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에서 동화작가 이금이는 아동 성폭력문제를 다뤄 상처받은 아이들과 가족, 주위사람들의 심리까지 잘 묘사했고, <너도 하늘말라리아>에서는 어릴때 어른들의 어쩔수 없는 상황에 상처입고 지내는 세아이 이야기를 했었다. 다소 무거운 주제에 어른들이 함께 생각해볼 문제를 제시했다면 [첫사랑]은 다소 밝은 주제라 할수 있겠다.

 

‘투투데이(사귄지 22일째 되는 날)’, 커플링, 함께 놀이동산가서 사랑한다 외치기, 뽀뽀하기 등..내가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인가, 세상물정을 몰랐었나,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들이 이성친구를 사귀면서 하는 일이 어른들의 연애와 다르지 않아서 무척 놀랐다. 주인공 동재는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는 유학을 가고, 아빠랑 살고 있었는데 얼마전 은재 엄마랑 아빠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마음이 불편하다. 오빠랑고 친한척 하는 은재도 밉고, 어쩜 엄마가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그새를 못참고 새엄마와 결혼한 아빠도 원망스럽다. 단 한가지 희망은 연아를 보는 것인데 같은반 친구 찬혁이와 커플이라 함부로 고백할수 없다.

 

사춘기를 이제 막 시작하는 아이의 첫사랑과 주변 이야기인데 다행인것은 동재가 밝은 성격이라 마음의 상처, 이해못하는 어른들을 그래도 받아들이려 애쓰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재혼으로 맺어진 동생 은재의 덕분으로 짝사랑 연아와 사귀게 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도 많다. 영화를 보고, 꽃다발을 사고, 선물을 사려면 돈도 필요한데 그 돈을 얻기위해 집안의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앞집에 이사온 할머니는 동재가 정말 싫어하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아주 비밀이 많은듯하다. 크리스마스때 기다리던 엄마가 오지만 새애인 외국인 로드리게스와 같이 와서 동재를 실망 시킨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동재는 성장한다. 어른들은 이제 나를 어린아이로 취급하지 않고, 남자로 대해주고, 내 의견을 묻기도 한다. 이제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에 첫발을 떼는 중인것이다. 첫사랑 연아가 이별의 문자를 보내고 실컷울고 난뒤 아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할수 있냐구 물어보니 아빠는 사랑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계속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사랑이 제대로 유지되게 하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고 노력해야 한다고 대답해 준다. 이제 열네살이 된 동재는 연아에게 자기만의 표현방식이 안맞았음을 인정하고 “안녕, 나의 첫사랑”하고 이별을 고한다. 동재는 이제 몸도 마음도 한뼘쯤 성숙했다.

2007년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일본소설의 주인공이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 그네><인더풀>에 나오고, 뚱뚱한 외모에 삼십대 후반의 직업은 의사이다. 환자들에게 절대 신뢰감 있는 행동은 하지 않지만 한번 찾은 환자는 다시 찾아오게 되는 묘한 끌림이 있다. 바로 ‘이라부’다. 우리나라에 일본소설이 많지만 그중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는 이라부가 아닐까.오쿠다 히데오는 <면장선거><걸><오 해피데이><야구장 습격사건>에서 가장 최근의 <올림픽의 몸값>등의 책이 있고, 유쾌하고 쉬운 문체에 유머러스한 인물들이 나오는데 읽는 독자들을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공중그네]는 5개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젓가락이나 이쑤시개, 포크, 식칼, 주사기등 온갖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을 싫어하는 선단공포증에 걸린 야쿠자 세이지가 닥터 이라부를 찾아가는 <고슴도치>가 첫 번째 이야기다. 우리가 생각하는 야쿠자 이미지가 있는데 혈판장 깨는게 두려워 닥터 이라부와의 상의 끝에 팔에 기브스를 하고 나타나고, 다른 조직과의 대결이 무서워 이라부와 같이 약속 장소로 나간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만만하게 느껴지고, 어떤때는 내가 가진 약점을 가진 그들이 반갑고 위안이 된다.

 

<궁중그네>에서 이라부는 육중한 몸으로 서커스를 하려고 애쓰고, 의학박사에 대학교수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어하는 강박증에 걸렸다는 <장인의 가발>등...모두 엽기적인 환자와 초미니 스커트의 간호사 까지 나와 기상천외한 사건들로 우릴 즐겁게 해준다.

 

책을 덮으며 ‘이런 이라부같은 정신과 의사가 있는 곳이라면 나도 한번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자신의 의지로 어쩔수 없어서 마지막에 찾는 장신과에서 이런 치료를 받는 다면 100%로의 완치율을 자랑하지 않을까. 반가웠어 이라부!

늘 글을 읽는다. 그중에 시는 읽으면서도 다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느땐 내가 마음대로 해석하고 오해해도, 작가와 시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들어간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여도 좋은 것이 시다. 우린 어려워 하면서, 그 익숙치 않은 말들 때문에 다시 시를 찾는다. 시처럼 ‘삶을 낯설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게 철학이다. 시집이나 철학책은 다른 장르의 글들보다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낯선이미지,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 용어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때론 독자들을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늘 익숙한 길을 다니고, 하던 일만 하고, 똑같은 음식만 먹다가 한번쯤 새로운 경험을, 낯선 표현 방식을 읽는다면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21명의 철학자와 21명의 현대 시인을 짝지어 놓았다.

 

<노동의 새벽>시의 노동 해방의 혁명가 박노해가 감옥에서 출소하기 전에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책을 낸다. 노동의 시인과 직업 혁명가의 길에서 벗어나 ‘화엄경’의 인다라의 그물울 시로 썼다. 갈등의 변증법적 논리에서 울림과 전체라는 화엄의 논리로 건너가 버렸다며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multitude)>을 얘기한다. 산업 자본주의 세계화와 인터넷이란 소통수단의 발달로 노동자들간에 연대가 이루어져 촛불집회 처럼 ‘공통되기’가 가능하다. 그동안이 개인이 없는 혁명이었다면 이제 “분노와 사랑의 세계”이다. 마주침과 연대를 통해 기존 정치권력에 분노하면서 자유롭고 독립하면서 주체적인 개인들의 연대를 추구할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섬>의 전문이다. 간결한 압축미를 자랑한다. 제목이 상징하는 섬을 어떻게 이해할까. 길가다가 매혹적인 여인을 만나 그리워 하면 그녀라는 ‘섬‘에 가고 싶은건가, 아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립되고 단절된 ’섬‘이 있는데 극복하고 타인의 섬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겠지. 우린 타인의 섬으로 건너가 심각한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메를로 퐁티라는 철학자는 인간이 정신 혹은 의식이 육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역설한다. 또 우리는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일까,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져 고독할까. 결국 고독은 타자와의 만남,사랑에서 발생하는 감정인 것이다.

 

그 밖에도 언어에 뼈가 있다는 비트겐슈타인과 기형도는 언어에 감추어진 다양한 맥락을 찾고, 너무나 인간적인 에로티즘(금기도 없다면 에로티즘도 없다는!)-바타이유와 박정대 등을 연결했다. 또 김남주의 <어떤 관료>는 근면이 미덕일수 있을까는 나치치하에서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범죄자 아이히만의 예를 들어 철학자 아렌트의 사유의 의무를 연결시켰다.

 

시들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하다. 황동규, 강은교, 도종환, 황지우, 이상, 김춘수...다만 처음엔 낯선 단어와 이론들이 어렵다. 해탈을 위한 해체론,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 밝음의 존재론, 망각의 지혜 등을 읽으면 기가 죽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은 ‘아니다, 생각보다 읽을만 했다’이다. 이 책을 읽을때만큼 글을 진지하게 대한 적이 언제였던지, 작가의 사상을 뚫어지게 쳐다본적이 없었다. 시와 철학을 통해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