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케이고하면 요즘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죠

그런 히가시노 케이고의 최신작 <비정근>을 읽어 보았답니다

<비정근>의 주인공은 천성이 일하기를 싫어하는데다

미스터리 작가가 꿈이라 응모작을 쓸 집필 시간을 벌기 위해

정규 교사가 휴직을 해야 할 경우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어찌된 일인지 주인공이 가는 학교마다 사고가 끊이질 않아요

6개의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과 주인공의 어린 시절인 듯한 2가지 에피소드로

총 6가지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놓은 소설이예요

 

 

부임한지 이틀만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치몬지(一文字) 초등학교,

도박에 이어 위장 도난 사건을 일으킨 니카이도(二階堂) 초등학교,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인지 모르게 담임선생님이 죽은 미쓰바(三つ葉) 초등학교,

다른 친구들에게 미움받는 게 싫어 자살소동을 일으킨 시키(四季) 초등학교,

운동회와 수학여행을 피하고 싶어 협박을 하는 고린(五輪) 초등학교,

고양이로 인해 독살미수로 이어진 롯카쿠(六角) 초등학교

제목에서부터 一에서 六까지 차례대로 숫자을 이용한 학교 이름에서

히가시노 케이고만의 유머 감각을 옅볼 수도 있었고

각기 다른 학교에서 일어난 만큼 각각의 사건에 연계성은 없지만

계약직을 뜻하는 비정근(非常勤)이 아닌 정이 없다는 뜻을 지닌 비정근(非情勤)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나 학교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계약 기간동안 조용히 지내기를 바라는 주인공이지만

각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한마디가

제정신이 아닌 듯한 요즘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비밀>, <백야행>, <용의자x의 헌신>, <탐점 갈릴레오>, <유성의 인연> 등

기존의 히가시노 케이고 작품에 비해 깊이는 좀 덜할지는 모르지만

매 사건이 빠르게 해결되다 보니 가볍게 읽기 좋은 추리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작품들처럼 드라마로도 만나보고 싶기도 한데요

머리 아픈 사건보다는 쉬엄쉬엄 읽고 싶은 추리소설을 원하신다면

비정규직 교사가 비정한 현실에 과감없이 돌직구를 날리고자 한 <비정근> 읽어 보세요

비정근, 히가시노케이고, 김소영, 살림출판사

 

울 님들은 우리나라 최장수 기업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주인공은 바로 두산이라고 하는데요

사실 제 나이대에 비해 경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지라

두산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라는 걸 알고는 좀 놀라기도 했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박상하 작가의 <박승직상점>은 이런 두산그룹의 창업자인

최초의 근대 기업가 박승직의 일생을 소설로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승직은 말그대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단한 농사보다는 장사에 관심이 많아 장터에 가는 걸로 더 좋아하게 되고

송파장터에서 우연히 비슷한 또래인 김만봉과 장대경을 만나게 되요

결국 집을 뛰쳐나와 만봉으로 인해 알게 된 석유전에서 일하게 되지만

아버지에게 들켜 고향으로 이끌려 가게 되고 그 후로는

3년 동안 해남관아 신임사또의 책실로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대경의 아버지 상단에 큰 빚을 지고 야반도주한 쌀녀의 아버지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쌀녀와의 풋풋한 사랑을 키워가지만 스무살이 되던 해 쌀녀와 헤어져 고향으로 돌아오죠

해남관아에서 3년 동안 번 300냥이라는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던 중

석유전에서 행수로 모셨던 김정우를 찾아가 상도에 대해 베우게 되고

보부상으로 시작해 결국 1896년 현재 종로가 위치한 배오개에 포목점,

즉 5년 뒤 한양에서 제일 가는 상점으로 성장할 박승직상점을 열게 됩니다

 

 

사실 다른 대기업들의 창업주에 대한 이야기는 경제에 무지한 저도 한두번을 들어봤을 정도이지만

두산그룹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바가 없었어요

박승직상점을 읽다보니 117년이라는 꾸준한 성장을 통해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두산그룹의 창업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이 책에서는 위인전처럼 한 인물의 업적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승직 외에도

만봉, 대경, 쌀녀, 맹추 등의 인물들 간의 관계와 유학자들을 빗대어 설명한 상도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어 하권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요즘 두산그룹 cf를 보면 젊은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 박승직상점에서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두산의 성장 원동력을 박승직상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박승직상점, 박상하, 매경출판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겪게되는 이별과 죽음이라는 테마는 항상 슬픔을 동반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모리사와 아키오의 신작 <당신에게>는

타인의, 그것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2012년엔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서 개봉되었는데요

영화는 작가가 일본 구석구석을 취재하며 찾아낸 절경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사실 원작의 감동과 주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아쉽기도 했어요

하지만 원작 소설은 곁에 오래도록 두고 힘들 때마다 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답니다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정년퇴임을 한 후에도 촉탁으로 재고용되어 교도소에서 직업훈련 교사로 에지는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가 요코와 사별한 뒤 그녀로부터 2통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한통은 자신의 유골을 고향 바다인 나가사키 히라도 우스카에 뿌려달라는 엽서이고

나머지 한통은 요코의 고향 우체국까지 직접 가서 수령해야만 하는 유치우편인데요

정해진 기간 안에 편지를 찾아가지 않으면 요코가 편지를 부탁한

NPO 법인 유언지원회로 반송되어 소각 처분되어버리게 되죠

편지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은 넉넉잡아 12일,

악성 림프종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간 요코처럼 유예기간을 가진

마지막 편지를 찾기 위해 요코가 계획한 장난(?)에 걸려들기로 결심한 에지는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 손수 제작한 캠핑카를 타고

아내의 유골과 함께 그녀의 마지막 흔적을 더듬으며 여행을 떠납니다

아내를 잃고 난생 처음 떠나는 여행이 외롭지만

고지식하다못해 늘 틀에 박힌 삶을 살아온 에지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설렘으로도 다가오는데요

산토카의 하이쿠를 읊는 차량절도범 스기노와 죽은듯이 살고 있는 난바라,

그 외 겉으로는 천진난만하고 밝아 보이지만 아내때문에 고민하는 다미야,

7년 전 폭풍우가 몰아친 바다에서 양친을 잃은 다쿠야와

그의 약혼녀이자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아버지가 실종된 나오코 등

요코의 선물인 것처럼 기적에도 가까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나이 차이는 열살, 자식없이 결혼 15년차 부부인 구라시마 에지와 요코에게서

우리가 흔히 꿈꾸는 격정적인 사랑의 형태는 찾아볼 수는 없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던 저도 이 부부를 보면서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지가 요코와의 생애 마지막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이불 속에서 눈물만 흘리던 장면,

요코의 유골을 직접 잘게 부수면서 그녀에게 감사함을 전하던 장면,

그리고 요코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에지가 아내를 잃고 난 후 처음으로 우는 장면 등은

가슴이 먹먹해져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과거와 타인은 바꿀 수 없어도 나와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요코의 입버릇처럼

우리의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또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답니다

죽음이라는 게 슬프고 두렵지만은 않은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 아내가 남편에게 띄우는 편지 <당신에게>,

드라마틱한 전개 대신 잔잔하면서도 책을 덮고나서도 오래도록 이어지는 그 여운을 직접 느껴 보세요

당신에게, 모리사와아키오, 이수미, 샘터