장재가 비어져나오긴 했지만 짙은 밤색의 가죽은

매우 질겨 보였고 원목으로 된 팔걸이 부분은

우아한 문양으로 조각되어 한때는 ’제법 산다’는 집의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을 게 분명한 고급 소파였다.

소파엔 늘 엄마 또래의 노파들이 기대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네들의 가난하고 추레한 모습과 소파의 우아한 자태가 대조되어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평생 꿈꿔왔지만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부자가 된 기분을 이제야 만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제는 용도 폐기된 소파와 가난한 노인들이 사이좋게 만나

지난 시절의 불화와 반목을 회고하며 느긋하게 쉬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나만의 감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소파는 노인들이 단지 앉아서 쉬기에 좋았을 뿐만 아니라

빌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였으니까.

애써 무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노인들의 호기심은 안쓰러우리만치 애절해 그

들의 탐욕스런 시선은 언제나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분주했다.

사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빌라에 누가 들고 나는지,

어느 집에 택배가 왔는지, 어느 집에서 콩나물을 무쳤는지,

뉘 집 아이가 ’뗑강’을 부리다 엄마한테 뒈지게 얻어맞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환히 알 수밖에 없는 자리여서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뒤통수가 근지러웠다.

 

p.63

전집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은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었다.

그것은 1933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사파리 여행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었는데

그 책을 먼저 집은 이유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나

<무기여 잘 있거라>처럼 너무 많이 알려진 소설들은

이미 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작품들을 언제 읽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돈키호테>처럼

너무 유명한 작품들을 이미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헤밍웨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리라.

 

p.88

어린 조카딸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미연이년 눈치를 봐가며

겨우 차를 빌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아무 일도 없이 돌아가야 하다니!

이건 페널티킥을 얻어놓고 관중석을 향해 똥볼을 찬 꼴이 아닌가.

오라! 그렇다면 여자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순진하기만 한 건 아니었군.

 

p.103

나는 여자의 그런 뒷모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미연이 아니라 중년 무렵의 엄마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을까?

엄마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다말고

지금의 미연처럼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입고 있던 낡은 슬립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남아 있어

그저 가난하고 각박하게 살아온 세월의 두께만이 무겁게 얹혀 있을 뿐,

여자의 속옷이 주는 특유의 성적 긴장이나

평온한 휴식 같은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훔쳐보며

희미하게나마 엄마의 부서진 희망 같은 걸 감지했다.

그런데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또다시 여동생의 뒷모습에서

여자의 무겁고 숙연한 운명을 들여다보고 있다니,

여자의 인생은 그렇게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인가?

 

p.141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형제간의 따뜻한 우애와 건강하고 깨끗한 아이들,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배려, 유순하고 성실한 가족구성원들,

사랑이 넘치는 넉넉한 저녁식사

(어머니, 이 뚜껑에 밥 좀 비벼서 드셔보세요.

짜지도 않고 알이 꽉 찼네요.

그래, 참 맛있구나. 애비도 뚜껑 하나 줘라)......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p.185

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안전벨트를 매주시겠습니까, 손님?’

이라고 쓰여 있었다.

 

결혼 이 년 차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항로를 이탈했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다.

원래 기내식처럼 요란하게 흔적을 많이 남기는 여자여서

곧 들통이 나고 말았다.

아내의 경고대로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어야 했는데

나는 순진하게도 그녀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 바람에 충격이 더 컸다.

 

p.222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함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오함마는 언젠가 그들에게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 절대 품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내 비록 지금은 차가운 관 속에 시체처럼 누워 있지만,

동생들아! 너희들은 곧

비 오는 달밤에 시체가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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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에만 그냥 읽다보니 읽는 책이 있고

계속 생각나서 내 할 일도 제쳐두고 읽게 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였다 ^^

 

조폭 깡패 강간범 오함마와

바람 피고 이혼 당한 여동생 미연

영화 한 편 말아먹고 백수 된 주인공이

다들 사십이 넘은 중년에 "실패"를 떠안고

엄마의 집으로 돌아와 동거하는 이야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연이 데리고 온 딸 민경은 싸가지에

엄마도 과거가 찬란하긴 매한가지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 얘기인데

이 가난하고 처절한 집안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기대하면 안 된다

뭐 좀 잘 되려나 본데~? 생각하면

여지없이 꽈당 엎어지고 마는 슬픈 상황을

유머스럽게 그렸다 (그게 더 슬퍼 ㅠ8ㅠ)

 

충무로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오감독의 비루한 생활이

리얼하게 묘사가 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10년여간 영화판에 몸 담았던 천명관 작가가

무엇보다 잘 쓸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뒤늦게나마 천명관 작가를 알게 되서 기쁘다

팬이 될 것 같다

엔도 슈사쿠 <나를 사랑하는 법>

 

p.19

좋은 옷을 입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언젠가는 자신이 그러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할 만한 경험을 해 보려고 노력한다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대부분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입을 만한 옷을 입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자신도 언젠가는 꼭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p.25

인간은 모두가 아름답고 강한 존재이다.

하지만 날 때부터 겁이 많은 사람이 있고,

또한 걸핏하면 훌쩍거리는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약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나약함을 등에 업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 <착한 바보> 중에서

 

p.28

수많은 문화 인류학자들은

생활 속에 축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였다.

살아가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축제 같은 것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p.33

어떤 사람도 의심하지 말자.

믿자.

속는다할지라도 믿자. - <구원과 문학> 중에서

 

p.35

인생은 장거리 경주와도 같다.

만약 당신이 경쟁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면

인생을 단거리 경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p.36

사람마다 운 좋은 해가 찾아오는 주기가 다르겠지만

운이 있는 해가 찾아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 당신이 20대라면 그 주기를 파악해 두면 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 다음은 언제쯤 오겠다 하는

감이 올 때를 계산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운 좋은 해가 찾아왔을 때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게 된다면

회사원이라면 승진을 한다거나,

어떤 시험에서 합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 좋은 시기에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준비해 놓은 것이 없고 쌓아 놓은 실력 또한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면

좋은 운을 놓치게 되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인생에는 도약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다.

그때를 위해서 항상 꾸준히 공부하라.

 

p.56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도까지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중에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절망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무의식의 힘은 반드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p.69

특히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곧바로 런던이나 파리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추천하는 코스는, 맨 처음 이스라엘로 가서

그리스에 들른 다음 이탈리아로 가는 것이다.

그런 코스로 여행을 하게 되면 보는 눈이 확 달라진다.

헤브라이즘(기독교 문화)과 헬레니즘(그리스, 로마 문화)을 형성한

두 사상의 발상지를 보고 나서

이탈리아로 가게 되면 현재의 유럽을 이해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p.92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p.96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쉽게 우월감에 빠진다는 것이다.

자기혐오, 열등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그런 점에서는 옛날 사람들이 오히려 현명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전문가 밑에 들어가서

갖은 일을 다하며 배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도 처음에는 선배들에게 자주 얻어 맞으면서 배웠다.

선배들에게 혹독하게 배우던 시절에,

사상이라는 것도 모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사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모든 면에서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세상은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증표를 준다.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좋지 않은 성격, 약간 뒤떨어졌다 싶은 능력을

좋은 쪽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p.105

상대방에게 굳이 당신이 무서운 존재라고 인식시키지 말라.

그 대신, ’저 사람은 참 쓸 만한 사람이다’,

’내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을 두려운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그를 당신의 친구로 만들기 매우 어려워진다.

상대방이 다른 데 신경을 쓰는 사이에 준비해 두고,

어수룩한 면을 만들어 두는 것이

당신이 성공하는 데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120

다른 사람들의 질투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똑한 척 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솜씨가

완벽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바보와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빈틈을 보여야만

크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멍청하게 보이라는 말이 아니다.

어느 정도는 빈틈이 있는 편이 상대방에게는 안도감을 주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저 사람은 약간 모자란 구석이 있지만 괜찮아."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라.

그런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의 질투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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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유로

요즘 내가 싫어져서 집어든 책

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

다시 아이러브미 모드가 되었다

노벨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저명한 작가인데

나는 처음 알았다 @.,@

 

노미네이트 된 <침묵>이나 <여자의 일생> 같은 건

종교적이고 엄숙하다는데

에세이라서일까 내가 읽은 이 책은

가볍고 솔직하고 친절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얼굴을

동글동글 귀여운 할아버지 정도로 떠올려봤는데

검색해보니 내 생각이 딱 맞았다 //   //

 

지금도 그렇듯, 다신교적 성격이 강한 일본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엄마가 그렇게 사랑한 하나님을 알기 위해

(정확히는 가톨릭교의 하느님이지만)

종교 소설을 심도 있게 썼다니 위대하다

<침묵>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팀 보울러 <리버보이>

 

p.9

물론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녀는 못 말리는 수영광이었으니까.

만약 수영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녀는 끔찍한 혼란에 빠지고 말 터였다.

그녀는 물살을 가르는 힘과 속도감을 좋아했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물거품의 반짝임,

누에고치 속 애벌레처럼

물 속에 푹 파묻혔을 때 느껴지는 묘한 고립감을 사랑했다.

장거리 수영을 할 때는 기술 못지않게 의지도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녀는 탁월한 기술과 굳은 의지 그 두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단지 그녀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필요할 뿐이었다.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를 시험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언젠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할 뿐이었다.

 

p.37

이곳은 왠지 수상하다.

이유 없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무서운 것은 아니다.

뭐랄까, 마치 이곳 전체에 영혼이 깃든 것 같았다.

기분 나쁜 유령이나 소름끼치는 어둠의 느낌이 아니라 강의 정령,

풀잎과 나무와 언덕의 정령, 밤이 부리는 마법 같은 게

이곳의 모든 부분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p.53

작업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즐거운 예술가라기보다는

침울한 예술가에 가까웠다.

예술은 할아버지에게 특별했지만 그것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랑과 경탄의 대상인 동시에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일 수 있었다.

좀 더 즐겁게 작업하실 수만 있다면... 제스는 왠지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그렇게 물과 수영에 몰두하는 것처럼,

할아버지는 그림에 몰두하고 계신 것이다.

제스가 진정한 자신을 느끼기 위해 물이 필요한 것처럼,

할아버지도 자신의 마음속 풍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붓을 잡으시는 걸 거다.

 

p.63

할아버니는 의자에 등을 축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제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할아버지는 완전히 지치신 듯했고, 뼛속 깊이 좌절감을 느낀 듯했다.

제스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할아버지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될 거라는 걸 예상했다.

그림을 완성한 후에도 무척 피곤해하셨지만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그림에 담아내기까지

끝없이 침울해하고 초조해하고 고민하곤했던 할아버지가 아닌가.

 

p.116

그녀는 할아버지를 뒤에 두고 얼마간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얼굴을 찡그리고 계시지 않았다.

눈은 어느 먼 곳을 보는 듯했고 입은 벌어져 있었다.

드디어 진짜로 그림에 몰두하시고 계신 것이다.

제스는 안심이 된 듯 혼자 미소 지었다.

할아버지는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읽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사랑하기도 쉬운 사람이었다.

붓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제스는 약해지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p.148

그녀는 그런 말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포기하실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포기했다.

그리고 포기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더 괴로워하고 계셨다.

패배, 그것은 어떤 물리적인 고통보다도 할아버지를 더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병동으로 들어가

끊임없이 좌절하고 분개하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은 제스 역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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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책

000 물 건너가고 책! 책! 책! 을 읽읍시다

완전 건전하다 하하 최고의 생일이구나 브라보

<해리포터>를 제치고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이 작품은

강물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흐르는 강에 인생을 비유하는 건

"이런 행동 너답지 않아" 다음에

"나다운 게 뭔데?" 가 나오는 것처럼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맨날 통통 튀는 책만 읽다 이런 책을 읽으니

요가 학원에서 스트레칭으로

자세 교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틀어진 골반을 바로 잡는 것 같은 기분

고통과 인내 속에 찾아오는 안도감이랄까?

원래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쓴 법이다

착한 어린이가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