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시작해서 나와 맺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당연한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의, 타의에 의해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을 이해하는 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관계를 연구해 보는 것도 인간이 이루어 놓은 관계라든지 문명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아닐지. 스마트 폰 등장으로 인해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보다 다양한 네트워크가 구성되고 있다. 인간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만큼 정신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가깝게는 가족에서부터 연인, 친구, 멀게는 직장선후배 및 동료, 이웃 등의 관계라는 것을 맺을 수 있는 영역에서 생기는 갈등을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고 그 안의 함의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관계에 어떠한 정답은 없는 것이기에 이 책에서 어떠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사례를 통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관계의 기술을 보려면 자기 계발서를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저자의 전작을 읽지 않았고 무한도전에서 저자가 무한도전 구성원의 정신분석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 역시 보지 않아서 저자의 서술 방식을 전적으로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쓰는 서술 방식이 느껴졌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 저자의 말처럼 어떠한 reference에 기초하기 보다는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한 번쯤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하고 그것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 인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관계

 최신의 신경과학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글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을지 모른다. 꽤나 말랑말랑한 책들을 최근에 읽어서인지 정독을 요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어떤 것을 쉽게 설명해주기 보다는 신경과학, 뇌와 관련된 논점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은 책이다. 역자 후기를 보고서야 이 책이 저자의 일기를 재구성했다는 것을 알고 아..하고 책의 구성 방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원서 제목을 보니 ‘On being certain’ 이던데 어떻게 우리가 안다는 것을 확신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 사고의 불합리성을 말해주는 책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아주 일부는 연관이 되기도 한다) 안다는 것에 대한 뇌의 작용과 그것이 과연 확실한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지 신경과학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부분을 지나면 다소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사안마다 나오고 있다. 기본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물론 그 비판 받는 내용의 도서를 안다면 말이다. 몇 개 몰라서 그러한 재미는 조금밖에 못느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교와 과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었는데 신경과학을 전공하면서도 과학적인 증거와 진화론을 근거로 창조론을 비판하는 쪽의 주장을 동조하기보단 (그렇다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목이 마를 때 이온 음료나 기타 음료를 선택하는 것처럼 각자의 관점에서 선택가능 한 것이지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는 사고는 경계해야 하는 조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가 아닌 영역이 다름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인 교양서로 생각하고 읽기에는 책의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기본 뇌과학이라든지 신경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은 독자에게는 지적인 자극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생각의 한계를 느꼈다.’

뇌과학, 신경과학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는 뉴스를 본 게 1995년 대입 재수를 할 때였다. 전년도에는 성수대교가 붕괴되어서 왜 이렇게 자주 무너지나 생각했었고 그 당시 유행하던 말 중 ‘한국병’ 중 하나인 ‘빨리빨리’식의 성장이 부른 결과라고 언론매체에서 말한 것이 생각난다. 지나고 보니 인터넷에서 년도를 찾아야 할 만큼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빠른 시간의 흐름에서 잊혀지기도 했고 좋은 뉴스가 아니어서 더 더욱이 그랬을 거다.

 삼풍 백화점의 붕괴 현장에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박선녀라는 여성이 붕괴된 백화점에 갇히게 되고 그녀와 연관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차례로 나오면서 한데 어우러진다.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소재로는 작가의 후기처럼 대하소설로 다루어도 무방한데 그것을 압축적으로 그려낸 것이 서사라는 틀에 잘 녹아 들어 있다. 압축 성장 시대를 소설의 형식이 반영한다고나 할까. 소설의 형식을 빌었기에 실명과 가명이 섞어 나오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광복 이후 권력의 이동과 그에 알맞게 변신을 거듭하는 인간 군상들과 옳고 그름을 떠나 생존이라는 이기심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작가는 특유의 흡입력과 빠른 전개로 보여주고 있다.

 박선녀, 김진, 심남수, 홍양태, 임정아와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시대 권력에 기대어 부를 획득한 사람과 그 부를 획득하려고 노력하거나 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꾼 꿈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박정희, 중정, 강남개발붐, 경기도 광주 대단지 사건 등 근현대사를 한 번쯤 접해본 사람은 소설을 통해 그 내면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나도 자세하게 아는 것은 많지 않아서) 지루하게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 말미의 조폭 이야기는 재미도 없었고 이야기의 흐름상 크게 연관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 부분을 따로 떼어내서 책을 한 권 썼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반미주의자가 반미를 외쳐도 자식 유학은 미국으로 보내는 것처럼 강남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강남을 좋지 않게 이야기하면서 강남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욕망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 욕망의 형성을 책을 통해 지켜보면서 손가락질 할 수 만도 없고 동정할 수도 없는 것은 나 자신도 기회만 있다면 그 편에 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이 잠시 좋은 몽정으로 끝날지 악몽으로 끝날지 아무 것도 아닌 개꿈으로 끝날지 여전히 꿈은 진행 중이라 말 할 수 없다.

황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