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 <15번 진짜 안 와>
p.15
'되는 일이 없다'는 표현은 남들에겐 빈번하지 않은 비운의 확률이
자신에게만 집중적으로 발생할 때 쓰는 용어다.
주위의 모두가 연애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연애를 못 하고 있을 때,
아무도 치질에 걸리지 않았는데 자신만 똥구멍에 개떡 같은 게 생겼을 때,
하필이면 우산을 버스에 놓고 내린 순간 폭우가 와서 씨발 쫄딱 젖을 때,
여유의 극한을 때릴 듯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담배 한 갑을 사고 나왔는데 좆같은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을 때,
급하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때 꼭 지하철이 고장 나고 지랄일 때,
사람들은 되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그에게 전혀 일어나지 않던 일이었다
그는 뭘 해도 잘 풀리고, 깔끔하고, 충분하고,
갈등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는 이십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십대를 한 해 남긴 막판에 완전 갑자기
되는 일이 콧구멍만큼도 없어지는 날벼락을 맞게 될 줄은 몰랐다.
p.20
고남일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원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이사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짐작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럽 여행을 준비 중이던 애인을 따라가려고
사랑의 힘으로 보증금을 줄여 이사하는 기염을 토했던 게 실수였다.
돈은 마련됐지만 동네가 너무 구렸다.
방값이 환장할 만큼 싸서 덜렁 낚인 게 바보 같았다.
자장면 한 그릇을 주문하면 배달원이 화를 내는 언덕 꼭대기에,
자갈만 한 바퀴벌레가 출몰하고 심지어 그것들이 날아다녀
어이가 상실되는 방이었다.
냉장고가 고장 났고, 휴대폰이 맛 갔고, 대박 박이러스에 걸려
컴퓨터의 모든 자작곡 음원들을 깡그리 날려먹었다.
밤마다 싸우는 소리와 때려 부수는 소리와 서글피 우는 소리의
하모니가 펼쳐졌으며, 개들이 밤새 개 같은 소리로 짖어대는 동네였다.
고남일은 풍수지리나 환경결정론 따위는 한 옴큼도 믿지 않았다.
어디에서든 멋지게 꾸며놓고 유쾌하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사람은 엿 같은 곳에 살면 인생도 딱 엿 되기 좋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p.22
방배동 카페골목 어느 막걸리 집에서 마주한 친구 이원식은
하루치의 직장 생활을 견뎠기 때문인지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한 표정을 하고 나타났다.
막걸리가 그들의 십 년 우정 사이를 몇 잔 오가자
친구 이원식의 뺨에서 허여멀건한 일상이 떨쳐지며
핏빛 생기가 조금 돌았다.
p.32
태어난 땅, 어지간히 재미없던 땅, 음악 하는 자신을 바보 취급 하던 땅,
신성한 국방의 의무와 무식한 폭력이 구분 안 가던 땅,
밑바닥에서만 허덕이던 땅,
똥 덜 닦은 똥구멍 같은 양심을 가져야 기어이 출세하는 땅,
민주주의와 인권이 절룩거리는 땅, 롹정신이 유독 찬밥인 땅,
사랑하는 여자와 조낸 헤어진 땅, 그녀에게 오해를 산 땅,
제도와 관습이 비이성적인 관성으로 굴러가는 땅,
모든 역사가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땅......
그 진절머리 시궁창 같은 지상의 경계들을 박차고 오르는 비행기의 이륙은
고남일에게 찬란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고남일은 그대로 막 천국에라도 진입하는 기분이었다.
p.49
매료란 참 멋진 말이다.
제발, 의학이라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에 매료된 자들이 하고,
정치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에 매료된 자들이 하고,
군인이라면 싸워서 이기고 나라를 지키는 일에
완전히 매료된 자들이 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무원은 공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오른 자가 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뒤해 미칠 것 같은 놈이
검사를 하든 경찰을 하든 해야 한다.
그런 일뿐만 아니라 도어맨이든, 택시 운전이든, 똥 푸는 일이든,
뭐가 됐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인생에 매료되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p.177
고남일은 일을 하게 되면서 마냥 칙칙했던 런던이
조금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뭔가 안정 모드로 진입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선 모든 걸 끝내고 싶을 만큼 되는 일이 없었지만
운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 같은 게 있어서 비운의 분량이 너무 많으면
그만큼 행운으로 보상해주려는 성질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마음 한쪽엔 묘하게 까무잡잡한 불안 같은 게 남아서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잘되도 되는 건가.
이건 사형수의 마지막 만찬 같은 건 아닐까.
한국의 은행과 카드사에서 잡으러 나오지 않을까.
경제사범으로 인터폴에 수배되는 건 아닐까.
길에서 똥을 밟아 아끼는 웨스턴 부츠를 버리거나
갑자기 내린 우박이 땅바닥에 맞고 튀어서 콧구멍에 꽂히는 게 아닐까.
그런 불안들이 가슴속에서 불알처럼 흔들리자,
그는 헛기침을 강하게 뱉으며 끊었다.
좆도, 뭘 불안해해. 일단은 지금을 즐기면 돼.
p.188
인생은 비루한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인생을 바쳐 예술을 했고
누군가는 또 그것을 감상하며 되취될 수 있다.
그것은 지구에서 인류로 살아간다는 것의 쏠쏠한 재미인 것 같았다.
감자샐러드 전문 레스토랑에서 감자로 살아간다는 것에는
그런 유희가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p.224
롹스피릿 님은 마음이 답답해 고남일의 미래를 점쳐보고 싶어지셨다.
롹스피릿 님은 롹앨범이 LP로 가득 꽂힌 방으로 이동하셔서
전용 기타를 잡으셨다. 고남일을 생각하며 주문하듯 기타 줄을 튕기자
앨범 한 장이 랜덤으로 뽑혀 나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롹스피릿 님이 신봉하시는 '롹점;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건 뉴클리어의 <악몽>이라는 앨범이었다.
"어허!"
한 장 내고 사라진 한국 롹밴드의 저주받은 명반이었다.
롹스피릿 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셨다.
"아, 저 녀석에게 개떡 같은 일이 생기겠는데?"
그분께서는 롹점을 보시느라 지친 손을 암레스트에 내려놓으며
몸을 기대셨다. 고남일의 가까운 미래는 참담할 것이다.
롹스피릿 님은 도우실 수 없는 자신의 권위를 잠시 서글퍼하셨다.
'그래도 버텨내겠지. 롹정신이 있는 놈이라면.'
롹스피릿 님께선 미간을 구기시고 긴 한숨을 내쉬셨다.
p.244
그는 더 이상 궁상을 떨지 않기로 작심했다.
궁상은 또 다른 궁상을 불러오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절약이라는 개념과는 좀 헷갈렸다.
절약정신은 누가 뭐래도 좋은 것이고
잘살게 만들 수 있는 기본 단위이자 긍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궁상을 떠는 건 그다지 좋지 않다.
궁상은 인생의 향방에 또 다른 궁상이라는 그림자를 불러들여
암울의 쳇바퀴를 만들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궁상과 절약은 분명 다른 것임에도 서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건 UN이나 FIFA는 물론,
한국 대사관에서도 전혀 지침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고남일은 생각 끝에 쉽고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미학이었다.
아름다운가, 아닌가로 따져보면 딱 구분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돈을 몹시 아끼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면 절약이고,
추잡함의 극단을 달리면 궁상이다.
p.335
그에게 영국 생활은 개떡 같았지만 해복한 순간이 헐씬 더 많았다.
인생은 결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행복하진 않다.
그랬다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행복은 짧다. 짧기 때문에 강렬한 존재인 것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그 행복의 기억을 곱씹거나,
다음 행복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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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진 작가 박상
아놔 왜 작가를 얼굴 보고 좋아하냐고 해도 딱 내 스따일인 걸 어떡해 ㅋㅋ
하지만 실례하게도 작가의 작품은 나랑 좀 안 맞는 것 같아서
(야구 싫은데 야구 얘기라) 외면하다가
이건 야구 얘기도 아니고 제목이 마음에 드니까 하고 집어든 책
소설은 롹정신으로 무장한 스물아홉의 고남일이
한국 서울에서 하도 되는 일이 없어 롹의 본토인 영국 런던에 가
일이 좀 잘 풀리나 했더니 다시 재수 없는 일 연달아 백개 터지고
다시 한국으로 캄백하는 이야기인데 처절하고 웃기다
방콕 경유해서 런던 날아가는 장면은 한달 전 허니문 생각나 무지 공감됐고
QR코드 있어서 한 번 찍어봤더니 고남일이 작사 작곡한
실제로는 박상 작사 작곡 노래하는 영상 나와서 놀랐다
노래가 막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내가 롹스피릿 님이라면 이렇게 간절한우리 남일이
바로 그냥 데뷔시켜 주는 건데 아쉽!
내가 기다리는 15번도 하루 빨리 내게 달려와주길
그 전에 내가 '롹스피릿' 대신
요즘 잘 나가는(?) '힙합스피릿'이라도 탑재하여
고남일 같은 열정을 토해 내길 기다려본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직접 GO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