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이진송 지음
다산책방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 책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운동 문외한인데다가 운동과 관련된 책도 읽어보지 못했던 터라 운동에세이인 이 책이 마냥 신선했다. ‘운동’은 평생 화두라고 생각하여 더욱 기대되는 책이었다.
운동에세이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운동 방법, 다이어트, 예쁘거나 멋진 몸 등등의 빈약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며 책을 읽었다. 결론은 책 제목처럼 비상했고 반전이었다.
부제는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이다. 저자는 헬스클럽, 필라테스, 요가, 복싱, 수영, PT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도전했다. 문제는 시간상의, 신체상의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결실을 맺은 운동 종목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다행히도 저자는 여러 도전과 실패를 통해 필라테스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을 ‘운동 유목민, 운동센터 기부 천사’로 지칭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운동을 직접 몸소 도전하고 반복하는 모습이 현실 사람과 같이 격하게 공감되었고, 운동을 하면서 겪은 일상과 주변 사람들, 현실도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 공감의 폭이 컸다.
무엇보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현대 소설을 전공하였다는 약력 한 부분이 책 전체를 관통하며 흐른다. 유쾌, 발랄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시선과 유머러스한 자세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 인생의 동반자, 인생의 화두 ‘운동’
- 그래도 운동을 한다. 가늘고 길게, 미래의 내가 쓸 체력을 비축하려고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마음으로. 남 보기 예쁜 몸이 아니라, 적절한 나의 동반을 만드는 마음으로. 나약한 나를 극복하여 ‘더 강한 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약점이 있거나 아픈 몸이라도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좌충우돌을 엮었다.(12쪽)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15쪽)
무엇보다 이 책은 ‘운동’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인생의 동반자, 인생의 화두라고 하면 좀 더 진지하게 논할 대상이어야 할 것 같은데 운동, 이라고 썼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운동’은 ‘건강’만큼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특히, 나처럼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겐 공감이 되면서도 깊이 반성할 만큼 돌아보게 되었던 부분이다.
저자는 인생에서 운동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콕 집어 이야기한다. 미래의 내가 쓸 체력을 미리 비축하는 운동, 평생을 위해 길러야 할 체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또한 체력이 ‘인성’의 근간이 될 수 있음도 말이다. 나이 들면서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는 몸을 보면서 체력을 쌓고 운동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라 더 공감이 되었다.
# 운동의 지향점을 고민해봄!
-운동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익을 올리는 투자보다, 꾸준히 기르고 돌보아서 수확하는 농사에 가깝다.(107쪽)
-우리가 해야 할 운동은 금메달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잘하거나 누군가를 이기거나 어디 대회에 출전할 필요는 없다.(165쪽)
-운동에서 성취는 중요하다. 그러나 성취가 운동의 전부는 아니다. 운동이 선물하는 특별한 경험은 종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으로 깃든다.(168쪽)
-이제 나는 운동 시간을 확보하려고 기꺼이 여러 가지를 포기한다. 서른 살 이전, 영양가 없고 의무뿐이던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나의 생활은 아주 간결해졌다. 변수가 많고 야근이 자은 일을 그만두었다. 아무리 바빠도 씻고 자는 시간을 뺄 수는 없듯, 운동을 그 정도로 중요한 일정으로 만들었다. 같은 운동을 100일 넘게 하고 있다. 곰이 인간이 되는 극적인 변신은 없어도, 아침에 일어나기 쉽다거나 발목 통증이 줄었다는 사소한 변화에 쉽게 감동하며 지낸다.(107쪽)
저자는 세상에 멋진 운동 서사가 많지만 우리 모두가 금메달을 딸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평생 함께 살아갈 내 몸에 맞는 운동을 찾는 일임을 강조한다. 이 지점이 이 책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다이어트를 하다 수십 킬로그램의 살을 빼고 다이어트 전도사가 되었거나, 열심히 하던 요가가 직업이 된 사람들,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 좋아져서 몸 만들기에 돌입하여 머슬 대회까지 휩쓴 사람들이 성공담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 자리에서 운동을 오래 하다보니 실력이 향상되어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는 특출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많다.
꾸준히, 정성을 기울여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농사에 운동을 비유한 부분을 읽으며 운동이 지향해야 할 점을 고민해보았다. ‘운동은 금메달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문장도 생각거리를 던진다.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운동은 성취감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변화를 함께 하기에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운동, 몸, 여자, 사회적 시선으로의 확장
- 여성복의 사이즈는 44,55,66으로만 삼분할 되고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가 여자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 세상에서, 해당 사이즈에 속하지 않는 몸은 철퇴를 맞는다. 멋대로 ‘표준’으로 설정된 사이즈보다 몸이 클 뿐인데 별의별 차별과 혐오 발언과 실생활의 불편이 뒤따른다. 아무나 나의 몸에 참견하고, 옷을 고를 때 선택지는 줄어들고, 사방에서 너의 몸이 부적절하다는 신호를 보낸다.(76쪽)
-성별이나 개인에 따른 근력차와 체력차는 존재한다. 그것을 곧장 능력의 기준으로 환원하여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의도는 저열하다.(중략)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렇게 여자의 ‘체력’과 ‘근력’을 ‘선천적 한계’로 설정하고, 그 안에 가둬두려는 사회적 압력과 욕망이다.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약한 존재로 여성을 규정하면 통제하기 쉽다.(133쪽)
-생리컵은 지금까지 허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이고, 기존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장점이 뚜렷하다. 따라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기회의 제공이 필요하다. 공교육의 성교육 시간에 생리컵 사용 방법을 가르치고, ‘처녀막’이라고 불렸던 질 주름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생리컵이 충격적인, 예외적인,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한 방법이 아니라 부담없이 골라 시도하는 선택지 중 하나가 되도록.(101쪽)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이다. 1890년대의 이화학당에도 있었고 2019년 현재에도 유효한 여성, 몸, 운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운동=다이어트라는 공식에 연관 검색어는 ‘몸’이다. 바로 S라인, 왕자 근육 등의 훌륭한 몸. 사회적으로 이렇게 훌륭한 몸을 찬양하고 지향하는 시선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체력이나 업무, 급여 등에 차별을 받는 현실을 말한다. 또 여전히 쉬쉬 할 수도 있는 단어 ‘생리’와 그 대안인 생리컵의 사용에 대해서도 정보와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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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특별했던 점은 운동과 몸, 여성성에 대한 편견에 대해 말을 걸고, 운동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각보다 많았던 차별 아닌 성차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좁은 식견으로 ‘운동=다이어트’의 관점에서 다가갔는데 사회적 맥락의 이야기들을 접하며, 이런 현실들이 얼마나 일상적인지 알고 깨닫게 되었다. 유쾌한 듯 묵직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저자 덕분에 사뭇 진지했던 시간이다.
문장들도 솔직하면서도 담백하고 진솔했다. 다이어트에 대해, 몸이라는 대상에 대해 속 시원하게 외치고 있어서 좋았다. 또한 저자는 실상 자칭 ‘유목민, 기부천사’라며 수많은 운동을 도전하고 실패했다고 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시도한(?) 저자의 지구력에 ‘포기’가 아닌 ‘선택’이란 단어를 부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래의 문장을 새기며 이 글을 정리한다.
-물가 상승률 때문에 ‘지금’의 가치와 ‘그때’의 가치가 같지 않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체력은 저축 보험을 넣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의미는 정확히 반대로. 지금은 사소하고 별것 아닌 양 보이는 운동의 성과가, 꾸준히 쌓은 후 돌아보면 그때는 완전히 다른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여기에 붙는 이자는(중략) 내가 살아낸 하루하루의 성분. 그런 생각을 하면 운동가기 싫어서 드러누워 있다가도 슬금슬금 움직이게 된다.(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