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작가가 좋은생각 웹진에서 반년동안 연재했던 북 에세이와 사진작가 오환의 ‘낙산 연작’이 보태어 만들어진 책[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를 읽어보면 따뜻한 시선이 만들어 내는 글과 사진이 이렇게 조화를 잘 이룰수 있구나 하고 느낄수 있다. 희망, 사랑, 꿈에 대해 이야기가 낯선 요즘이기에 조그만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는 책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북 에세이라고 밝혔듯이 책이나 시를 소개하고 작가와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개인적 소소함을 적은 글들은 하나같이 따뜻함이 묻어난다. 주위를 둘러보면 책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책이 많이 나오는데 취업이나 성공이나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모아 놓는게 현실이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서 내것으로 만들어 인생에 보탬이 되게 하느냐는 정보를 알려주는게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김별아의 신작에세이는 빠른 현대사회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주위의 작은 것들에 고마워하고 사랑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슬프고 아파서 더욱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공선옥의 <내가 가장 이뻤을때>,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대니엘 고틀립 <마음에게 말걸기> 등을 소개했다. 또 중증 장애인을 자녀로 둔 엄마들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들어찬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을 읽으며 눈물흘리며 그들과 같은 ‘엄마’란 이름으로 아름다운 엄마들을 진심으로 응원했다고 적혀 있었다. 또 독일 작가 베아테와 사진가 발터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른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읽으며 어떻게 말기암 환자들의 죽음을 통해 희망을 말할수 있는지 적은 글에서는 오히려 그곳에서 삶의 투쟁, 희망의 둥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것을 가지고도 불만에 가득 찼던 예전보다 여러 가지를 잃어 듬성듬성해진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도 나와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행복한것, 고마운것, 좋은것이 참 많기도 하다. <걷기 예찬>에서는 뚜벅이이어서 행복했고, <고민하는 힘>에서 처럼 무엇이 옳고, 그르고, 어떻게 살아가야 사람다운지를 끊임없이 살피니 말이다.

 

사진 작가 오환의 흑백 사진들도 책보는 재미를 더한다. 높고 좁은 골목길을 오르고, 낡은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할머니,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힘겹게 연탄을 짊어 지고 오르는 뒷모습 모두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려주지만 그게 절망스럽지 않다. 깊은 주름, 힘겨운 발걸음에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낡은 담주위에서 공을 차고, 아이스크림을 빨아 먹으며 활짝 웃는 아이들에서도 희망을 발견한다.

 

우리 이제 죽도록 사랑해도, 죽도록 행복해도 괜찮다. 이런것들이 그리 어렵지 않고,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깨달았으면 좋겠다.

 

얼마전 할머니 은행강도단 <육혈포 강도단>를 보고 나서 이젠 할머니들의 이미지가 늘 힘겨워하는 모습이 아닌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많이 바뀌었구나 생각했다. 각종 방송에서도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슨 일이든 열심히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수 있다. 이번엔 책이다. 할머니들이 주인공인데 모두 평범을 거부하는 주인공들이다.

 

여기 “75세 이하는 절대 믿지 마라! 우리 몸은 우리가 지킨다”라고 선언한 할머니들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존경하고 글래디 골드 탐정 사무소를 열고 각종 사건들을 해결하는 그녀들! 할머니 탐정들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재밌고 통쾌하다. 모습이 할머니라고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 닥친다. 늘 불만이 많아 투덜대고 모두 개성이 강해 부딪치고 싸우지만 사건 앞에서는 한마음이 되어 범인을 잡으려고 날카로워 지는 글래디와 네명의 할머니들의 활약은 젊은 형사들 못지 않다.

 

할머니 탐정단에게 맡겨지는 사건들도 예사롭지 않다. 보행 보조기 없으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85세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 뒷조사를 의뢰하고, 아파트에 나타난 변태를 잡아달라는 사건도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한 잠복근무하는 모습을 우리가 알던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좁은 차안에서 다섯명의 할머니들은 뜨개질, 간식거리, 카드, 담요을 넣은 바구니까지 준비한다. 상상해보자. 잠복근무라고 하면서 차안에서 손전등을 켜고, 할머니들은 치사한 속임수와 육두문자를 날리며 카드를 하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무섭다고 같이 가자고 하고, 남의 집을 훔쳐보다 개에게 쫓기는 할머니들을 말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글래디는 플로리다에서 부잣집 귀부인들이 죽었다 다는 신문을 보고 살인을 의심하지만 형사는 콧방귀를 날릴뿐이다. 글래디에게는 전직 강력계 형사였던 남자 친구가 있는데 이도 그냥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할머니 탐정단이 아니다. 우연히 공짜 빙고 크루즈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또 한번의 부잣집 노인이 죽을뻔한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곳은 바다 한가운데! 잘생긴 춤선생에 푹빠지고, 멀미로 고생하고, 두고온 남자친구 생각에 빠지고, 오로지 빙고에서 돈을 딸 계획뿐인 이 할머니들이 이번엔 제대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젊고 잘생긴 남자와 재혼했다는 공통점이 있는 돈많은 귀부인들은 왜 자꾸 목숨이 위태로워 지는 걸까.

 

미 전역에서 작가 협회에서 수여하는 상과 애드거 알렌 포 상을 포함한 다수의 상을 수상한 리타 라킨의 ‘탐정 글래디 골드’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 [플로리다 귀부인 살인사건]은 우리 이웃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할머니들이 친근한 모습으로 미스테리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매력이 있다. 평균나이 75세인 할머니들이 젊은 것들이 따라오지 못할 날카로움으로 범인을 뒤쫓는 모습이 오래 기억될 책 이었다.

책 표지에 한 아이가 손수건에 반이 잘려져 죽은 벌을 올려놓고 쳐다보고 있다. 아이의 두 눈은 감겨져 있고 벌을 다루는 손길은 다정하면서도 신중해 보인다. 할머니가 죽어서 벌로 환생했다고 믿는 비올렛은 말벌이 집안으로 들어왔다며 얼른 빵칼로 죽여버린 오빠가 밉다. “오빠가 할머니를 죽였어” 소릴 쳐보지만...할머니를 이제는 볼수 없다는게 정말 슬프다. 죽은 말벌은 숲에 묻어주어야 겠다.

 

비올렛과 오빠와 같이 살던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셨다. 요쿠르트를 먹는 어떤 사람에 대해 몇시간 동안 이야기 할수 있고, 정말 재밌다. 비올렛이 꽃상추를 싫어하는걸 알기에 슬그머니 먹어주기도 하고, 누구도 흉내 낼수 없는 사과 타르트를 만들었다. 자전거를 잘타고 언제나 비올렛과 오빠의 편이었다.

 

더 이상 할머니를 볼수 없고, 만질수 없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데 오빠는 말한다. “내 말 좀 들어봐. 할머니는 네가 숲에다 묻었고, 아빠와 엄마는 묘지에 묻을 거고, 그리고 나는 여기, 가슴속에 묻을 거야, 우리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는 거야, 중요한 것은 그거야. 알겠어?” 그래, 오빠 말이 맞다. 할머니는 죽었다. 이제 소녀는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육신은 묘지에 묻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마음속에 간직하기로 한다.

 

할머니의 삶이 재밌는 이야기속의 주인공처럼 늘 즐겁지 않았다고 해서, 로큰롤 그룹에서 북을 친것도 아니고, 세계일주를 아홉 번이나 한것도 아니었지만, 평생 고무 공장을 다니셨다고 해서 내 할머니가 그립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릴 위해 노랠 불러주는 그 눈동자, 생기넘치는 눈동자 그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예전 우리 할아버지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셨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무용담과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군인들을 수백명이나 혼내줬다는 말을 해주실때는 할아버지 뒤로 후광이 비쳤었다. 조금더 자라고 할아버지가 만들어낸 이야기 라는걸 알았을땐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주무시듯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충격이었다. ‘왜 이제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거지‘ 하며 땅속에 묻으려는 엄마, 아빠를 미워했다. 하지만 그때 배운것 한가지 가슴속에 묻는 법이다. 깊은 주름, 늘 피우던 담배 냄새, 손에서 무언가 뚝딱 만들어 내던 일, 내 손을 잡고 머릴 쓰다듬어 주시던 마지막 손길...

 

할머니의 죽음으로 비올렛은 이제 한 뼘은 자랐다.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 추억만으로도 오래 그리워할수 있고 마음속엔 늘 할머니의 노래하는 눈동자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