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희 <오프 더 레코드>

 

p.26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은 열면 당장에라도

'펑'하고 팝콘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p.43

집 대문까지 데려다준 왕과 나영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랐다.

한 칸씩 오르다가 두 칸, 세 칸씩 다리를 찢어가며 올랐다.

조금 전에 정신을 잃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듣기 싫던 주인집 개가 짖는 소리도 정답기만 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말리려고 계단에 널어놓은 흉물스러운 나물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산다는 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p.44

신발을 벗다 신발장 옆에 달아놓은 전신 거울을 보고 말았다.

거울에 비친 나는 아무쪼록 내가 아니였으면 했다.

쌍코피가 났던 모양인지 코 밑 양쪽으로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 질끈 올려 맨 상투 머리는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이건 조선시대 망나니 앞에 앉은 역적이 따로 없었다.

목이 늘어난 흰 티셔츠는 산발이 된 머리와 나름 어울리기까지 했다.

 

p.100

본인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한 녹음 파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던가.

나는 뛰는 놈이었나 보다.

그것도 운동화도 없이 발바닥이 닳아라 뛰어야 하는 재수 없는 놈.

 

p.123

"예전에는 아이들 몸이 약했어요.

특히 마리가 몸도 마른 데다가 허약 체질이라서."

"어머! 걔가 약해요? 그 독한 아이한테 약하다고 하시면

저는 뭐 드라마에 나오는 가냘픈 비련의 여주인공이겠네요!"

말부터 내뱉고 웃다가 그의 뒤편 기둥에 전면으로 박힌 거울 속

백돼지 같은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바로 옆에 붙은 소주 광고 속 마리는 날 보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몸서리쳐지게 싫은 정적이 지나갔다.

 

p.227

누군가에게 몰래카메라를 찍히고 있었다니.

지금 내 기분은 게 껍질이 이 사이에 낀 것보다,

문지방을 엄지발가락으로 찬 것보다,

생리와 설사가 겹친 것보다 더 불쾌했다.

 

p.242

대본이 날아다니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모두 "나 여기 살아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어느 것 하나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었다.

우주에서 우주복을 입은 비행사가 두둥실 떠다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모두 방방거리며 떠다니고 있었다.

 

p.292

그러니까 수갑을 찬 채 물에 빠져 버둥거리고 있다가

수갑 열쇠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나와 최장호는 먹던 치킨을 놓고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처럼, 은비와 까비처럼,

유재석과 박명수처럼! 명콤비라도 된 기분이었다.

 

p.307

꼭 오기를 기다렸다가 받는 전화같이

내 전화를 받는 그의 목소리는 겨울날 담요처럼 따뜻했다.

 

p.336

꽤 잘나가는 시내의 동물 병원을 폐업하고 갑자기 여행을 떠나겠다니.

고 3 때 이과에서 예체능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보다 더 쇼킹한 일이다.

갑자기 '도전'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거대한 단어가,

이제는 좀 오글거리기도 하고 민망해지는 이 단어가

갑자기 숙제처럼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여자들의 질투심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현실을 버릴 수 있는 그 용기가 부러워져 시기심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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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책

내가 쓰려고 준비만 백만년 했던

소설의 소재와 등장인물의 이름이 똑같아서

(역시 사람 머리는 거기서 거기인가?!)

서점에 주저앉아 울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은 읽어줘야만 하는 고통

얼마나 겹치는지 봐야 하므로

 

작가가 예능작가 출신이라

소설이 확실히 예능감은 있다

이야기도 요즘 어린애들이 좋아할

증권가 찌라시 얘기 + 방송국 뒷얘기

하지만 딱 거기까지

로맨스랑 감동이 약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방송국 얘기가 생각보다 비중이 작다

 

더 얘기하면 열폭일 수 있으니

여기까지

고예나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p.53

나는 변기 위에 앉아 방금 전의 상황을 몇 번이나 리와인드했다.

아무리 살펴보고 또 살펴봐도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가 남의 기사를 엉뚱하게 고쳐놓고, 그걸 바로잡아 달라는,

아니 다시 한번 생각만이라도 해달라는 후배의 부탁을

그렇게 대놓고 묵살하다니! 묵살하다 못해 그는 마치

'유대인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보시죠.'라는 말을 들은

히틀러처럼 광분했다.

 

p.72

전화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체육부의 선배 하나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대머리 노총각인데, 나만 보면 어찌나 귀찮게 말을 걸어오는지

돌아버릴 지경이다. 질문도 똑같다. 일이 재밌냐고 묻는 것이다.

내가 재밌다고 하면 "재밌으면 더 해."라고 말하고,

재미없다고 하면 "재미없으면 그만둬."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껄껄껄 웃어젖힌다.

자기 딴에는 그게 참 재미있나 보다.

처음엔 예의바르게 나도 웃어보려 했지만, 이젠 그냥 정색해버린다.

대머리가 내 자리 앞에 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일은 좀 어때? 재밌냐?"

너만 사라지면 참 재밌겠는데.

"뭐, 그냥, 그렇죠."

나는 윗입술을 들어 올려 윗니 네 개를 노출시켰다.

대충 웃는 얼굴 같을 거다.

"그냥 그러면 그만둬."

대머리는 으하하 웃으며 사진부로 갔다.

어후, 짜증나. 저 인간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봤다간 돌아버릴 것 같다.

 

p.94

고졸? 이 희한한 기분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학력 차별을 반대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고졸 여성과 동일한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이 게임의 룰이 잘못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감정은 굴욕감이었다.

그녀가, 날 두고, 해볼 만한 경쟁 상대라고 분석한 것이다.

대체 나의 어떤 점이 고졸 여성의 도전정신을 자극했는지

당장 알아내고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가 지금

고작 학벌 하나로 그 여자를 업신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영 불편하다.

내가 학력 차별에 반대했던 건,

나보다 학벌이 좋은 사람들과 있을 때에만 국한됐던 것일까?

나는 그 여자를 얼른 포기하게 만듦과 동시에,

절대 학벌을 내세우지 않는 선진시민이 돼야 했다.

그러나 학벌 외에 어떤 것이 그녀보다 내가 더 나은 인간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대학 졸업장도 없이 특종을 마구 터뜨려

'기자계의 서태지'로 성공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난 알아요> 첫 무대에 5점을 주고 팔짱을 꼈던

고루한 심사위원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p.168

난 변하고 있다. 그래서 뭘 먹을 때마다

14인조 오케스트라 소리를 내는 사람한테도 익숙해졌고,

뭐든 일단 여자만 걸고 넘어지는 사고방식에도 그러려니 한다.

나를 완전히 깔아뭉갰던 슈렉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전히 이라희일까?

 

p.173

매니저와 나는 선정성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약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선정성을 '19금 댄스 논란'이라고 고쳤다.

남의 기사를 베껴 써서 자사 홈페이지 유입률을 높이는

일명 '우라까이' 매체들이 내 기사를 베껴써

순식간에 수십 개의 '19금 댄스' 기사가 온라인을 도배했다.

그러나 한류스타의 결혼을 이길 수는 없었다.

티저 영상이 예상보다 야하지 않았기에

'낚싯성 홍보'라며 역반응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일 음원 발표 전에 검색어 1위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은

매니저와 나는 수심이 가득했다.

 

p.193

그러나 나는 내 캐릭터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상태다.

아직 끝내주는 기사를 쓰지 못했고(실력이 없고),

성희롱을 당하고도 어벙벙하게 넘어갔으며(용기도 없고),

학벌로 사람을 평가했으며(수구 꼴통을 닮았으며),

일은 슈렉이 시키는 대로만 했고(주관도 없고),

예쁜 여자한테도 밀렸다(못생겼다).

이런 내가 수백만 백수군단과 싸우고 이겨 대기업에 입성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가 "물론!"이라고 한다면 그건 미친 짓이다.

나는 얌전히 지금 신문사에 엉덩이 들이밀고 앉아

내 자리나 지키는 게 최선일 테다.

 

p.194

나는 슈렉에게 어색하게 꾸벅 인사한 후

또 말도 안 되는 우지환 조지기 기사를 쓰고 있다.

이제 우지환 기사는 하도 많이 써서 어렵지도 않다.

연기력 논란, 해외 돈벌이에만 치중, 영화 티켓파워 급락 등

몇 가지 주제를 갖고 제목만 바꿔 계속 써대니 말이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기사깡'이다.

카드 돌려쓰는 실력이 일취월장한 나는 기사도 돌려막고 있는 중이다.

 

p.204

부장은 최근 자살한 여자 연예인 기사를 보면서

 "그렇게 죽을 거면 불쌍한 남자들, 한 번씩 주고 가지."라고 중얼대다,

법무팀으로부터 내 고소사건을 전해 들었다.

 

p.222

최 부장은 부임하자마자 각 기자들 노트북에 메신저를 설치했다.

그리고 틈만 나며면 쪽지를 날렸다.

'가요담당 이라희 기자, Y매체에서 터뜨린 결혼설 진짜예요, 아니예요?

진짜든 아니든 얼른 받아 써요. 네티즌들이 다 거기로 가잖아.

매니저가 전화 안 받는다고 기사 안 쓸 겁니까. 일단 써요!'

'가요담당 이라희 씨, 지금 검색어 순위에 브아걸 있는 거 안 보여요?

브아걸 관련 기사 하나 아무거나 얼른 써요.

네티즌이 검색어를 눌러보면

우리 기사가 상위에 뜨게 해야 한단 말입니다. 몇 번이나 말해야 돼요?'

 

p.333

먹고살기 위해 끌려나오는 회사에서,

유복한 집안을 등에 업은 직원은 얄미운 존재일 수밖에 없을 거다.

깔깔이 하나 입고 맨땅에서 싸우는데,

혼자 방탄복 입고 어슬렁대는 동료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마 다른 부서 사람들 눈엔 내가 그렇게 보였을 거다.

정작 나는 깔깔이도 없어서 브래지어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악의가 없었을진 몰라도 레저가 어떤 톤으로

'이라희는 취미 삼아 이 회사에 다닌다.'고 했을지 뻔하다.

 

p.351

내 옆에 앉은 여자는 백화점 쇼핑백을 3개나 들었다.

누군가는 느지막이 자기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웰빙이랍시고 비싼 아침 해먹고

요가다 헬스다 돌아다니며 아리따운 몸매 가꿔주시며,

벌건 대낮에 쇼핑이나 하러 다니는 거다.

누군가 빽빽 소리 지르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시추에이션 한 번 겪지 않고도 몇만 원짜리 밥을 덥석 사먹고 

랑콤 아이크림을 듬뿍 찍어 바를 테지.

그러면서 네일아트 하나 맘에 안 드는 걸로

몇 시간 동안 신경질을 내고, 9시 <뉴스테스크>를 30분 보고

이 세상이 어떻느니 하며 한소리도 해줄 것이다. 너무 불공평하다.

 

p.386

사람들은 보통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모 덕 톡톡히 보는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건 내가 어렸을 때 얘기다.

크면서 느낀 건데, 그 복 받은 것들보다 자수성가한 애들이 더 싫다.

맨몸으로 태어나 거물로 성장한 애들은,

내가 얼마나 게으르고 무능력한 인간인지 입증해냈다.

차라리 내가 성공 못 한 것은 부모 때문이야,

빌어먹을 사회 때문이야, 라고 하는 게 훨 나았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꼬박꼬박 자서, 배고프다고 밥 다 챙겨 먹어서,

열정도 목표도 없이 TV나 보고 시간을 죽여서, 라고 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김유석의 존재 자체가, 게으르고 철없는 나를 엄하게 꾸짖는 듯했다.

 

p.415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는 캐릭터의 성숙도 측정이다.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걸 배우고,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영화 초반부에 성격적 결함을 드러내고,

후반부에 그것이 고쳐졌음을 보여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역시 나는 주인공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영화는 유난히도 지랄맞아서,

내가 성숙하면 할수록 고난도 성숙해버린다.

자꾸만 어렵고 복잡해지는 장애물들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난 뭉크의 <절규> 속 남자 같은 표정만 지어야 했다.

따뜻하고 훈훈한 결말 따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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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 2011년 첫날부터 구입한 책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주인공 이름이 '이라희'다

'도라희'에 이어 '이라희'까지

'라희'란 이름이 요즘엔 흔해졌다

 

요즘엔 억울한 사람이 작가를 하는 것 같다

두고보자 내 언젠가 이 실태를 소설로 써서 알리겠다

하는 고발형 소설이 많은 것이다 나도 그렇고 ㅋ

이 책 역시 실제 경험에서 모티브를 얻었단다

스포츠신문 연예부에서 한 달에 50만원 받아가며

인턴기자로 일한 주인공 '이라희'가 실은 이혜린(작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인터넷 기사(특히 연예면) 보면 꼭 이런 댓글이 있다

'개나 소나 다 기자 한다'

'기사를 발로 썼나'

이 책을 읽으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기자들 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내가 일했던 방송국도 그렇고 연예인 상대하는 게

암만, 쉽지만은 않지!! 더럽고 또 더러운 것이다 =3

같은 업계(?) 사람으로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p.204 에 옮겨적은 부분은

나 또한 실제로 듣고 충격 먹은 이야기로

내 소설에 쓰고 싶었던 내용이다

이미 나와버려서 이젠 못 쓰겠지만 ^^;;

 

416페이지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을 소설로 쓴 걸 보면

작가가 억울한 부분이 많았던 듯

참으로 대단하다 난 1페이지 쓰는 것도 힘겨운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 '이라희'가 약간 비호감이라는 점이다

라희가 좀 더 착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이왕이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을걸

진실은 불편하고 결말은 씁쓸하다

고예나 <우리 제발 헤어질래?>

 

제4화

부산 송정 바닷가까지 가서 민박을 잡고 밤새 삼겹살 몇십인분을 먹고

술판을 벌이며 놀다가 삘 받아서 수영을 했단다.

이 가을 날씨에 여분의 옷도 없이 바다에 뛰어든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바닷물을 돗자리 삼아 놀았다고 하는데

옷이 더러워지는 건 생각도 안 한단 말인가.

(초록은 동색이라고, 언니의 친구들은 다 미친 것 같다)

나중에 옷도 말릴 겸 찜질방을 갔는데 아이스 방에 들어가서

여자 다섯 명이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서울로 급히 온 것이다.

언니는 오자마자 재채기를 하며 연신 코를 풀어댔다.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다.

언니 친구들을 보면 격식이 없다.

옛날 말로 하면 천한 것들이다. 하고 다니는 꼴을 보면 가관이다.

누구 하나 예쁜 사람도 없고 꾸밀 줄 아는 사람도 없다.

한마디로 패션 감각이 구리다.

더 웃긴 건 자기들이 좀 웃긴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 저급한 개그? 하나도 안 웃기다.

언니를 포함한 언니의 친구들은 여자다운 맛이 없다.

그러니까 언니가 스물아홉 되도록 남자 한 번 사귀지 못한 게 아니겠는가.

 

제7화

나는 내 물건을 챙겨 방으로 건너갔다.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

스트레스 받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던데.

저 인간 때문에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지경이다.

한동안 잠잠하다가도 일이 터진다.

내가 집을 비우고 편히 살 수가 없다.

어제 1박 2일 멤버들과 놀 때 남의 옷장을 뒤졌나 보다.

미국에서 얼마나 내 옷을 훔쳐 입고 싶었을까.

지가 돈 벌어서, 지 능력되면 그때 입을 것이지.

아니, 내가 빌려준단 말이다.

근데 왜 말도 안 하고 사람 혈압 오르게 몰래 몰래 가져가는지 모르겠다.

매번 책장을 무너뜨려도 저 인간은 끄떡없다.

그때뿐이다.

 

제13화

"어제 너거 아빠가 화장실 간다고 새벽에 깼는데

니 방에 불이 켜져 있길래 꺼줄라고 갔단다.

근데 너거 동생이 안 보이는 기라.

그렇다고 우리 방에 있는 것도 아이고.

그래서 내보고 일어나보라고 해가지고 오만 소릴 다 하는 거라.

어딨는지 빨리 전화해보라느니, 애가 잘못된 거 아니냐느니,

이렇게 늦게 귀가하는데 당신은 뭘 했냐느니,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느니,

미국에 보내는 게 아니었느니, 어쩌고저쩌고 해서

내가 너거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이가.

그런데 이 인간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안 받는기라.

그래서 내가 문자를 보냈다. '언제 올 거냐'고.

그러니까 뭐라고 왔는 줄 아나?"

"뭐라고 왔는데?"

"'몰라'라고 왔다."

역시 권지연이군. 그놈의 '몰라'에 내가 한두 번 당한 게 아니었다.

그놈의 몰라 이제는 지긋지긋하다.

권지연은 평소 때 누구보다도 효녀였다가 돌아서면 돌변하는 식이다.

엄마 아픈 데는 없어? 아빠 어깨 주물러줄까? 엄마 내가 도와줄게.

이런 말 해놓고 돌아서면 지 꼴리는 대로 하는 형이다.

나는 저런 효녀 소리도 하지 않지만 배신도 안 한다.

차라리 내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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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도서에서 연재종료된

자매가 있다면 아니, 외동만 아니라면

아주 아주 공감할 책

 

여자 주인공이 갓 등단한 작가인 것부터 해서

이거 90%는 자기 얘기다

안 그러면 이렇게 디테일할 수가 없지 ㅋㅋ

옷 훔쳐입는 것 때문에 매일 싸우고

그래도 자꾸 훔쳐입자 옷장에 자물쇠 다는 얘기는

비단 소설 속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듯~

우리집만 그런 줄 알았다

난 이 부분에서 작가를 사랑하게 됐다

유치하면 작가가 못 될 줄 알았는데 뭔가 위로가 된다

 

84년생인 고예나 작가는 서울예대 문창과 출신으로

25세에 <마이 짝퉁 라이프>로 등단한

예쁘장하게 생긴 작가이기에

내가 주목하고 있다

싸이주소를 공개해놨길래 한번 가봤는데

작가라고 해서 거창하게 꾸며놓고 이런 것 없이

그냥 내 친구, 내 동생처럼 다이어리도 짤막짤막

재밌게  써놔서 더욱 친근하고 좋았다

특히 '오늘의 작가상'을 받는다는 소식(등단 소식)을 접하고 쓴

다이어리를 읽어보면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썼는지

읽는 사람의 가슴까지 벅차오르게 만든다

 

언니랑 동생 입장이 교차해서 나오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언니라서 그런지

언니 입장에서 쓴 부분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아닌가? 내가 언니라서 언니 편을 들게 되는 건가??

끝 부분에서 약간 급하게 마무리 된 감이 없지 않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절대로 멈출 수가 없는 유쾌한 작품

 

그녀의 세번째 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