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궁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야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들 한다. 남녀 사이의 궁합 뿐만 아니라 독자와 작가와의 궁합도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꼭 맞아야 잘 사는 건 아니라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뉴욕의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난 이디스 뉴볼트 존슨, 개명 후 이름이 이디스 워튼의 단편 소설 모음집 "올드 뉴욕"을 만났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순수의 시대를 통해 퓰리처상까지 받았다는 유명한 여류 소설가. 그가 지은 네 편의 소설을 한 묶음으로 엮어 책으로 나왔다.

 

뉴욕을 본거지로 하는 네 편의 소설은 작가의 성장 배경이 된 "뉴욕", 그리고 1900년대 초반의 시대와 문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제 꾼 꿈이 목을 메게 했나 하루 종일 답답하다. 섬세함이 나에겐 안맞는 건지 필체의 흐름이 내 호흡과 달라 그런지 오늘 종일 꿈속에 읽었던 책의 답답함이 하루 종일 가는것 같다. 여성 작가와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고, 아마 작가가 살았던 시대 배경이 너무 지금과 달라 문체와 시대를 엮어가는게 어려워서 그랬는지 모른다.

 

여행을 꿈꾸며 성년을 맞은 뉴욕 레이시 가문의 루이스 레이시 이야기. 첫 페이지 부터 작가의 꼼꼼함과 치밀함에 혀를 두른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치밀한 소개가 극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든다. 마치 해리포터 프리퀄로 삼을 만한 신비한 동물사전 2 영화가 엄청나게 욕을 먹었던 엄청나게 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방식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헛된 기대, 노처녀, 불꽃 과 새해 첫날 총 4편의 단편은 고유한 색감과 음정을 갖는 것 같다. 헛된 기대에서 루이스가 그동안 몰랐던 예술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모습은 마치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듣는 느낌이랄까?

 

단편이 갖는 장점은 긴 호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물간의 갈등도 깊지 않아 부담없이 극을 이어갈 수 있고, 특히 주인공의 특징이 명확하게 나타나 몰입하는데 큰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시대의 특성은 어쩔 수 없긴 하다.

 

오랜만에 해를 넘겨 읽는 맛있는 군밤 한 사발 같은 책을 읽었다. 여전히 군밤 사이에 군고구마 몇개 물 없이 먹은 느낌이 없진 않다....

지난 주 추위를 만나려고 달려갔던 평창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하늘이 걱정을 했는지 푸근하다 못해 스키장에 어렵게 뿌려놓은 인공눈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따뜻했다. 아침을 낯선 곳에서 맞게 된 나즈막한 긴장감이 좋았을 뿐, 여행지의 생경함도 지인이 주인이 되버린 펜션의 풍광도 그저 그러하게 변했다. 이번 여행은 어떤 시를 남길 수 있을 까 고민했지만 홀로 운전대를 부여잡고 딴 생각할 겨를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자리에서 허무함만 남았음을 기억한다.

 

여행지는 한편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 갔든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온 곳이든 여전히 그 자리에서 여행객을 맞아준다. 아픔이 있어 온 사람들에겐 휴식과 위로를 주기도 하고, 너무 기뻐 웃음을 감출 수 없는 젊은 이들에게 낯선 곳이 주는 그 무언가로 입꼬리를 잠깐 내리게 만드는 힘도 있다. 그래서 훌쩍 배낭 하나 등에 지고 내일 , 아니 오늘 밤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당장 ....

 

말이 통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여행지가 낯선데 거기에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이라면 더더욱 두려움도 커지고 짐을 덜고 오고 싶은데 오히려 더 짐을 덤으로 지고 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물론 나는 그러하다. 먼 타국의 타인 필력을 한껏 뽐내며 쓴 소설을 집어들면 마치 그 공간에 선 그들은 내 친구, 내 부모가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청국장 냄새도 , 김치 냄새도 안나는 그런 소설이라 그럴지 모른다. 그에 비해 순수 혈통 한국인의 타국 여행 소설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두려움에 떨며 하루 하루 보내는 느낌이 든다 할까?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그런 흥미로운 긴장을 맛본다.

 

정말 오랜만에 권지예 작가가 책을 선물로 주었다. 물론 내가 잘 아는 지인이라 내게 직접 주었다는 건 아니다. 오해 없기를... 여행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 길지 않고 짤막 짤막한, 게다가 잘 아는 유럽이 아닌 지명도 낯선 쿠바를 배경으로 한 첫 번째 단편을 시작으로 6평의 단편 소설을 묶어 책으로 냈다.

 

한국인 작가의 쿠바 여행을 따라가며 쿠바에서 만난 할머니, 주변 사람들과 나눈 교감과 인생을 마치 내가 만난 것 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쿠바에서 출발해서 파리로 향하고, 다시 플로리다로 여정을 떠나는 마치 한편의 장편소설과 같이 교묘하게 이어지는 시놉시스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착각일 수 있겠지만, 6편의 소설이 마치 하나의 소설 처럼 인물들을 엮어가는 권작가의 글 솜씨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밤이다.

 

침묻혀 넘기기 아까울 정도로 정갈한 책 한 장 한 장을 감사하게 넘긴다. 오랜만에 파리지앵도 되보고, 쿠바 타코 한접시 먹고 싶어지는 겨울 밤이다.

소니 워크맨 하나면 와따다. 옆구리에 워크맨 하나 차고 헤드폰을 끼면 세상을 다 가진자다. 게다가 나이키 테니스화 한켤레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 거리 바닥을 훑고 다니면 그냥 "그 세대"의 축에 낀다. 이른바 X 세대가 활보하던 세상이다. 세상이 변해 IMF가 갑자기 고유명사가 되버린 1997년, 그 시절 우리는 허무하게 삶의 공간을 빼았긴 Y 세대를 만난다. 가고 싶어도 갈 곳 없고 먹고 싶어도 먹을 거리가 없던 그 시절을 흐름에 몸맞기고 멍때리고 있어야만 했던 우리의 세대들...

 

좀 살만해졌나? 2000년 후반에 들어서 삶의 가치, 기준을 기존 세대들의 그것과 다른 것에 두는 세대를 발견하게 된다. Z 세대.. 그 중에 2000 이후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된 지금의 청년들을 밀레니엄 Z 세대, MZ 세대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만난다. 전통을 벗어나 그들의 전통을 만들고,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과거의 유산을 자신들 것으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긍정의 모습 보유자들 .. 내 아들, 내 조카가 살아야 하는 세대이기에 MZ 세대의 취향 , 호기심을 맛보고 곁눈질이라도 하고픈 X 세대도 못해먹은 세대의 오늘이다.

 

2020 서울 MZ 세대의 도시 서울을 책을 통해 만난다. MZ 세대를 자칭하는 tbs 6명의 젊은 기자분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책으로 펼처낸다. 특별히 "서울"에 한정하였지만, 어디를 가나 지금 시대의 속도는 조금 다르겠지만 분위기, 냄새, 소리는 유사할 것이다.

 

내가 삶을 꾸려가는 대전도 MZ 세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 때 내 공간이었는데, 지금 그곳은 MZ세대의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는 화두가 나온지도 한참이다. 3포 4포 5포 8포 ..너무도 많은 포기의 거리를 당연한듯 내뱉고 있는, 대안도 해결책도 못내는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머리를 들 수 없는 나의 가슴 한구석에 비수를 꽂는 청년들의 흐느낌을 글로 만난다. 실업율이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40대 실업율은 좋아지지 않았다 한다. 바로 X 세대의 현 주소다. IMF를 어떻게 견뎌 얻은 직장인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MZ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는 세대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의 직장과 일상의 삶에 파트 1을 할애했고 그들의 주거환경의 변화에 파트 2를 할당한다. 시대가 변하니 그들의 라이프 사이클도 변한다. 공유경제, 공유임대주택이 화두가 된다. 우리 자녀들에게 아직도 "집한채"를 유산으로 물려 주려 우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고 있는가?

 

그러게 뛰면 밥한끼 따뜻하게 먹을 아파트 한채 얻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건가?

돈 없으면 변두리에서 살면 되지 ... 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갭투자에 눈깔이 빨갛다. 피가 얼마가 붙었느니 하며 그들의 눈엔 돈독만 올랐다.

 

고슴도치 같다. 지새끼 아플까바 가시 세우지 않는다면서 여전히 가싯발을 세운다.

MZ세대가 살아남기 위해 꾸역꾸역 만들어낸 공유생태계의 활약상을 보고 잠들어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게 미래라 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미래는 아닌데,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건 아닌지 반문한다.

 

텐션이 오르락 내리락 널뛰기한다. 갑갑한 마음, 미안한 마음이 한다발이다. 오늘도 눈시울을 몰래 몰래 훔치며 책을 덮는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