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꼭 거기를 다녀와야만 했을까?. 일흔을 바라보시는 나의 고모님은 바로 그 날 그 곳에 다녀오셨단다. 몇 해 동안 뵙지도 못했다. 어떤 신념이 있으셔서 그랬는지 그곳에 있는 그 분을 석방해야 한다고, 탄압을 하고 있다고, 빤* 목*의 일갈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열폭하고 계신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내 내면에서 부터 끓어 오르는 차별당했다는 피해의식때문인지 고모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피하거나,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 곳을 다녀오셨겠구나 짐작했는데 추측이 사실이 되면서 더욱 사이는 멀어졌다. 물론 고모님 또한 조카인 내게 더 거리감을 느끼실 것이다. 이번 추석, 아버지께서 아무도 고향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니 명하셨다 하니 기회를 빌어 뵐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까와지리라.
그 분에게 나는 "좌파", "빨갱이"다. 지금 정권의 정책은 무조건 반대표를 던지는 분이니 조금이라도 왼쪽으로 흘러가는 기미가 보이는 나를 그렇게 판단하시는 건 그분에겐 아주 "정당"한 판단이리라. 대립점 정 중앙엔 분명 중도, 중간이 있겠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고 중간에 서 있는 것이 더 어려웠기에 나는 어쩌면 지금의 노선을 선택했으리라. 아마 내 고모님은 "좌" 회전도 잘 안하실지도 모른다.
어쨌든, 저쨌든 오른손 잡이인 내가 그분에겐 왼쪽을 좋아하게 되버려서였을까 눈에 띄는 단어를 표제로 쓴 책을 고른 것은 어쩌면 운명같았을 지도 모른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어지간하면 "에세이"는 잘 고르지 않는데, 눈물이 많아진 요즘이어서 그랬을까? 김봄 작가의 에세이를 들고 읽고 있는 모습을 아내가 보면서 .."왠 일?" 이란 눈길을 준다.
우파 성향이 강한 어머니와 좌파 세째딸이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를 엄마에게 부탁을 하면서 열리는 대화의 꼬투리들을 맛깔나게 풀어간다. 어릴적 부터 남다른 딸의 모습을 지켜본 엄마, 세째가 갖는 온 갖 핸디캡을 스스로 메워가며 삶의 자리를 만들어는 작가. 한 톨 한 톨 떨어지며 나누는 대화의 초반 모습은 앞서 이야기한 나의 고모님과 내가 꾸려왔던 대화의 실타래와 경로가 비슷한듯 하다. 하지만 여성의 감성을 내가 ？i아 갈 수는 없는 한계가 분명하다.
거창하게 사회 현상 하나 하나를 토론장에서 만난 논객들 처럼 온 갖 사례와 통계, 논리로 풀어가는 사이는 아니다. 분명 토라지고, 울고 불고 하는 모녀 지간의 대화.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논리를 어거지로 뚱칠 그런 나이를 지나버려 머리가 굵어진 딸년의 말에 힘을 잃은 엄마의 대화, 슬슬 기운이 떨어지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딸의 눈초리. 이게 가족이구나 , 한때 호적을 파라는 둥 하며 극단까지 달려가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품을 수 밖에 없는 가족의 모습을 글 모퉁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은 작가나 엄마나 모두 여자이고, 또 늙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아닐까.
길지 않아 좋다. 200여 페이지 정도의 작고, 굵은 글씨가 마음에 든다. 나도 슬슬 나이다 들어가나 보다.
제목에 혹~ 해서 선택하거나 눈길도 주지 않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냥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책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해 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