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대면 많은 사람이 알만한 작가들이 한데 뭉쳤다. 박완서 외 9명의 여성작가들이 사랑이야기를 적어놓은 책이다. 소설집이 좀 무언가 시작하다 만 느낌이 들때가 있기도 하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해 줬으면 할때 말이다. 물론 작가의 사상은 다 나타낸 것이겠지만 왠지 장편에 익숙해진 소설에 대한 입맛은 이 책을 통해 좀 바뀌었다. 짧고 간결한 단편에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는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고, 생각도 남겼다. 박완서, 우예령, 유춘강, 유덕희, 김정희, 이남희, 조양희 등의 작가들이 참여한 책은 활짝 핀 봄꽃들처럼 밝은 색이다.

 

다른 소개가 필요없는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은 김용택의 같은 제목의 시를 보고 예전에 같은 고향 동네에 살던 만득이와 곱단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한동네에서 연애중이던 만득이가 일제 말 징병으로 끌려가고 남아있던 곱단이는 정신대에 잡혀가지 않기 위해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 동화처럼 펼쳐지는 고향과 둘의 사랑이야기는 이루어 지지 않아서 안타깝기도 했고, 곱단이를 늙어서도 잊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만득의 처 순애에 대한 연민도 느껴졌다.

 

영화감독 이윤기의 ‘여자, 정혜’의 원작 우애령의 <정혜>는 봄꽃의 색깔을 닮았다. 그리고 어릴때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느라 혼자 사는 집인데 한가운데 당당하게 구두를 벗어 놓지 못하는 그녀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몸짓이다. 즐거운 일도 웃을 일도 없는 그녀의 맘에 들어오기 시작한 남자가 있다. 이제 용기를 내어 누구보다 사랑받는, 사랑하는 그녀 정혜가 되길 바란다.

 

이 밖에도 <러브 레터>는 우연히 접한 일본의 남자에게 몇통의 메일로 사랑을 느껴 일본까지 찾아가는 사이버 사랑 이야기를, <엄마는 베네치아로 떠났다>는 마흔 다섯의 엄마가 연하의 남자와 운명적 사랑을 하다가 둘이 결국 교통사고롤 당해 영원히 같이 있게 된다는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길은 가야 한다>는 권위적으로 폭력적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던 여자를 돌보는 입장이 된 여자가 나온다. 포르노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이 여자는 아버지의 여자였던 그녀가 미워 죽여버리고 싶으면서도 한집에서 지금은 같이 지내고 있는 여자에게 분노, 체념, 운명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렇듯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랑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다. 맞다. 사랑은 많은 형태로 온다. 미움,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남들에게 이기적이란 소릴 듣고, 이해 받지 못해도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사랑을 한다. 사랑은 실로 위대하다고 아직도 믿고 있기에.

‘알을 낳지 않겠어‘라고 결심한 난용종 암탉이 있다.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암탉을 난용종 암탉이라 하는데 양계장에서 알을 낳으면 주인이 얼른 가져가 버리는게 싫어 이제 그만 알을 낳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단식을 한다. 스스로 이름을 ’잎싹‘이라 짓고, 단 한번만이라도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것이 소원인 암탉의 이야기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잎싹은 날개를 펼수도 없는 닭장 철망을 나가 마당에서 자유롭게 병아리들과 거닐고 싶다. 알을 낳지 않으려고 굶다가 죽은 닭들과 함께 버려진다. 이제 닭장을 벗어났지만 어느곳도 잎싹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 마당에서는 다른 암탉과 수탉이 자리를 내어 주지 않고, 집밖에는 족제비가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다. 그래도 잎새는 알을 품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외톨이 청둥오리의 알을 품다가,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오리의 엄마가 된다.

 

다른 모두가 비웃는다. 자기 새끼도 아닌 오리의 엄마가 된 암탉 잎싹을. 하지만 잎싹은 자기 자식인 새끼 오리를 족제비로부터, 날개를 자르려는 주인으로부터, 다른 오리의 무리로부터 끝없이 자기를 희생하가며 지키고 보호한다. 그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알지만 자기의 갈길로 가버리는 청둥오리, 그리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자식을 보며 자랑스러워 하는 엄마, 모든게 인간의 부모 자식의 모습과 같아 보인다. 사랑하는 자식을 청둥오리떼에게 날려보내며 말한다. “하고 싶은걸 해야지, 그게 뭔지 네 자신에게 물어 봐” “엄마가 혼자 남을 텐데” “나는 괜찮아,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어서 외롭지 않을 거다”

 

<나쁜 어린이표><초대받은 아이들><들키고 싶은 비밀>등의 책을 쓴 동화작가 황선미의 글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생각을 많이 하게 해준다. 아이들의 세상에 상징하고 있는 것들을 미화시키지 않고 보여주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꿈을 잃지 않으며, 편하기만 한 삶을 박차고 나와 소원을 이루는 험난하고 힘든 과정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평생을 괴롭혀 온 족제비의 새끼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준다. 잎싹은 우리에게 자꾸 물어보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내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자신이 있는가, 자식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끝없이 베풀수 있는가,

 

아이들과 학교, 공부, 친구, 부모, 사랑, 성 이야기 등을 많이 한다. 책이나 티비를 보다가 자연스레 나와서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작정을 하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것이라 생각해서 할때도 있다. 수많은 주제(?) 중에서 제일 아이들과 말하기 어려운게 ‘죽음’이 아닐까 한다. 나이의 적고 많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어찌보면 불편할수 있는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수 없게 되는 사실을 설명할 때다. 만약에....라는 단서를 달았는데도 무작정 눈물을 보이고 절대 ‘나를 두고 떠나지마’라던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대답해 늘 곤란해 하던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눌수 있는 책 [오렌지 1kg-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다.

 

열두살 여자아이 알리스에게 엄마는 친구이자, 인생의 전부였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고, 동화책을 같이 읽고, 친구이야기를 나누던 엄마가 암에 걸렸다. 그때부터 화학치료를 받고, 수술도 받았지만 여위어만 가던 엄마는 “알리스 오렌지 사오는 것 잊지마”라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둔다. 물론 사람은 모두 태어나면 죽는다. 하지만 준비가 안된 아이들에게 엄마의 죽음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다. 다시는 사랑하는 엄마를 볼수 없고, 아빠와 집안일을 둘이 해야 하는 걸 의미하고, 웃음도 없어지고 모든게 달라졌다. 화가 나기도 한다. 왜 엄마를 데려가 불행에 빠뜨렸을까, 죽음을 품고 있지 않은 삶은 없을까, 나도 언젠가 죽을건데 지금 살아 있는게 뭐 그리 좋은 일이란 말인가, 알리스는 혼란스럽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없는 삶, 아빠랑 둘이 함께 하는 삶에 익숙해져 간다. 그때 아빠가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다. 단 한순간도 아빠가 다른 여자랑 사랑에 빠진다는걸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엄마의 빈자리에 다른 여자가 들어 앉는다는 것 상상할수 없는데 말이다.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한켠이 아리는 기쁨을 느낀다. 어쩌면 다시 행복해 질수 있겠다는 예감도 갖는다.

 

샤를로트 아줌마는 말한다. “네 심정은 잘 알아. 네가 가장 힘들겠지, 하지만 엄마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할거야. 마지막 남은 엄마의 소원일 거야, 삶은 계속되어야 해. 너를 위해서, 또 아빠를 위해서, 둘 모두를 위해서, 다시 떠올려 봐, 오렌지 1킬로그램을 말이야.” 삶의 쌀싸래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이제야 알겠다. 오렌지 1킬로그램은 먼저 떠나간 엄마가 알리스에게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아가라고 늘 옆에서 말해주었던 것이다. 엄마를 완전히 잊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든 우리의 삶을 응원해 줄거라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