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하는 두 가지 생각. 낭만적이거나, 취업난이거나. 현실적인 생각이거니와, 막상 우주와는 별 상관 없는 생각이다.

 

우주와 상관 있는 우리의 삶을 말하는 이 책은 반니의 'IT'S SCIENCE'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시리즈 첫 번째 책인 <뇌, 인간을 읽다>처럼 이 책도 가볍고 산뜻하게 읽힌다. 온갖 내용을 망라하면서도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고, 중간중간 독특한 일러스트로 머리를 식혀준다.

 

7차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성인이 된 독자로서, 분명 학교에서 배우긴 했는데 책으로 보니 또 새롭다. 천문학은 딸 수 없는 별처럼 막연하고 어렵고, 그런데도 가끔 아는 척 하고 싶은 그런 분야인데, 이 책은 나와 같은 독자에게 매우 친절하다. '천문학자와 함께하는 산책'이라는 콘셉트로, 집밖을 나와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먹고 마시면서 일상 속에 머무는 우주를 만난다. 위성안테나의 원리와 조석현상, 냄비요리에 담긴 행성의 에너지, 공원의 지구먼지 속에 섞인 우주먼지 등을 따라가다 보면 천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든든히 채우고도 남는다. 시간과 재정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도 차원에서, 꽤 괜찮은 우주여행인 셈이다.

미야베 미유키. 줄여서 미미여사. 국내 개봉한 영화 <화차>로 처음 알게 된 후, 도서출판 북스피어의 재기발랄한 마케팅의 영향으로 줄줄이 전작을 읽어보는 중이다. (표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하드커버 미니노트는, 그게 뭐라고 자꾸 모으게 되는지 모르겠다. 놓칠 수 없는 마음이랄까;;) 그 중에서도 마음을 끄는 것은 에도 시대 시리즈인데, 쉽게 죽임 당할 수 있었기에 공동체가 서로 더 끈끈히 얽혀 마음을 나누는 시대였다 한다. 미미 여사의 에도 시리즈에는 그 공동체성이 생생하고 기이하고(!) 따뜻하게 녹아있다. 미스터리 호러 버전의 전원일기라고나 할까. 내 인생에 다시 없을 명작이라고 말하기엔 좀 아쉬운 듯한데도, 집에 가는 걸음을 빨리 하게 되는 미니시리즈 드라마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미미여사의 에도 시리즈는 그 안에서도 몇 묶음의 시리즈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로 꼽는 시리즈가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인데 <말하는 검>, <흔들리는 바위>, <미인>으로 이어진다. (이 시리즈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미미여사는 더 쓸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 <미인>은 '여자는 외모가 전부'라는 말을 듣고, 믿고, 집착한 여인이 원령이 되어 젊고 예쁜 처자들을 납치해간다는 내용이다. 여인의 원령은 그녀가 소지했던 기모노를 통해 흘러가, 가까운 사람들의 질투와 원망의 대상이 된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벚꽃 만개한 꿈 속 관음보살의 가면으로 현현한다. 이런 문제상황이, 남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열일곱 처녀 오하쓰만이 해결할 수 있는 미스터리 호러 상태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다소 어리버리한 초식남 우쿄노스케와 정체가 뭐냐고 묻고 싶은 능글맞은 고양이 데쓰까지 합세한다.

 

초능력이 난무하는 것은 맞지만, 미스터리는 살아있다. 귀신은 오싹하고 사람의 마음은 선악을 가로지른다. '미인'이란 어떤 의미인가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물론이며, 조금 철학적으로  미인을 향한 타자의 시선까지도 헤아려보게 하는 소설이다. 

 

Y에게

 

Y, 너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어서 좋구나.

 

오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어. 마그리트의 <중산모자를 쓴 남자(The man in a bowler hat)>가 표지 그림이었지. 정장차림 남자의 얼굴을 흰 새가 날개를 활짝 펴서 가리고 있어.

 

그림 너머에서 만난 첫 번째 커플은 토마시와 테레자야. 이들은 무엇 하나 공통점이라곤 없지만 서로를 사랑해. 특히 토마시의 사랑을 서술자는 '동정(soucit, wspolczucie, Mitgefuhl, medkansla)'이라고 말하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이래. 즉, 테레자가 느끼는 고통은 고스란히 토마시에게 전해지지. 토마시는 병주고 약주는 이상한 의사고, 테레자는 상처투성이 환자 같아. 토마시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객관적인 여성 세계가 지닌 무한한 다양성을 수중에 넣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토마시를 스스로도 말리지 못해. 테레자에게는 한없는 절망이 토마시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이었던 거야. 사랑이란 이토록 무겁고 가벼운 온갖 것들이 뒤범벅된 모습이구나. 한편 테레자에게 토마시는 새로운 세상이고 새로운 우주였어. 부끄러움을 지켜주지 않는 어머니 아래서 테레자는 자기 헌신을 위로로 살아왔지. 그러다 토마시를 만나고, <안나 카레니나>를 신분증 삼아 그를 만나러 가. 실제 그녀에게는 뱃속을 울리는 꼬르륵 소리뿐 가진 게 없었지만, 토마시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아. ‘오이디푸스 왕’처럼, 그녀를 맞아들이고 여느 애인과 비할 바 없는 사랑과 삶을 나누기로 선택하지. 자기가 줄 수 없는 것들을 대신해서 강아지 카레닌을 안겨주고 말이야. 이들은 니체가 말을 붙잡고 울었던 것처럼 카레닌을 땅에 묻을 날이 올 때까지 함께해. 그 사이사이 테레자는 깊이 아파해왔어. '강해질 줄 알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강자가 약자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너무 약해졌을 때 떠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약자'였기 때문이야. 그녀는 '집단수용소'같은 집에서 자라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늘 약자였고, 토마시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생각해왔고, 토마시의 머리에서 풍기는 숱한 애인들의 냄새를 견뎌야 했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 나무둥치에 매여 총알 앞에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라고 외쳐야 하는, 약자였어. 때문에 마지막에 다다라 토마시가 자기를 위해 선택해준 삶의 모습에 감동을 받지. 강자로 살았을 수 있는 토마시가 자기와 함께 약자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늘 그걸 바라왔지만,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모습을 인식하진 못해왔던가 봐. 테레자에게는 오류가 아닐까 하는 불안함으로, 토마시에게는 우연의 중첩이 아닐까 하는 짜증으로 의심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건 사랑의 무지개 빛 중 하나로 남았지.

 

이 소설에 또 다른 커플도 있어. 토마시와 사비나지. 사비나는 토마시의 삶의 태도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애인이야. 그녀는 키치를 거부하고 '중지보다 긴 검지를 겨누는' 목격자의 시선을 거부하지. 사비나에게는 '비밀'이야말로 '진실'이야. 눈앞에 드러내 보일 만한 건 버려야할 대상이 돼버리는 거야. 그렇게 모든 걸 뒤로하고 끝없는 가벼움을 추구하지만,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큼은 그녀를 짓누른 가장 무거운 짐이 되어버렸어. 본질적인 존재는 가벼워지고, 존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한없이 무거워지는 부조리를 그녀는 참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사비나의 고통과 외로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아. "난 몰랐어! 그렇다고 믿었어."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면, 사비나처럼 알았기 때문에 모든 걸 두고 떠나야하는 건 뭐라 표현해야 하는 걸까.

 

가여운 남자, 프란츠도 빼놓을 수 없지. 프란츠랑 사비나도 커플이었어. 사비나가 말없이 그를 두고 떠나기 전까지는. 프란츠에겐 의리를 지켜온 마리클로드라는 부인이 있었지만, 사비나를 진심으로 숭배했기 때문에 마리클로드를 떠났어. 그 때문에 사비나가 자기를 떠날 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그 때문에 젊은 여학생을 새 애인으로 만나게 될 줄도 몰랐겠지. 그리고 사비나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캄보디아로 대장정을 떠나고, 또 마리클로드의 회심어린 눈빛 속에 생을 마감할 줄은 정말 몰랐을 거야. 어쩌면 작가도 몰랐을지도. 서술자로 드러나는 작가는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라고 했거든.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라고. 분명 인물을 이끌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인물들은 자기 호흡과 의지를 갖고 살아가게 되어버린 거야. 작가로선 참 두렵고도 신비로운 일일거야.  

 

그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오고 갔다. 테레자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안개 속을 헤치고 두 사람을 싣고 갔던 비행기 속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그 때와 똑같은 이상한 행복, 이상한 슬픔을 느꼈다.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506)

 

Y, 책 속의 이 문장을 너에게 읽어주고 싶어. 우리의 추억은 형식이고, 행복이 내용이야. 행복이 추억을 채웠어. 그리고 너는 내게 영원한 친구란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