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토 아야 <1리터의 눈물>
p.37
"이제부터 고등학교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을거야.
편한 길이 아니야. 매일의 행동에 제한을 받게 될 경우도 있고
다른 아이와 구별이 되기도 해서 힘들 때가 더 많을 지도 몰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하나 둘 정도의 고통은 지니고 산단다.
그걸 견디고 이겨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안돼.
나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걸 마음에 새겨둬라."
p.43
저녁 무렵 아주머니와 산책을 나갔다.
벚꽃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이파리 사이로 빛이 춤추는 듯 했다.
p.62
"아야, 지난번에 엉엉 울었잖니. 그때 엄청 귀엽더라."
"뭐야! 정말? 부끄럽잖아. 그런 말 듣는 건 처음이야.
근데 내가 우는 얼굴을 거울로 본 적 있는데 별로던데."
"아냐. 얼굴은 안 보였어. 그랬으니까 귀여웠지."
"와~ 너무 심하다!"
귀여웠던 건 얼굴이 아니고 분위기라고.
둘이서 실컷 웃었다.
친구란 참 좋다.
p.74
나는 공기 같은 존재의 인간이 되고 싶다.
사라지고 나서 처음으로 소중한 존재였음을 알게 해주는 사람.
아무튼 따뜻하고 안에서 멋이 우러나는
그런 인격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p.75
지금 11시.
드러누운 모양의 반달이 동쪽 유리창을 통해 미소짓고 있다.
전등을 끄면 달에게 기도할 수 있을까.
건강한 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라서
어찌 할 수도 없는 굴욕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너무 괴롭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러한 굴욕감이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다니는 히가시 고등학교가 좋고, 선생님이 좋고,
S, Y, M 등 친구들이 좋다.
과자집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때 초콜릿을 준 선배도 좋아!
p.78
"좋아서 병에 걸린 건 아냐.
그러나 몸이 불편해도 남아 있는 게 많아.
만약 아야가 생각하는 능력조차 없는 병이라면
병에 걸려 처음 알게 된 사람의 따스함,
친절함을 알지 못했을 거 아냐?"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p.78
S와 큰 못가에 앉아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철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얘기를 나웠다.
"아야. 넌 전하고 참 많이 달라졌어.
'푸르른 하늘이 아름다워'라며, 감격해서 말하잖아.
심성이 섬세해졌어."라고 S가 말한다.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되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라고 묻자,
"응. 여동생이랑 남동생. 근데 잘난 척을 많이 해.
역시 혼자 있는 편이 가장 편안해."
S는 스스로 선택해서 혼자 생활을 하고 있다.
찢겨져서 혼자가 되는 아냐. 그 차이......
p.80
"이 몸(삿짱은 여자인데도 남자 말투로 얘기했다)은
사람이 죽으면 아아, 나를 대신해서 죽어주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넌 발이 아프구나.
그러니 네가 아픈 만큼 난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삿짱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 몸은 초능력을 믿어(나는 맞장구를 쳤다.)
아메바와 비교하면 우리들 인간은 누구나 초능력자이며
눈이 안 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보이는 사람은 모두 초증력자잖아?"
삿짱은 마음이 참 느긋해. 삿짱이 좋아.
하지만 삿짱도 아야도 다음해에는 이 고등학교에 없어.
p.107
고1 때 여동생이 병원 복도에 늘어서 있는
휠체어를 가지고 놀겠다고 하자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놀면 못써.
휠체어 밖에 탈 수 없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꼴이 되니까."
나는 지금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p.142
전에 앗짱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몰라."
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너무 놀랐다.
마음 밑바닥에 우글거리고 있던 불만이 한숨과 함께 날아가는
그런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으니까.
그래도 그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능력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니 너무도 불쌍했다.
p.160
같이 간 여동생(4세)이
"언니는 흔들흔들 하니까 안 예뻐."라고 가혹한 줄도 모르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마시던 차를 뿜어냈다.
어린아이는 사람이 상처를 받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척 말해버리니까 무섭다.
p.182
야마모토 선생님은
"이젠 학생이 아니니까 천천히 느긋하게 좋아질 때까지
입원하고 있어 보자.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 돼.
살아 있기만 하면 좋은 약은 반드시 개발되니까.
일본의 신경의학은 외국에 비해 조금 뒤져 있어.
그래도 최근에는 빠른 속도로 진보해 가고 있거든.
백혈병도 몇 년 전에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었지만
지금은 치료가 다된 사람도 있어.
선생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아야를 어떻게든 고쳐 주기 위해서야."
p.189
양호학교의 스즈키 선생님과 토츠지 선생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졸업한지 4개월만이지만 두 분 모두 변함이 없으셔서 좋았다.
"선생님, 제 이불에 누워보세요."
"병원 이불에 눕는 건 싫은데. 피곤해 보이니?"
"아뇨, 선생님 냄새가 이불에 배이면
밤에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선생님은 뭐라고 할 수 없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셨다.
p.203
감기 기운이 있어서 누워 있는데 여동생 리카가 문안 와 주었다.
베갯머리에 앉아 베개 커버에 매직으로 토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크고 작은 같은 모습의 토끼가 나란히 그려지고
토끼들 사이에 꽃인지 원을 서너 개 그린다.
"밤에 혼자 자니까 외롭지? 친구로 삼아줘."
리카의 다정함에 또 울었다.
p.207
마침내 듣지 말았어야 할 말을 듣고 말았다.
"너도 말을 잘 안 들으면 저렇게 된다!"
진찰을 받으러 간 병원 화장실에서
넘어질 뻔한 나를 엄마가 잡아주었을 때였다.
필사적으로 엄마를 붙잡고 있는 내 옆에서
빨간 체크 옷을 입은 30대 정도의 아주머니가
작은 남자아이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슬프고 비참했다.
"아이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면서 키우면 나중에 자기가 다 벌을 받아.
나이 먹고 늙어서 몸이 불편하게 됐을 때,
자신이 좋은 어머니가 아니어서 이렇게 병들고 몸이 불편해졌네, 라고 하는 것과 똑같잖아.
잘못 가르친 것은 자신에게 돌아오게 돼 있어."
라고 엄마는 위로해 주셨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종종 있을 것이다.
p.263 야마모토 선생님
자기 주변의 일조차도 필사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고
게다가 병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아야가
결혼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결혼에 대한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키가 크고, 가슴이 부풀고, 그리고 날짜가 되면 늘
어지럼증이 심해져서 골치를 썩이는 생리도 시작되어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해 온 아야를 내 눈으로 봐왔는데도
왜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는 일을 생각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독단적인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처럼 오래 깊이 사귀어 왔는데도
역시 아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반성했다.
p.272 엄마
나는 그 애가 울 때 함께 울었다.
넘어졌을 때도 일으켜 세우며 함께 슬퍼했다.
그리고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차가운 복도를 기어 다니게 되었을 때도
템포를 맞추어 그 애의 뒤에서 함께 기었다.
그 애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훌륭한 태도를 취할 수는 없었다.
아야의 괴로움이나 쓰라림을 너무나도 아프고 절절하게 알고 있어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형태이고 엄마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p.281 엄마
자신이 남에게 신세를 지는 몸이라 한번도 불평을 한 적이 없던 아야가
"엄마, 간호인이 협박을 해요."
"언제나 나를 놔두고 돌아가 버리겠다고 말해요."
한입, 두입 정도밖에 먹여주지 않아서 한밤중이면 배가 고파요."
"어차피 낫지도 않는 병이잖아, 라고 하면서요."
딱딱해지는 손가락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수십 분이나 걸려 호소했다.
p.281 엄마
'결코 버릇없이 까탈을 부리는 애도 아니고
떠받치기를 바라는 아이도 아니다.
섬세한 성격이라 한밤중에 간병인의 잠을 깨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정도로 따스한 마음을 가진 아이인데
이처럼 호소를 한다는 것은 많이 참고
견딘 다음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라고 간호사에게 용기를 내어 말했다.
며칠 후에 젊은 간병인과 교체 되었다.
2-3일은 상태를 몰라 긴장한 기색이었지만
그렇게 빈번하던 경직이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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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의 어느날 '척수소뇌변성증'이란
불치병에 걸리게 된 아야의 이야기는
눈물이 없는 나에게도 가슴 찌릿한 슬픔을 안겨줬다
똑똑했던만큼 분하고 억울한 마음도 컸을 거 같은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아야의 엄마&
아야의 주치의인 야마모토 선생님의 따뜻한 말이다
나는 힘든 친구를 웃길 줄은 알아도
힘이 되는 위로의 말 한마디는 건네질 못했다
반면 "엄마 말 안 들으면 너도 저렇게 될 거야."
따위와 같은 생각 없는 한 마디가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도 알았다
저런 말은 주변에서 흔히 들었기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 또한
생각 없이 내뱉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떤 병이든 환자에게 가장 좋지 않은 말은
"너는 왜 그 병에 걸렸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잘못을 해서도 아니고
어떤 행동 때문이라고 하기엔 이유가 너무 작다
착한 아야가 하늘나라에선 좋아하는 글도 많이 쓰고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